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걷는다 / 곽주현
아침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면 걷기부터 시작한다. 아파트에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오고 가기를 반복한다. 꼭두새벽부터 이러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치매 초기 증상쯤으로 여길 것 같다. 실없이 혼자 웃는다.
단순하게 왔다 갔다만 하지 않고 여러 동작을 하며 걷는다. 보폭을 넓게 해서 몇백 걸음을 가다가 다시 까치발 자세로 바꾸어 허리를 곧추세워 빠르기를 달리한다.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팔을 앞뒤로 내젓기, 양팔을 빙빙 돌리기, 손목 털기, 손뼉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움직여서 유산소 운동의 강도를 높인다. 말하자면 단순히 걷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동작을 넣어 전신운동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하다가 핸드폰의 만보기를 열어 보면 어느새 3천 보 넘게 숫자가 찍힌다.
걷기는 내가 잘하는 운동이다. 중고등학교를 외가에서 다녔다. 학교와의 거리가 멀어 애를 먹었다. 지금 대충 계산해 보니 8km쯤 되었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거의 매일 걸어 다녔다. 등교하려면 정류장까지 20분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또 15분을 더 가야 도착했다. 그래서 아예 도보로 통학했다. 동전 한 푼이 아쉬웠던 때라 차비를 아끼려고 그랬던 면도 있다. 시내를 통과해서 긴 거리를 걷다 보면 진열대에 놓인 빵이나 과자가 눈에 들어와 허기를 더했다. 혈기 왕성하고 잠도 많은 청소년 시절이라 피곤해서 책도 펴 보지 못하고 잠이 드는 날이 가끔 있었다. 그때는 그런 환경 때문에 늘 불만이 컸지만, 지금 이렇게 건강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
정초에 올해 목표 중 하나로 날마다 만 보 걷기를 실천해 보겠노라 다짐했다. 10여 일간은 잘 해냈는데 비가 내리고 눈이 오는 등의 날씨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해서 목표치에 미달한 날이 생겼다. 그래서 핸드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만 걸음을 채우면 축하 팡파르가 울리고 파란 막대그래프가 그어진다. 기계가 작동하는 거지만 그게 꽤 즐거움을 줘서 관련 앱을 자주 열어보며 걸음 수를 헤아리게 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실내에서라도 계속 걷는다. 이렇게 핸드폰이 알게 모르게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겨울철에 며칠씩 한파가 계속되면 바깥출입이 어렵다. 그런 날은 기분도 우울하고 몸이 쳐지기 마련인데 실내에서라도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해보면 기분도 풀리고 몸도 가벼워진다. 그러다가 25층 아파트 계단을 두세 번 오르기도 한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몇 바퀴씩 돌기도 한다. 날씨가 좋아지면 아파트 밖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광주천 변 길을 빠르게 걷는다. 이렇게 날마다 목표치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뭐 누구와 게임하듯 기를 쓰며 그러냐고 흉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건강 전문가가 말하는 하루 6, 7천 보 달성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연습(?)이 돼서 그런지 다른 운동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편인데 걷기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친구들과 산행을 하거나 둘레 길을 며칠간 계속해도 잘 이겨 낸다. 노년기가 되면 노화로 근육이 줄어들어 보행 속도가 느려진다. 그러나 나는 젊은 날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빠르게 잘 걷는 편이다. 내 나이 때의 지인 중에는 다리 통증으로 바깥출입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더러 있다. 그런 분은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뭐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평소에 걷기 운동을 소홀히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시내에서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면 한 시간 이내의 거리는 두 발로 간다. 전철을 탈 때도 노약자를 배려한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그런 생활 습관이 몸에 베어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이 글을 쓰다가도 생각이 막히면 노트북을 덮고 이 방 저 방을 몇백 보씩 돌아다닌다. 밖에서 휘젓고 걸으면 좋겠지만 아파트라는 곳이 쉽게 산책길로 나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이렇게 자주 그렇게 한다. 날씨나 다른 부득이한 사정으로 하루 내내 집에 있어야 할 때는 실내에서 만 보를 채운 날도 가끔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지만, 몇 번 나누어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외출이 줄어들고 또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버거운 느낌이 들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럴 때는 집안에서라도 의식적으로 이곳저곳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이 된다.
많이 걸으면 스트레스 완화, 근육 강화, 호흡 개선, 다이어트 효과, 숙면 돕기, 치매 예방 등 우리 몸의 건강을 크게 돕는다고 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내 경험으로 보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잠을 잘 잘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걸으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걷고 또 걷자. 아이고 이를 어쩌나 오늘은 9,800보네. 110일 동안 날마다 파란 막대그래프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