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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사문 싯다르타는 ‘무상안온한 법을 찾기 위해’ 여러 수행자들에게 배웠다. 바이샬리 부근에 있던 알라라 칼라마 선인을 찾아가 ‘무소유처정’에 대해 듣고 수행했다. 사진은 인도 바이샬리에 현존하는 아소카석주와 스투파 유적. 불교신문 자료사진 |
한편 ‘무상안온한 열반’을 찾아 유행하던 사문 싯다르타는 어느덧 바이샬리성(毘舍利城)에 이르렀다. 〈맛지마니까야〉 56 ‘성구경’, 〈중아함경〉 56권 ‘라마경’ 등에 의하면 당시 바이샬리성 부근에는 ‘알라라 칼라마’라는 수행자가 300여명의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언제나 제자들을 위해 ‘있는 바가 없는 곳의 선정’(無所有處定)을 가르치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물었다. “존자여! 나는 당신의 법 안에서 수행하고자 하는데 될 수 있겠습니까.” “어진이여! 나는 상관없다. 행하고자 하면 곧 행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싯다르타가 다시 “당신은 어떻게 하여 이 법을 성취하셨나이까”하고 물었다. “나는 일체의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지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말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다만 알라라 칼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믿음이 있다. 그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정진이 있다. 그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지혜가 있다. 그런데 그는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한다. 나 역시 그 법을 증득하도록 하자.” 싯다르타는 즉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에 머물며 마음을 방일함 없이 수행 정진했다. 오래지 않아 그는 법을 증득했다. 법을 증득한 싯다르타는 알라라 칼라마에게 갔다. “존자여! 나도 역시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다.” “내가 이 법을 성취한 것처럼 당신도 이 법을 성취하였으니 우리들은 이제 동행자다. 당신도 이제 여기에 와서 나와 함께 대중들을 지도하자.”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못 된다. 나는 이제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무상안온한 열반을 구할 것이다”며 알라라 칼라마의 수행처를 떠났다.
이곳저곳을 유행하던 싯다르타는 마가다국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당시 라자가하 변두리에 한 수행자가 있었다. 이름이 ‘웃다카 라마풋타’인 그는 700여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언제나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닌 선정’(非想非非想處定)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싯다르타는 “존자여! 나는 당신의 법 안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괜찮습니까”하고 물었다. 웃다카 라마풋타는 “그대가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고 말했다. 싯다르타는 다시 “당신은 어떻게 이 법을 성취하셨습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였다. 이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한 것이다”고 라마풋타가 대답했다.
싯다르타는 열심히 정진했다. “다만 웃다카 라마풋타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도 믿음이 있다. 웃다카 라마풋타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도 정진이 있다. 웃다카 라마풋타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도 또한 지혜가 있다. 그는 스스로 이 법을 알고.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증득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법을 증득하도록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싯다르타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에 혼자 들어가 수행했다. 오래지 않아 이 법을 증득했다. 웃다카 라마풋타를 찾아 경위를 설명하자, 알라라 칼라마처럼 라마풋타도 “같이 제자들을 거느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못 된다. 나는 이제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무상안온한 열반을 구할 것이다.” 그리곤 라마풋타를 떠났다.
그러나 〈과거현재인과경〉 3권에는 〈맛지마니까야〉나 〈중아함경〉과 달리 상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태자(싯다르타)가 ‘아라라(阿羅羅)’ 선인(仙人)을 찾아가 말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는 법을 말씀하시면 지금 즐거이 듣겠습니다.” 그러자 아라라가 말했다. “중생들의 시초는 명초(冥初. 몸과 마음의 본원)에서 시작되었으며, 명초로부터 아만(我慢. 자아의식)이 일어나고, 아만으로부터 어리석은 마음이 나며,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염애(染愛)가 일어나고, 염애로부터 ‘다섯 가지 미세한 티끌의 기운’(五微塵氣. 色聲香味觸法)이 나며, 오대(五大. 地水火風空)로부터 탐냄과 성냄 등의 모든 번뇌가 일어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헤매면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이제 그대를 위해 간략히 말했을 뿐입니다.” 설명을 듣고 싯다르타가 다시 물었다. “어떠한 방편으로 나고 죽는 근본을 끊을 수 있습니까.”
“만약 나고 죽는 근본을 끊으려 하면 먼저 집을 떠나 계행을 닦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서 인욕하며 한적한 곳에 머물면서 선정을 닦아 익히되, 욕계의 악과 선하지 못함을 여의고 각(覺. 이치를 찾아가는 작용)도 있고 관(觀. 이치를 관찰하는 작용)도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야 합니다. 다음 각관(覺觀)이 사라지고 정(定)이 생기고 ‘기쁜 마음’(喜心)에 드는 것이 제2선이 되며, 기쁜 마음을 버리고 바른 생각이 되고 ‘즐거움의 근원’(樂根)을 갖추는 것이 제3선이 됩니다. 다시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고 ‘깨끗한 생각’(念)을 가지며 ‘버림’(捨)의 근원에 드는 것이 제4선이 되어 ‘생각이 없는 과보’(無想報)를 얻는 것입니다. 어떤 스승은 이를 해탈이라 하는데 선정으로부터 깨어난 것은 해탈의 자리가 아닌 줄 압니다. 형상(色)의 집착을 떠나 ‘공한 곳’(空處)에 들어 대상이 존재한다는 생각마저 사라져 알음알이의 의식(識)에 들며, 한량없는 의식이란 생각이 사라지고 오직 한 의식만을 자세히 살펴 그것마저 없는 곳(無所有處)에 들며, 갖가지 생각(想)을 떠나, 생각 아님도, 생각 아님도 아닌 곳(非想非非想處)에 드는 것, 이곳을 ‘마지막 해탈’(究竟解脫)이라 하니, 이것이 모든 배우는 이들의 ‘저 언덕’(彼岸)입니다. 그대가 만약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이 같은 행을 닦아야 합니다.”
