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雲南省) 리장고성은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몽골 5대 칸이었던 쿠빌라이 칸 시대에 세워진 도시로 송나라 말기와 원나라 초기에 걸쳐 나시족(納西族)이 건설한 도시로 지금까지 중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고성 중의 하나로 꼽힌다. 가로·세로 2㎞쯤 되는 규모에 3000개의 옛날 목조 가옥이 가득 차 있다. 곳곳에 수로가 나있고 164개 골목이 미로로 얽혀 있다. 또한 8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리장고성은 예로부터 윈난성 남부의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푸얼(普耳)을 지나 바오산(保山)과 따리(大理)를 거쳐 리장(麗江)과 상거리라(香格里拉), 라싸(拉薩)에 이르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심도시였다. 1천여년 전부터 리장은 차(茶) 교역의 중심지였다.
중국이나 아시아의 다른 고성이 옛 고성의 자취만 남은 유적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면 리장고성은 1천년이상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나시족들이 현재까지도 거주하고 있는 ’살아있는’ 관광지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선가 해마다 수천명의 외국인과 외지인들이 리장고성의 아름다움에 취해 몇 달이고 눌러앉아 사는 경우가 흔하다.
리장은 원래 윈난의 산골 중에서도 깊은 산골에 위치한, 그야말로 산골동네였다. 지리적으로 운귀고원과 티벳고원이 만나는 자리, 이 오래된 도시는 해발 2400m 에 위치해 있다. 귀가 먹먹하다. 운귀고원과 티벳고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는 것은 해발고도가 높다는 사실 이외에 한가지 더 다른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바로 지진이다. 최악의 지진은 1996년에 발생했다. 리장고성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96년 지진피해 복구를 위해 리장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옛 원형 그대로를 지키고 있던 리장고성의 나시족 문화를 접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뤄진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리장고성의 명성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연간 3조~4조위안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리장고성은 중국 내 최고의 관광지로 발전했다.
리장의 신시가지, 즉 지금의 고성 밖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리고, 고성은 남았다. 고성 밖이 한줌의 흙과 돌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되돌아 놓여 있을 때, 고성안의 나시족들의 목조 전통 가옥들은 거짓말처럼 말짱했다. 현대의 ‘기술’ 과 ‘과학’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나시족들이 간직한 ‘지혜’ 가 그토록 강렬했던 대지진을 견뎌낸 것이다. 그리고 리장고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다. 리장 고성의 입구에는 거대한 물레방아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임을 나타내는 붉은색 벽이 있다. 그리고 물레방아 옆의 패방의’ 세계문화유산 리장 고성’ 이라는 글씨는 장쩌민 전 주석이 친필로 쓴 것이다. 그렇게 리장고성은 대지진을 견뎌낸 전설이 되었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 되었고, 중국 제일의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여전히 해발 2400m 의 산 위에 있지만 더 이상 이곳은 예전의 산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