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탄생 138주년
황원갑 <역사소설가>
7월 3일은 내 문학의 지평선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 1883년 7월 3일 ~ 1924년 6월 3일)가 탄생한 지 138주년이 되는 날이다.
- 늦은 저녁에야 K는 도착했다. 마을은 깊이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성은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
프란츠 카프카의 <성(城)>은 이렇게 시작된다. K는 바로 이 성의 성주로부터 초청받아 찾아온 측량기사이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선 뒤부터 초청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며 마을에서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사실을 인정해주기는커녕 오히려 K의 신분을 의심하고 거부하며 적대시하는 움직임만 보인다.
K가 아무리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키며 존재를 증명해보이려고 노력해도 마을에서는 배척당할 뿐이며 기다리는 성주의 지시도 전혀 없다.
마을의 외곽을 배회하며 K는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그렇다고 해서 성주의 해고도 없이 속절없이 늙어갈 따름이다.
<성>은 <심판>, <변신>과 더불어 고독한 영혼의 방랑자 카프카의 대표작이다. 성의 입구를 찾아 마을을 배회하는 <성>의 주인공 K나, 무죄를 증명하려고 미궁 같은 재판소의 복도를 배회하는 <심판>의 주인공 K는 곧 우주의 미아인 카프카 자신의 모습이요, 정신황폐증에 걸려 정체성을 잃어버린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신의 눈은 과거의 싸움보다도 미래의 싸움을 한층 더 잘 말해주고 있어요."
"세상의 저항이란 큰 것이며 그것은 목표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더 커지는 법이지요."
<성>의 여주인공 아말리아의 입을 통해 카프카는 이렇게 현대인의 시시포스와 같은 숙명을 강조하고 있다.
산꼭대기까지 힘겹게 밀어올린 바위덩이가 순식간에 허망하게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똑같은 상황의 반복 - 악순환을 알면서도 시시포스는 다시 묵묵히 바위를 굴려 올린다. 이 같은 시시포스의 암담한 운명, 절망적 고통 속에서도 카프카는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다.
성의 변두리를 끝없이 방황하거나 재판소의 복도를 죽을 때까지 배회하는 K의 모습이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20세기의 문지방, 암울했던 시대를 살다 간 카프카나,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나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우주의 미아, 정신황폐화시대의 사생아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카프카는 이렇게 주장했을 것이다.
"많은 사물은 반대 가운데로 결연히 뛰어들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타향을 헤매지 않으면 안 된다."
카프카는 그저 '한 마리 까마귀처럼' 현세의 변방을 헤매어 다닌 고독한 나그네였다. 그는 유태인으로 태어났지만 유태인으로 살지 못했고, 독일어로 글을 썼지만 독일인도 아니었다. 체코에서 태어나 살다가 죽었지만 체코인도 아니었으며, 노동자상해보험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일했지만 공무원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는 어쩌다가 이 낯선 별 - 지구라는 행성에 잠깐 들렸다가 스쳐 지나간 영원한 우주의 나그네였다. 본래의 목적지까지 도달하지도 못한 채 외곽만 맴돌다 간 고독한 방랑자요 이방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소속 불명의 존재였다.
나와 카프카와의 첫 교감은 약 6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1962년. 그때 나는 한창 문학적 감성으로 충만한 고교 2년생이었다. 학교수업보다는 걸신들린 듯 동서양의 경전과 고전과 문학, 역사, 철학, 종교서를 닥치는 대로 읽고 생각하며 인생과 세상 보는 법을 배워나가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프란츠 카프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나 혼자만 모순된 세상, 부조리한 시대와 불화하여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 나에 앞서서 카프카와 같은 존재도 있었네!
그렇게 해서 카프카의 작품들은 내게 문학적 영혼의 반려로 자리 잡았다. 내가 소설가의 길을 택하게 된 것도 결국은 카프카를 마음속의 스승, 영혼의 동류로 여겨 정신적으로 교감하며 문학적 지평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80고개를 바라보며 돌아보니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나는 무엇이며,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문단의 변두리에서 배회하며 소설다운 소설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소설가로 자부하기도 어렵고, 신문기자 노릇을 오래 했지만 기자다운 기자였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이 말세 같은 엽기적 난세에 나는 성의 일원이 되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자 쉴 새 없이 성의 입구를 찾아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 K의 모습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고 카프카는 말했다. 그러나 존재 자체가 모순이며 부조리였던 나의 스승 카프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지만 그래도 다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없어도 희망은 버리지 말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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