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찾아가는 산에 누군가 또 큰 길을 내어 놓았습니다.
길섶에는 잘려나간 나무들이 나뒹굴고 있고, 눈 녹은 자리마다 선연하게 드러나는 붉은 포크레인 바퀴 자국이 발걸음을 무겁게 합니다. 봄이 와도 푸른 풀씨 하나 싹틀 길 없어 보이는 기나긴 길 끝에는 갓 만들어진 무덤 하나가 둥글게 향나무들을 호위하며 앉았습니다. 살아서의 영광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단단한 화강암에 이름자도 크게 새겨놓았습니다.
죽어서 차지한 땅이 이리도 넓고, 죽어서 사는 집이 이리도 호화로우니, 뜻밖에 찾아든 길손이라도 능히 살아생전의 영광을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숲을 찾아왔던 길손으로서야 숲은 보지 못하고, 족히 몇 백 그루 나무들의 주검과 호화로운 무덤만을 보게 되었으니 못내 아쉬운 마음 어쩔 수 없습니다. 고인의 영광과 후손들의 지극한 정성을 알면서도 돌아오는 내내 그 영광과 정성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그렇게 재미없는 산책을 하고 돌아온 날 밤, 언젠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일에 대해 생각하다 아내 앞으로 짧은 편지 한 통을 써 둡니다.
사랑하는 아내여, 언젠가 행여 그대를 두고 이 몸이 세상을 먼저 뜬다면 아내여, 오랜 세월 나를 지탱해준 내 고단했을 육신을 한 줌의 재로 가벼이 해주오.
송창우의 ‘수목장을 위한 편지’ 중에서
첫댓글 아 아! 박꽃님 너무 감사합니다. 잘 지냈셨습니까?
아, 박꽃님이 아니구나. 누가 이런 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