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권(全宗權)
[무과] 정조(正祖) 14년(1790) 경술(庚戌)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258위(266/311)
[인물요약]
생년 갑신(甲申) 1764년(영조 40)
합격연령 27세
본관 정선(旌善)
거주지 강릉(江陵)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311명
전력 권무군관(勸武軍官)
시험과목 과녁 1순 1중(貫革一巡一中)
유엽전 1순 1중(柳葉箭一巡一中)
강서 제오자 조이상(講書除吳子粗以上)
3기 취 1기(三技取一技)
[가족사항]
[부]
성명 : 전택리(全宅理)
관직 : 동지사(同知事)
[출전]
『숭정3경술증광별시문무과전시방목(崇禎三庚戌增廣別試文武科殿試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64])
수정일 수정내역
2008-12-31 『숭정3경술증광별시문무과전시방목(崇禎三庚戌增廣別試文武科殿試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64])을 저본으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4-11-30 『숭정3경술증광별시문무과전시방목(崇禎三庚戌增廣別試文武科殿試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64])을 [원문이미지 보기]로 등록하였습니다.[수정자:이재옥]
1790년 전종권(全宗權) 홍패(紅牌)
· 분류
고문서-교령류-홍패 | 정치/행정-과거-홍패
· 작성주체 ①발급 : 정조 이산(李祘) ②수취 : 전종권(全宗權)
· 작성지역: 한성
· 작성시기: 乾隆五十五年(1790)
· 형태사항: 93.1 X 63.0 | 1장 | 종이 | 한자
· 인장서명: 1 (흑색, 정방형, 9.0*9.0, 科擧之寶)
· 원소장처: 강릉 정선전씨
· 현소장처: 오죽헌시립박물관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90년(정조 14)에 국왕이 권무군관(勸武軍官) 전종권(全宗權)에게 무과(武科) 병과(丙科)에 제263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홍패(紅牌)이다.
문서의 첫 머리에 교지(敎旨)가 명시되어 있고, 권무군관 전종권이 무과 병과 제263인으로 급제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다음 행에는 교지를 발급한 날짜가 건륭 55년 9월로 기재되어 있다. 건륭 55년은 1790년으로 정조 14년에 해당된다. 연도가 기재된 부분에 과거지보(科擧之寶)를 찍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90년(정조 14)에 국왕이 勸武軍官인 全宗權에게 武科丙科에 제263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紅牌이다.
홍패는 과거에 급제한 자에게 내리는 합격 증서이다. 생원·진사시의 합격자에게 내리는 교지인 白牌와는 달리 붉은 종이에 작성하여 홍패라 한다.
홍패의 문서 양식이 규정된 經國大典 紅牌式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문서의 오른쪽에는 敎旨라 명시하여 왕의 명령으로 내리는 문서임을 나타내고 다음 행에 합격자의 직위 및 성명과 文·武科와 甲·乙·丙科 중 해당 사항을 기재한 뒤 그 중 몇 인으로 합격하였는지 기재해 준다. 다음 행에 홍패를 내린 年月日과 年과 月사이에 科擧之寶를 찍는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 기재되어 있다. 먼저 문서의 첫 머리에 敎旨가 명시되어 있고, 勸武軍官인 전종권이 무과 병과 제263인으로 급제하였다는 내용이 있으며, 다음 행에 교지를 발급한 날짜가 건륭 55년 9월로 기재되어 있다. 건륭 55년은 1790년으로 정조 14년에 해당된다. 연도가 기재된 부분에 과거지보가 찍혀 있다.
전종권의 前歷인 勸武軍官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에 둔 관직으로 각 50명씩 배치되었으며, 양반 자제들을 위한 자리로 지위와 문벌이 있고 신체가 좋아 힘이 센 자로 충원하였다. 권무군관은 근무에 따른 승진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고, 급료가 지급되지 않는 등 직임이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형식적인 군관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게만 특별히 시행되는 勸武試나, 선전관·금군 등 특수군을 위해 매월 시행되던 무예시험인 中旬試를 통하여 武科殿試에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전종권은 권무군관으로써 시험을 치러 무과 병과에서 263인으로 합격하여 이 증서를 받은 것이다.
전종권과 관련하여 이 홍패 외에도 준호구 4장이 현전한다. 이에 따르면 전종권은 1764년생으로 본관은 淸州이며, 江陵府 南一里面에 거주하였다. 부친은 全宅理이며, 조부는 全埴, 증조부는 全宣應이다. 처는 江陵崔氏로 1762년생이며, 아들은 全希鳳으로 1780년생이다.
참고문헌
유지영,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趙成大, 高麗, 朝鮮朝의 科擧制度 內容과 特性, 한국행정사학지5, 한국행정사학회, 1997
정구복,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고문서연구9,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정지연
1804년 전종권(全宗權) 준호구(準戶口)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①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②수취 : 전종권(全宗權)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嘉慶九年(1804)
· 형태사항: 51.2 X 60.0 | 1장 | 종이 | 한자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6.0*13.5,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정선전씨
· 현소장처: 오죽헌시립박물관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04년(순조 9)에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로부터 全宗權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전종권은 1764년(영조 40, 甲申)생으로 당시 나이는 41세이다. 출신(出身)이라 기재한 것으로 보아 무과나 잡과의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거주지는 남일리면(南一里面) 김아지리(金牙只里)이다. 처 강릉최씨(江陵崔氏)와 아들 전희봉(全希鳳), 며느리 삼척김씨(三陟金氏)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강원도 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중인 旌善全氏 가문 문서 중 1804년(순조 4)에 강릉대도호부로부터 全宗權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전종권이 발급받은 4건의 문서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준호구이다.
준호구는 호구장적에 의거하여 관에서 등서해 주는 문서를 말하는데,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다. 문서를 보면, 列書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官印과 도호부사의 署押, 周挾改印을 확인할 수 있다. 主戶를 기재한 첫 행에 朱墨을 찍어 두었고 주협개인 위에는 朱墨으로 문서를 확인 및 대조하였다는 의미의 準을 기재하였다. 문서의 우측 하단이 훼손되어 있으나 연관 문서를 통해 내용을 기재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전종권은 1764년(영조 40, 甲申)생으로 당시 나이는 41세이다. 出身이라 기재한 것으로 보아 전종권은 무과나 잡과의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거주지는 南一里面 金牙只里이다. 전종권의 四祖를 보면, 부친은 嘉善大夫 行同知中樞府事 全宅理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漢城府左尹 兼五衛都摠府副摠管 全埴이며,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工曹參議 全宣應이다. 외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全輝伯이며 본관은 淸州이다.
전종권의 처는 江陵崔氏로 1762년(영조 40, 壬午)생이며 나이는 43세이다. 처의 四祖도 기재되어 있는데, 부친은 幼學 崔元弼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崔鴻翼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崔德裕이다. 외조부는 及第 安如宅이며 본관은 順興이다.
전종권과 강릉최씨는 아들 내외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幼學 全希鳳으로 1780년(정조 4, 庚子)생이며 며느리 三陟金氏는 1776년(영조 52, 丙申)생이다. 18년 뒤에 발급받은 1822년 준호구에는 며느리가 南洋洪氏로 기재되어 있어 삼척김씨가 사망하고 남양홍씨와 재혼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유한 노비는 총 5口로 남자종 3구, 여자종 2구이나 이 중 한 구는 안동으로 도망한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