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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남해안 공룡의 꿈 (상족암-남일대-가인) 글/사진: 이종원 우리집은 철길 옆에 있다. 가끔 기차가 지나갈 적이면 집이 쿵쿵 울릴 정도다. '이러다가 집 무너지는 것 아니야.' 괜한 걱정을 쏟아낸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 내가 원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이런 울림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공룡의 발자국 소리라고 여기고 바로 출행랑을 쳤을 것이다. 공룡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거대한 지배자가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사라졌을까? 그때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상상력이야말로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자극제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떨까? 구구단을 달달 외웠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램이건만 그리스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곧잘 외우고, 읽기 조차 힘든 공룡 이름도 입에서 술술 나온다. 신화나 공룡 이야기는 상상력만 동원하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룡은 아이들의 꿈이었다. 상족암 경남 고성 상족암은 우리 나라 최고의 공룡발자국 화석지이며 브라질, 캐나다와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알려져 있다. 상족암에서 실바위까지 6km 구간에 1만 9천여점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이 곳이야 말로 공룡들의 놀이터인 셈이다. 공룡이 살던 시기에 남해안 일대는 바다가 아니라 커다란 호수였고, 그 곳을 배회하던 공룡의 발자국이 뻘에 찍히면서 화석으로 굳어진 것이다. 1억년 전의 상족암은 수많은 공룡들이 뒤엉켜 살았을 만큼 완벽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었다. 초식동물의 조각류, 거대한 초식동물인 용각류, 영화 주라기공원에서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인 수각류까지 다양한 종류의 공룡발자국이 뒤엉켜 있다. 정수가 서 있는 발자국은 몸길이 30m 무게만 30톤이 넘는 초식공룡의 발자국이다. 등치가 크다고 힘이 센 것만은 아니다. 영화 주라기공원에서 포악성을 드러낸 티라노사우루스는 발자국이 20-30cm에 불과하지만 성격이 포악하고 싸움에 강해 다른 공룡들은 늘 두려움 속에 떨어야만 했다. 치열한 공룡세계는 파도속에 지워졌고 오늘날 상족암해변은 너무도 고요했다. 발자국 속에는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바닷물에는 고여 있어 파란 하늘이 비쳐졌다. 아이는 성큼성큼 발자국에 발을 맞추며 공룡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제전마을부터 실바위까지 멋진 탐방로가 이어진다. 해안가에 펼쳐진 2000여 개의 발자국을 감상하며 공룡세계에 흠뻑 빠져보기도 하고 수려한 바다 풍경에 마음을 내맡겨도 좋다. 나무판을 쿵쿵 굴리며 자신만의 발자국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제전마을부터 실바위까지 6km구간은 세계 최대의 공룡발자국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멋진 곳이 우리 나라에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다른 한쪽은 변산의 채석강 마냥 바위가 켜켜히 쌓여 있어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바다를 향해 촛대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산수화를 펼쳐놓은 병풍바위가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촛대바위 근처에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가 탐승객을 노려 보고 있다. 예전에 이 곳을 찾았을 때는 거대한 초식공룡이 서 있었는데 태풍 때문에 날아갔는지 아니면 티라노에게 잡혀 먹힌 것인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 탐방로 끝지점까지 가면 해식동굴이 나온다. 해식동굴이 뚫린 바위 틈새 기둥이 상다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상족암(床足巖)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공룡해수욕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해수욕장이다. 자갈이 깔려 있는데 공룡의 눈에는 모래알처럼 작게 보이겠지. 공룡박물관 2004년 8월 상족암에 공룡박물관이라는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공룡자연사박물관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만 1천평이 넘는다. 이 곳에 투입된 공사비만 150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전시관은 5개의 전시실과 3층 전시실, 야외 시설로 나뉜다. 1층은 백악기공원(3전시실), 디노랜드(4전시실), 과거의 흔적(5전시실), 뮤지엄숍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악기 공룡공원, 초식·육식동물의 삶, 공룡시대의 동반자들, 테마랜드, 이야기방, 뼈맞추기·크기 비교 등을 선보이는 게임랜드, 시대별 화석, 화석발굴 현장까지 볼 수 있다. 2층은 공룡의 수도(1전시실), 고성의 공룡 발자국(2전시실), 로비 및 중앙홀, 영상실로 구성되어 있다. 상징조형물, 지구연표, 공룡 골격, 발자국 화석 및 재현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발자국 화석지 및 화석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시설로 길이 34m, 너비 8.7m, 높이 24m의 브라키오사우루스를 형상화한 공룡탑과 분수대·전망대·탐방로 등이 펼쳐진다.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공룡 골조물이나 천정에 매달린 익룡들은 아이들이 사랑을 독차지 한다.
공룡박물관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바다 풍광은 감칠맛 나는 공룡 여행의 덤이다. 사량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서 있다.
