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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 말의 유래 중국의 역대 4대 美人이라면 '西施', '王昭君'. '초선', '楊貴妃를 칭하는데, 이중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당나라 시인 동백규의 詩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데, 절세미인 왕소군에 얽힌 얘기는 이러하다. 전한(前漢)의 원조(元祖) 때다. 왕소군(王昭君)에게는 봄은 봄이 아니었다. 기원전 33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 전 정략의 도구가 된 궁녀 왕소군은 흉노 왕에게 시집갔다.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漢)나라 원제(元帝)는 흉노 왕 에게 화친을 위해 공주를 보내야 했다. 원제는 공주 대신 궁녀를 공주로 속여 보내기로 했다. 훑었다.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 원제는 궁중화가 모연수 (毛延壽)에게 명하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게 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 초 상화집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투어 모연수에게 뇌물을 받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왕소군은 모연수를 찾지 않았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다. 오랑캐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결정된 일을 어찌할 수 없어 보내고 난 뒤 궁중화가 모연수를 참형에 처했다. 황제는 안타깝고 가련한 마음에 그녀에게 소군(昭君)이라는 벼슬 칭호를 내려, 그 이후로 왕소군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그녀의 별명은 낙안(落雁)인데, 그녀의 악기 타는 솜씨가 하도 뛰어나 흉노로 갈 때 자신의 처지를 악기로 연주하자 날아가던 기러기떼들이 노랫가락에 빠져 그만 날개짓하는 것을 잊고서는 떨어졌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녀의 애칭을 낙안이라 불렀다 한다. (설마 그럴리가....) 후세 당나라 시인 동백규가 왕소군의 처지를 읊은 시 구절을 소개하면,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엔 봄이 와도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로구나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 자연히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이를 날씬하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네. (한 원제를 사모하고 그리워하여 병이 되어 야위워졌다는) '春來不似春'에는 이런 가슴 아프고도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다. "춘래불사춘"의 원래의 의미는 봄이 왔지만 만물이 변한 것이 하나 없어 전혀 봄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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