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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환 칼럼 ■ 스크랩 인천을 떠나 천진으로
김석환 추천 0 조회 59 08.07.09 13: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번 중국여행은 배를 택했다

짐도 짐이지만 가격이 비행기의 반 밖에 안 되고 천진의 한중 교류전에 한국측 작품도 중국작가들에게 전달해줘야 하는 일도 있는데다가 작년 일 년을 중국에서 지내다 보니 시간의 길고 짧음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뀐 탓도 있으리라.

 

바쁜 제자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해 차에 짐을 싣고 인천 부둣가로 달려가니 천진가는 배가 없다. 인천 제2부두로 다시 가란다. 조금 넉넉히 와서 다행이었다.

짐을 부치려니 이번에는 문화재 반출 확인서를 받아 오란다. 말하자면 내 것은 미래의 문화재일터이지만 아직은 그냥 천 조각에 불과하니 그 확인을 받아 오란 것이다.

그런 저런 공간을 오가는데 짐도 무거운데 밀것도 없고 일도 많은지라 만약 제자 없이 혼자 왔으면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배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밤 8시 쯤 떠난 것 같다.

사실 나는 선실 침대에 누워 있었기에 정확한 출발 시간을 모른다.

도대체 배가 얼마나 조용한지 그 떠나는 느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커다란 배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세면장도 훌륭하고 심지어는 샤워실까지 있어서 도대체 불편함이란 없었다.

크루즈 여행이 좋다는데 이보다 얼마나 더 좋을까 싶다.

마음만 잘 먹으면 다 크루즈 고급여행이다. 꼭 몇 천 만원을 들여야만 할까?

 

집에서 가지고 온 누릉지를 먹으며 중국어 공부를 좀 하다 보니 졸음이 온다. 발 닦고 이 닦고 귀마개를 한 후 잠을 청하니 깊은 잠이다. 한 두어 번 뒤척인 것을 빼고는 너무도 안락한 긴 잠을 자고 난 후 눈을 떠 밖으로 나오니 아침이고 바다는 여전히 망망대해다.

 

가지고 온 누릉지를 다 먹고 또한 집에서 급히 가지고 온 식빵 네 조각에다, 역시 먹다 남은 집 냉장고에서 꺼낸 온 딸기 잼을 나무젓가락으로 발라 먹으니 그런대로 아침은 되었다.

너무 급히 가지고 오다보니 식빵이 부분적으로 곰팡이가 핀 것도 몰랐지만 그렇다고 죽기야 할까싶다. 하긴 집을 떠나서는 어차피 생사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니 그 정도야 일도 아닐 것이다.

 

침대가 아무리 편하다고는 하지만 형광등 밑에서 책 보는 것도 눈이 침침하기만 하고 몸을 뉘었다 세웠다하고 이리 저리 뒹굴렁뒹굴렁 해보니 역시 편치가 않다.

밖으로 나오니 대합실이 있고 창이 크고 밝아서 책보기도 그만인데다가 마침 책꽂이에 책도 있어 나는 그 곳에 몸뚱아리를 꽂기로 했다.

 

한참을 중국어 공부를 하다 책꽂이에 있는 산문집을 하나 꺼내 들었다. 어느 시골 신문사의 콩트집인 그 책은 읽을수록 빨려 들어간다. 내용 중에 이덕무의 독서팔경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그 첫 번 째가 ‘집을 떠나 여창에서’라고 되어 있는데 마침 내가 그렇다.

오랜 만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는 맛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다.

 

내용 중에 몇 가지를 더듬어 보면.

‘꿀 한방울이 쓸개즙보다 많은 파리를 잡는다’

‘고생은 같이 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다’

‘물오리 다리를 짧다고 해서 억지로 늘려주면 괴로워하고 두루미의 다리를 길다고 해서 짧게 잘라주면 비참해진다.’

‘千計萬思量紅爐一點雪’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 ‘차돌을 씹은면 이빨이 부러진다’

 

잠깐 점심을 먹고 다시 자리를 잡아 그 한 권을 다 읽을 즈음 드디어 주변을 지나는 화물선이 자주 눈에 띄면서 항구가 보인다. 드디어 탕구에 도착한 것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부친 짐을 어디서 찾는 지 알 수가 없다. 겨우 물어물어 확인은 하니 나오기 전에 기다렸다가 짐을 찾아가지고 와야 하는 것을 내가 먼저 나와 버린 것이다.

비행기와는 시스템이 전혀 달라서 그런 오차가 나왔다. 겨우 짐을 찾아 수속을 다시 밟아 나오니 그림을 뜯으란다. 오나가나 그림이 늘 문제다. 겨우 모든 것을 마치고 중국 작가들에 그림을 전달하고 북경 가는 셔틀버스로 가니 내가 제일 마지막손님이다.

 

저녁도 거른 고픈 배를 잡고 버스에 올라 두 시간 반 정도를 달리니 북경이고 나는 지인이 일러준 주소대로 ‘왕징’의 아파트에 들어가니 밤 열두시가 조금 넘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달포 정도의 북경 생활이 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어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초행길로는 괜찮은 편이다. 더군다나 중국인 것을 감안하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코노미 침대칸.

내가 탄 배 중에서 가장 안락한 잠자리.

그리스 이태리 일본 등 에서도 타 봤지만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엔진에서 멀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배가 언제 떠났는지 가는 건지 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의 기차여행 때 이용했던 침대칸보다 훨씬 크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편하기만 그만.

그 안에 형광등도 있어서 맘대로 켰다 껏다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차 침대칸은 9시 반이면 무조건 소등이어서 잠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지만

기차칸은 어둡더라도 좁고 삼층으로 뒤어 있어서 둘이 같이 포개고 자는 일이 아주 철심장아니면 힘들지만 배는 넓고 또 밀폐감이 좋은데다가 적당한 소음도 있고 위아래층으로 침대가 딱 두개 뿐인지라 위침대로나 아래 침대로나 합방을 하고 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

부부의 경우라야겠지만...

 

                                                                  인천 부두.

 

                                                                         기계실.

초라한 외등이 내 맘 같다.

 

 

                                                         등이 벽에 그린 그림.

등의 녹물이 바람에 휘날리어 오랜 세월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배의 외벽을 때려서 그린 그림이 어쩜 내그림보다 낫다.

그 시간성이나 은은함이 잔잔함 감동을 줄 정도다. 등도 삶이 있어 이처럼 피를 토해 그의 삶을 그려낸 것만 같다.

 

 

                                                        배의 내부 복도.

 

                                  식당의 메뉴판.

나는 오천원짜리 비빔국수를 시켜먹었다.

워낙 내가 국수를 좋아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맛은 좀 서운한 정도였다.

맥주는 2000원.

 

                                                           식당 방 안.

넓은 공간도 있고 이처럼 호젓한 방도 있다.

저녁은 밖에서 먹었지만 다음날 점심은 이 호젓한 방에서 혼자 쇠고기 덧밥을 시켜먹었다.

 

                                                          배꼬랑지가 남긴 자국.

 

 지도에서 보면 바로 거기가 거긴 거 같아서 섬도 자주 보이고 배들도 많이 보일 듯이 좁기만 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막상 배를 타고 밖을 보니 가도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 뿐이었다.

작아도 바다는 바다고 커도 배는 배다.

그건 내 그림이 시원찮아도 나는 화가고 내 몰골이 시원찮아도 나는 남자인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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