사천 남일대 해수욕장 거북선을 최초로 이용해 승전고를 올렸다는 사천은 물이 맑아 해수욕장이 많다. U자형 모양인 남일대 해수욕장은 규모는 작지만 코발트 바다색과 바닥이 휜히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백사장은 분가루 처럼 고와 여름철이면 모래찜질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시 남일대 해수욕장의 가장 큰 자랑은 코끼리 바위다. 상족암이 공룡의 흔적이 몰려 있다면 이 곳은 맘모스의 후예인 코끼리가 바닷물을 마시고 있었다. 코끼리 입과 눈썹까지 절묘하게 새겨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 앞에 놓여 있는 거북바위가 코끼리 보고 물을 그만 마시라고 참견을 하는 듯 하다.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코끼리 바위까지 해안선을 따라가는 500미터 산책길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와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해수욕장 서쪽해안선을 따라 들어가면 진널전망대가 나온다. 한려수도의 오밀조밀한 섬들과 그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통통배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다.
삼천포 창선대교 70년대 남해섬은 우아한 남해대교 때문에 전국에서 인파가 몰렸던 것이다. 바다를 잇는 것도 신기한데 그 날렵한 현수교 모양에 흠뻑 빠져 남해대교가 바라 보이는 노량리에는 아줌마들의 엉덩이 춤과 뽕짝조의 음률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나이가 들면 미인도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연륙교가 우후죽순 생기더니 남해대교는 예전만큼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남해대교가 생긴지 30년이 지난 후 남해는 다리공화국의 명성을 되찾았다. 길이 3.4m의 삼천포시와 남해 창선도를 잇는 다리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4개의 섬과 5개의 교량이 각기 다른 공법으로 섬을 연결해 놓아 신들의 징검다리이자 다리박물관으로 변모했다. 공룡보다 더 크고 무서운 것은 날로 발전한 문명세계가 아닐까? 삼천포 대교는 5개의 다리중에서 가장 우람하고 아름답다. 창선삼천포대교 기념공원에는 이 곳 출신이자 서정시인인 박재삼 시인의 시비와 저명작가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리를 보면서 시를 감상하는 것도 운치가 있다.해질 무렵 바다에 물든 낙조가 일품이다. 다리 건너 창선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끝내준다. 창선대교와 단항교에 화려한 조명이 설치되어 낮에 보는 것과 달리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자동차극장, 범선형 활어 위판장, 회센타까지 갖추고 있어 야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창선사람들의 설움 다리가 놓이기 전 삼천포시가 앞 바다에 있으니 창선사람들은 남해보다는 삼천포 생활권에 가까웠다. 선조때부터 배 타고 삼천포를 넘나들었기에 시장을 보러 가도 통학을 해도 삼천포로 향했다. 다리가 개통되기 전 마지막 배가 떴을 때 창선사람들은 참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삼천포 생활권이다 보니 창선사람들은 남해에서도 삼천포에서도 변변한 대접을 받지 못한 설움이단박에 북받쳐 온 것이다. 평생 고사리를 캐다가 재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내 평생 소원은 삼천포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그만큼 다리는 창선사람들의 숙원사업이었다. 말 그대로 창선사람들은 이제 걸어서 삼천포로 빠질 수 있었다. 다리만 놓이며 모든 것이 술술 풀릴줄 알았던 창선사람들은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관광수입은 늘어 났을지 몰라도 타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무질서와 폭력, 유흥업소의 난립등 문명의 폐해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수 백년동안 문 열어 놓고 이웃에 마실 다녔던 창선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가인리 공룡발자국 창선에서도 가인은 창선에서도 고도로 불릴 정도로 후미진곳에 자리잡고 있다. 좁고 긴 산길을 오르내려야 공룡세계에 들어 갈 수 있다. 수 많은 고사리밭은 마치 쥐라기 공원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에 빠진다. 가인마을의 장점은 번잡하지 않고 조용히 공룡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한적한 어촌풍경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인마을 해안은 1억년전 공룡이 번성했던 시대 각종 화석이 펼쳐져 있다. 발길이가 55cm 초식성 용각류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수각류등 수 십개의 공룡 발자국을 더듬어 보면 신비감마저 인다. 특히 사람 발자국 모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또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남해의 해안선은 공룡벨트인가보다. 고성의 당항포, 옥천사, 상족암까지 공룡의 흔적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마 공룡시대에는 이 곳이 서울의 명동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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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방학인데 아이들과 함께 꼭 다녀오고 싶네요...그런데 학원이 걸려있어 시간내기가 마음대로 안되네요..걍 다 때려치우고 그냥 훌쩍 떠날까봐요...부럽다요...^^
전 이곳을 3년전에 진주와 남해를 다녀 오면서 들러 봤는데 좋더군요 학생들이 보면 공부에 도움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