봄 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꽃들
‘봄날은 대지의 손짓에 따라 의식인양 꽃들을 앞세우며 화사한 걸음으로 다시 오고, 꽃들은 유전자의 신호를 기억하며 각기 저마다의 색깔로 습관처럼 피어나는데, 그대는 어떤 화려한 꽃잎의 모습으로 이 봄에 오시려는지요? 난, 낮은 산 양지바른 언덕, 그리운 무덤 앞에 놓인 한 움큼의 조화로 피어나도 이제 봄날이 좋을 거예요‘라는 시를 써 보았다. 만일 봄에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면 자연과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를 염려라도 하는 듯, 미국 시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대지는 꽃 안에서 웃는다.‘고 했으며, 목사였던 비쳐(Henry Ward Beecher)는 ’꽃들은 신이 만든 피조물 중 가장 감미로운 것이지만, 신은 그들에게 영혼을 넣어주는 것을 잊어버렸다‘라고 했다. 한편 프랑스시인 제라드 드 네르발(Gerard De Nerval)은 ’모든 꽃은 자연에서 피어나는 영혼이다‘라고 했다. 또한 종교 개혁가 루터(Martin Luther)는 ’주님이 부활의 약속을 책에만 써놓은 것이 아니라 봄날의 모든 잎들에게도 기록하였다‘고 말했다. 즉 대지는 꽃에서 기쁨을 얻고, 잎과 꽃들은 대지의 명령으로 다시 부활하며, 더러는 아름다운 꽃에서 영혼이 없음을 아쉬워하지만, 이와는 달리 꽃은 곧 피어나는 영혼으로 여기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에게는 봄날의 꽃이란 기쁨과 부활과 영혼의 상징이었다.
이 땅에서도 봄은 꽃 소식으로 시작된다. 산과 들을 하얗고 노랗게 그리고 붉게 물들이는 목련, 벚꽃,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등의 개화가 남녘땅에서부터 올라온다. 대지의 명령에 순응하듯 겨우내 잠들어 메말랐던 두터운 나무껍질을 힘겹게 뚫고 피어나는 그들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날리는 여인들의 노랑저고리와 연분홍치마와 같이 온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와 진달래는 봄날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러나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잠시 휘날리듯 젊음의 봄날은 쉬 가버리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던 알뜰한 그 맹세에도 우리의 짧은 봄날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바라기는 이 봄꽃들이 순서를 정하여 차례로 피었으면 오랫동안 볼 수 있어 좋을 텐데, 기후온난화 때문인지 어느 날 거의 한꺼번에 피었다가 지게 되는 아쉬움을 어찌할 수 없다.
봄꽃을 볼 때 마다 아주 오래 전 음산한 2월 겨울끝자락에 영국에 처음 주재했을 때가 생각난다. 런던의 겨울 해는 짧다. 오후 3-4시가 되면 어두워진다. 시티에서 일을 마치고 컴컴한 지하철을 타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처음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날씨마저 우울하다. 안개와 비는 일상이다. 왜 영국인들의 문화와 성격이 지중해부근의 남부유럽인들과 현저하게 다른지 기후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습하고 긴 겨울도 끝이 있게 마련이다. 황무지처럼 보였던 정원에 노란 수선화가 피기 시작한다. 이 때 쯤 이면 영국의 모든 정원, 산과 들에 지천으로 핀 수선화군락을 볼 수 있듯이, 영국의 봄은 수선화와 함께 온다. 아니 봄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외롭고 긴 겨울이 끝나간다는 신호를 전해주기에 수선화를 보면 희망을 가진다.
