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사건을 수없이 겪은 우리 국민들은 힘있는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살려면, 살아남으려면, 비굴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험악한 체험에서 나온 그런 체념이 선거에서 일상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힘있는 사람에게 빌붙는 현상이 정치에만 있는게 아니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떡고물이라도 주워먹으려면, 더러워도 힘있는 자에게 붙어야지 별 수 있어?"
개혁 역사가 없는 집단은 개혁을 시도하기도 전에 스스로 미리 체념해 버린다. 그런 체념학습이 두렵다. 모든 분야에서 체념학습이 매일 이루어지는 것 같다. 체념을 이기지 못하면 희망은 없는데 말이다.
소심했던 예수도 세상에 나타나기를 오래 주저하였다. 그런 예수를 사람들은 핀잔했을 것이다. 예수는 무지몽매한 백성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백성과 함께 애환을 나누면서 백성을 계몽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백성을 원망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살며 고통을 나누고, 자신을 희생하는 정치인이 그립다. 정치인은 절반은 종교인이다. 정신자세가 그래야 한다. 그런데, 종교인이 이미 망가져 있다면? 모두 같이 망하자는 것이냐?
희망은 누구에게 올까? 절망하는 백성이 생각없는 백성에게 묻는다. 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갈까. 이 백성의 삶은 어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