설명을 들어도 싯다르타는 즐겁지 않았다. “영원히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생각 아님도, 생각 아님도 아닌 곳에는, ‘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내’가 없다고 하면 생각 아님도 생각 아님도 아니라고 말씀해서는 안 되며, 만약 ‘내’가 있다고 하면 ‘나’에게는 앎이 있습니까. 앎이 없습니까. 나에게 앎이 없다고 하면 곧 나무와 돌과 같을 것이요, ‘나’에게 만약 앎이 있다고 하면 곧 반연(攀緣. 얽매임)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반연이 있으면 물듦과 집착이 있으며 해탈이 아닙니다. 당신은 거친 번뇌는 다하였으나 미세한 번뇌는 아직 존재함을 스스로 모릅니다. 그 때문에 마지막 구경(究竟)이라 생각하나 미세한 번뇌는 더욱 자라 다시 태어남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저 언덕을 건넌 것이 아닌 줄 아십시오. ‘나’와 ‘나라는 생각’을 없애 온갖 것을 다 버린것이 바로 참 해탈입니다.”
머뭇거리는 아라라 선인에게 싯다르타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몇 살에 출가하셨으며 청정한 행을 닦아 온지 몇 년이나 되십니까.” “나는 나이 열여섯 살에 출가하였고 청정한 행을 닦아 온 지는 104년입니다.” 이 말을 들은 싯다르타는 ‘출가한 지 오래되었건만 얻게 된 법은 바로 이렇구나’ 생각하고, 뛰어난 법을 구하기 위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아라라 선인과 작별했다. 또 다른 선인인 ‘가란(加蘭)’이 살고 있는 곳에 가 논의하고 문답했으나 아라라 선인과 별 차이가 없어 곧 길을 떠나갔다. 떠나가는 싯다르타를 보며 두 선인은 ‘태자의 지혜야말로 깊고 미묘하며 기특한지라 헤아리기 어렵다’며 합장했다.
# 싯다르타가 만난 수행자들
발가.광명 선인 외 무명씨
경전에 다양한 인물 등장
싯다르타가 ‘무상안온한 열반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수행자들은 다양하다. 많은 선인들 이름이 경전에 나온다.
〈방광대장엄경〉 7권에는 비류범지고행여인(留梵志苦行女人), 파두마범지고행여인(波頭摩梵志苦行女人), 리바타범행선인(利婆陀梵行仙人), 광명선인(光明仙人), 조복선인(調伏仙人) 등의 이름이 보인다. 범지 고행여인은 바라문 출신으로, 고행하는 여인을 뜻한다. 이들을 차례로 방문한 싯다르타는 이후 아라라가란(阿羅羅迦蘭)과 라마(羅摩)의 아들 울두(鬱頭) 선인을 방문했다.
〈과거현재인과경〉 2권에는 발가선인(跋伽仙人)이란 이름도 나온다. 싯다르타가 옷을 바꿔 입고, 삭발한 뒤 처음으로 만난 선인이다. 발가선인과 함께 이름 없는 여러 선인들의 고행 장면도 기술돼 있다. 그러나 〈과거현재인과경〉 3권에는 빔비사라왕을 만난 후 ‘아라라’와 ‘가란’ 두 선인을 찾아갔다고 기록돼 있다. 〈불본행집경〉 18권, 〈중허마하제경〉 5권, 〈불소행찬〉 2권에도 발가선인 이름이 있다. 〈보요경〉 5권과 〈서응본기경〉에는 싯다르타가 빔비사라왕과 헤어진 다음 삼범지(三梵志. 세 명의 바라문)를 만난 것으로 나온다. 〈보요경〉 5권에는 후일 부처님이 제도한, 불을 섬기는 사화외도(事火外道)인 우위가섭(憂爲迦葉).나리가섭(那提迦葉).갈이가섭(竭夷迦葉)이 삼범지라고 적고 있다.
〈과거현재인과경〉과 〈방광대장엄경〉에 나오는 아라라와 가란, 〈수행본기경〉 하권에 보이는 ‘아란’과 ‘가란’은 같은 인물이다. 팔리불전 〈니다나가타〉에 나오는 ‘알라라 칼라마’가 바로 그다. 한 사람을 마치 두 사람인양 묘사해 놓았다. 라마의 아들 울두선인은 ‘웃다카 라마풋타’를 가리킨다.
[불교신문] 조병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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