흔히들 수선화를 보면 곧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시가 생각날 것이다. 편의상 ‘수선화’로 알려진 그의 시 ‘한조각 구름처럼 난 외로이 방황 했네(I Wandered Lonely as a Cloud.)’가 바로 그 시이다. 이 시는 매우 단순하지만 워즈워드 시중 가장 아름다우며 유명한 시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가 즐겨 소재로 삼는 ‘자연과의 기억’을 마치 노래하듯 명쾌하게 표현하였을 뿐 아니라, 낭만주의적인 상상력과 그의 시 이론인 ‘풍부한 감정의 자연적 발로’를 잘 보여주었다. 이 시의 구성은 지극히 단순하다. 시인의 외로운 방황을 시작으로 하여, 문득 시인이 호숫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게 되는 것을 노래하고, 그가 외롭고, 권태롭고 불안할 때 수선화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즐거운 기억을 상기시킨다. 시인은 수선화를 지속적으로 의인화하여 무리들 속에서 춤추고, 고개를 살랑대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 작성기법은 인간과 자연이 내재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그의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시 작성방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시가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내리는 날에 씌어졌다는 그의 일기내용이다. 결국 이 시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좋은 것’임을 느끼도록 소망을 주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외롭거나 친구가 그리울 그 때에도 자기주위에서 항상 새로운 친구나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해야함을 이 시에서 일깨어주고 있다. 물론 화자는 새로운 친구나 대상으로 인한 그의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치 방전된 건전지가 충전되는 것처럼, 그가 필요할 때 수선화들은 그에게 늘 즐거움을 더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인간과 자연, 영성, 그리고 과거와 그 기억의 주제들을 결합시키고 있으며,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수선화무리와 같은 즐거운 벗과 어울릴 때 즐겁지 않은 시인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꽃들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그 광경이 자기에게 얼마나 값진 보물인지 미처 몰랐었다. 이따금 잠을 자려고 하면 수선화 모습이 시인의 눈에 어른거린다. 그가 기분이 언짢을 때나 슬플 때에도 그 꽃들은 시인의 마음의 눈으로 들어와 반짝인다. 이는 곧 그의 마음이 외로움에서 축복으로 바뀌고, 차츰 그의 가슴은 차오르는 기쁨으로 수선화처럼 춤을 추게 된다고 맺는다.
한편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는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워즈워드의 경우와는 다른 해석을 한다. 그의 시에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라는 경구적인 표현이 나온다. 시의 제목을 왜 '수선화에게'라고 지었는지에 대해 시인 스스로의 대답은 수선화가 상징하는 '나르시시즘'과 관련한 신화적인 의미가 아니라, 외로워서 너무 외로워서 물에 비친 자기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물가를 떠나지 못하는 수선화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해석을 알지 못한다"며, 시인이 읊은 외로움은 오직 이 세상에 혼자 내던져졌다는 '실존론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청년 ‘나르시스’가 물속에 비친 자기 모습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찾은 시인은, 외로움이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숙명이기에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견디어야 할 대상이라는 초인적인 위로의 말을 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워즈워드는 외롭게 방황할 때 미풍에 흔들려 춤을 추는 호수가의 수선화군락을 보며 기쁨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승화시킬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정호승 시인에게는 수선화자체가 외로움의 상징이 된 반면 워즈워드에게는 기쁨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어느 봄날, 영국 서쪽 스코트 랜드와 접한 지역인, 워즈워드의 고향이며 그가 평생 살았던, 레이크 디스트릭(Lake District)의 컴브리아를 가족과 함께 여행하였다. 그가 태어난 코커마우스(Cokermouth)의 워즈워드하우스, 누이와 살았던 그래스미어(Grasmere)의 도브 코티지(Dove Cottage)와 라이덜 마운트(Rydal Mount)의 아름다운 집들을 둘러보았다.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들판에 지천으로 펼쳐지는 수선화군락은 바로 풍경화 그 자체였다. 따뜻한 봄날 호숫가,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며 춤추는 수선화무리를 보며 어찌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한때 워즈워드는 프랑스혁명의 지지자로 급진주의자였으나 이후 애국자이며 보수적인 공인으로 전환하여 급진주의를 버리고 낭만주의자가 되었다. 아마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의 상상력의 근원이 되었고 자연을 사랑하는 낭만주의자가 되도록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