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할 한국불교 /해동 선림원 지도법사 보검

[파란연꽃]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할 한국불교

해동 선림원 지도법사 보검

지금 한국불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중대한 기로의 국면에 서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불교지도자들은 의식을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사색해 보는 분들이라면 승속을 불문하고, 한국불교는 위기국면에 처해 있다고 진단할 것이다. 딜레마와 위기에서 탈출하려면 현재의 실상(實相)을 제대로 보는 정견(正見)이 필요하다.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의 명안(明眼)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한국불교의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불교계는 지금 승가 대(對) 승가, 승가 대 재가와의 반목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화쟁(和諍)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 모임을 갖고 의견을 나누고 있지만,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진실을 마음속 깊이 담가놓고 피상적인 것만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고 겉치레의 토론만 일삼는다는 느낌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현재의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논의해 보겠다는 능동적인 의지보다는 마지못해서 외부의 여론과 일부승가내의 압박세력의 강권에 의해서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느낌이다. 모임에 나와서 이야기해야할 분들은 나오지 않고, 철저하게 미리 기획된 의도된 발언이나 할 분들이 많다. 절 집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진정한 대중공사란 흉금을 털어 놓고 승가를 위한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면책(免責)과 자유가 보장된 상황에서 가능했다. 솔직히 말해서 진실을 깊이 숨기고 피상적인 말의 잔치나 말장난만 난무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망집(妄執)이란 말이 있다. 망집이란 의미가 영어로는 업세션(obsession)이란 단어가 아마도 적합한 번역일 것 같다. 망령된 고집을 망집이라고 한다. 망령(妄靈)이란 사전적 풀이를 보면,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이제 한국불교의 현실로 돌아가서 과연 지금 한국불교에 무엇이 망령된 일이고 정상이 아닌지를 생각해보자. 승가는 독신(獨身) 청정(淸淨)해야 하는데, 승가가 이렇게 청결하지 못한다면 분명 망령된 공동체이다. 이런 상황을 인정(人情)에 의해서 그냥 덮어주고 적당하게 넘어가려면, 어떤 결과가 도래하겠는가. 불을 보듯 명확한 결과가 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승가의 청정성에 대한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문제가 먼저 선결되지 않으면 수행이고 포교고 뭐고 간에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가 없다. 승가 공동체의 구성원 다수가 이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극히 소수의 권력을 가진, 불교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권력 승들 가운데, 혹여 이런 분이 있다면 문제이다. 사실인즉, 지금 한국불교계에서의 정서는 이런 분들이 일부 있다는 여론의 흐름이다. 단 한명이라도 이런 분이 있다면 가사를 벗어야 함에도 오히려 비호 받고 있다면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이런 망령된 고집에서 빨리 탈출할수록 한국불교는 희망이 앞당겨 질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또 하나의 망집을 거론하라고 한다면, 불교의식(佛敎儀式)에 관해서이다. 불교의식 그 자체는 훌륭하다. 영산재(靈山齋) 같은 불교의 대형 의식은 가히 불교문화 예술적 가치에 의한 문화재급이다. 불공(佛供)이나 시식(施食) 의식도 불교의 소중한 의례(儀禮) 행위이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기복형 신자들의 시주에 의해서 사찰 수입금을 상당량 충당해 왔다. 현재도 이런 기복형 신자들의 시주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시주금을 낸 신도 분들을 결코 잘못된 신행(信行)을 하고 있다고만 할 수도 없다.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이면서 관습으로 굳어진 일이어서, 그리고 타력신앙이란 차원에서 이런 중. 하근기의 신앙행위도 수용되어왔다. 문제는 이런 신행행위와 시주를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불공이나 천도재 같은 불교의식에 집착하는 망집이다. 현재 이런 불공이나 천도재 사십구재 같은 불교의식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다보니 사찰의 수입금이 줄어 들것은 당연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치 않기에 계속해서 이런 불교의식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찰이 많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하는데, 오랜 망집 때문에 이런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자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은 신자로서의 의무이다. 승가의 오랜 전통이다. 재가 이부중(在家二部衆=신남신녀)은 출가 이부중(出家二部衆=비구 비구니)을 외호(外護)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반면에 출가 이부중은 재가 이부중에게 정신적 법음(法音)을 들려주어야 한다. 주고받는 경제 원칙에 의해서 불교교단은 움직여 가는 것이다. 부처님 시대부터의 전통이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의해서, 승가가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산중불교화하면서 불교의식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지금과 같은 21세기에도 아직도 이런 과거 시대의 관습에 집착한다는 것은 시대상(時代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몇 백 년 전의 누습에 젖어 있다면 불교의 현대화 정법화의 길은 요원하다. 불공 시식 천도재 사십구재의 불교의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불교의식에 집착해서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제 신자들이 이런 식의 불교의식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신 청정한 비구 비구니 스님이 이끌어주신다면 신자들은 분명 보시를 할 것이다. 출가 이부중을 외호해야할 책임이 재가 이부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명상(瞑想)이 유행을 타고 있다. 사찰마다 명상이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다. 참선도 해보지 않은 스님이 명상을 지도한다고 하면 이것도 문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찰의 본래 모습을 찾으려면, 부처님의 제자로서 청정하게 살아가는 승가정신의 회복이 급선무라고 본다.

모두에서 한국불교의 쟁점이 승가의 청정성에 있다고 했다. 이 문제가 풀리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이다. 불교의식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신도들이 원하지 않는 신앙행위를 강요하고 이런 행위에서 수입을 보려는 집착을 벗어나는 길을 모색해야 한국불교가 살길이다. 이 칼럼의 진정한 의도는 시대의 변화를 읽자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일고 뭔가 가슴에 와 닿았을 때, 새로운 방법은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승가의 독신 청정성 회복이다.

미주 한국불교는 본국 불교와는 환경이 조금 다르다고 본다. 한국불교의 전통이나 모습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미주라는 서구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한국불자들은 뭔가 조금 다른 불교를 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안목에 의한 실상을 제대로 보고 방향을 잡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구불자들은 불교의 에센스를 파악해서 삶에 응용하여 진정한 불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미주 한국불자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망집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