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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의 역사
장이라는 개념은 중국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장보다는 오히려 식해에 가깝다. 중국의 장 가공 기술이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이것이 우리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콩에 적용되어 김치와 같이 우리 고유의 식품으로 재창조되었고 이것이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되어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우리가 콩으로 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장양(醬)을 잘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발효식품을 잘 만드는 전통이 일찍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삼국사기〉 신문왕 폐백 품목에는 장(醬)과 시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울러 〈신당서(新唐書)〉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의 명산물로 시가 나온다. 또 중국 진나라 때의 〈박물지(博物志)〉에는 외국에 시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장은 삼국시대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고 주변 국가에서 이의 솜씨를 인정할 정도로 우수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 장을 담그기 전에
>>택일하기
<규합총서〉에는 장을 담그기에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병인(丙寅)·정묘일(丁卯日)과 제길신일(諸吉新日), 정월 우수일(雨水日), 입동일(立冬日), 황도일(黃道日)이 장 담그기에 좋은 날이고, 또한 삼복일(三伏日)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꾀고 해돋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고 그믐날 얼굴을 북으로 두고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생긴다고 매우 상세하게 적고 있다. 장을 담그기에 나쁜 날은 수흔일(水痕日)과 육신일(六辛日)로서 수흔일에 장을 담그면 가시가 꾀고 육신일에 담그면 맛이 사납다고 하였다. 수흔일은 큰 달에는 초하루·초이레·열하루·열이레·스무하루·스무사흘·그믐날, 작은 달에는 초사흘·초이레·열이틀·스무하루·스무엿세날이다.
>>물의 선택
〈규합총서〉에서는 "장 담그는 물은 특별히 좋은 물을 가려야 장맛이 좋다. 여름에 비 갓 갠 우물물을 쓰지 말고, 좋은 물을 길어 큰 시루에 독을 안치고 간수가 다 빠진 좋은 소금 한 말을 시루에 붓거든 물은 큰 동이로 가득히 되어서 부어라."라고 하여, 물맛이 장맛에 큰 영향을 끼침을 설명하고 술이나 장을 빚기에 좋은 물로 청명일(淸明日)·곡우일(穀雨日)의 강수(江水), 가을철에 받은 이슬물, 눈 녹인 물인 납설수(臘雪水) 등을 들었다.
>>장독대 간수
이상과 같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장을 담근 뒤에는 부정한 귀신이 장독대에 침입하여 장맛을 그르치지 못하도록 장독대 간수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먼저 장독대 주위에는 붉은 꽃이 피는 맨드라미를 심어 귀신이 범접치 못하도록 1차 방어를 하였다. 이것은 붉은색이 음한 귀신을 쫓는다는 속신에 의거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다음 항아리의 몸에 버선을 그려 붙여 2차 방어를 하였다. 그리고 항아리의 아가리 둘레에는 새끼로 금줄을 둘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았고, 장항아리 속에는 고추와 숯을 넣어 최후의 방어를 하였다. 고추는 장독대 곁에 붉은 맨드라미를 심은 것과 같은 의도였다. 숯을 넣는 것은 장맛이 불같이 일어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술적 비방과 함께 잡균이 침입하여 장맛을 그르치게 하는 것을 막는 위생적 처리가 뒤따르게 된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이러한 장독대의 청결한 관리를 위한 방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장독간을 집 뒤에 편벽된 곳에 만들고 목책을 하여 잠그고 사람을 엄금하라. 장독 근처에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져서 못쓰게 되고, 또 나무에 서 온갖 버러지가 떨어질 것이니 가지를 쳐버리고 또 장독대에 잡풀이 있어 뱀과 벌레가 숨어 있으면 못쓰니 풀을 다 없이 하고 장독대는 반드시 남향하여 볕을 항상 쬐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풍속에서 미루어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장을 잘 담그는 것은 신앙적인 차원으로까지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장을 빚고 행여 맛이 그르칠까 온갖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자 노심초사한 주부들. 이들의 노고에서 우리 음식이 완성되어 전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