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오칠닥의 회상. (재편)* 권외[圈 外 ] *

[일엽]

죽은 오칠닥의 회상.(재편) * 권외[圈 外 ] *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조선인을 징발해 갔다. 끌려간 조선인들은 사할린섬 등 일본의 탄광에서 노역에 시달리거나 군무원으로 차출되어 일본이 점거한 동남아와 남양군도의 군사기지 건설이나 철도건설에 동원되었다. 또한,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전투 병력도 강제로 징집하여 끌고 간 것이다.

1944년 6월 미국의 언론은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포로로 잡은 독일군 병정 중에 양 경종을 포함한 조선인 네 명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2 차대전 중에 독일군 속에 어떻게 조선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양 경종.

그는 경상도 북부지방의 소백산 골짜기에, 한 시골의 소작농 집안의 차남이었다.

(이하 양 경종의 이야기는 조정래의 <오 하느님 > 내용을 모방함.)

때는 1938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정신없이 몰입해 있던 시기다.

양 경종, 그의 아버지와 양 경종의 할아버지도 대대로 이어온 소작농이었다.

그 집안은 아버지에, 아버지도 소작농이었지만 그 위에 아버지도 역시 소작농이었다.

대대로 소작농이라는 家統을 이어왔지만 동시에 대대로 가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전통도 세운 셈이다. 형제 많고 일 많은 가난한 집안에 하루는 면 소재지의 지서에서 순사 두 명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몸서리쳐진다.

일제는 조선인을 징용에 동원하기를 본격화했다. 지난 장날에 장터에서 들은 소문에서도 누구네 누구의 아들도 또 다른 누구도 끌려갔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온 터이다. 일제는 일단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 기층민을 징용대상으로 삼았다. 징용을 다녀오면 면서기를 시켜 준다거나 달마다 주는 월급을 다 모으면 돌아와서는, 논 열 마지기는 살 돈이 된다고 하면서 회유하기도 하였고, 따르지 않으면 소작을 뺏고 온 가족을 만주로 이주시키겠다는 등으로 협박을 하였다.

그렇게 선택이 여지없는 결단의 순간이 양 경종의 집안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의 집에 순사가 다녀간 다음, 그다음 날 아버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경종아, 面에 순사가 댕겨간 거 알제? 우리 집안이 대대로 남의 땅뙈기나 부쳐 멍는 기 안쓰로운가 니를 면서기를 시킬라꼬 하드라."

"일본 놈이 머가 아쉽다꼬 내를 면서기를 다 시킬라꼬 할릴껴."

아버지는 서론을 길게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미 아들 경종은 자신이 말을 꺼내는 의도를 잘 알고 있다.

"우째겠노. 니 형은 장남이께 아무래도 빈빈찮은 집안이라도 지켜야, 안될라?"

"아부지요! 왜 내 껴? 징용에 끌려가면 죽는 거 아이껴? 뻔하이, 죽을 낀데 왜 내가 가야 하니 껴! 형을 보내소."

난감했다.

이미 장터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은 끌려가면 죽는다는 거다. 벌써 전사 통지서를 받은 집안도 있다 하고 징용대상자가 야반도주했다는 경우도 심심찮게 들렸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도망시키고 싶은 심정이야 절절하겠지만 그랬다가는 이 집안은 꼼짝없이 만주로 이주당하고 말 것이다. 일본놈들의 보복은 가차 없었다.

대충 짐 보따리를 챙긴 경종이가 사립문을 나선다.

"정신, 바짝 차리거래이 ~ 정신만 차리믄 호래이한테 물려가도 산데이!"

전장으로 나서는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지고 오장육부가 녹아내렸다.

어머니 뒤로 한 발짝 떨어져 석고처럼 굳어 있는 아버지는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아들에게 뭔가 하고자 하는 말이 도무지 입에서 맴돌기만 할 뿐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피붙이 내 자식을 전쟁터로 떠밀어내는 죗값을 어찌 감당할 건가.

경종이 저만치 대기하고 있는 헌병 도라꾸를 향해 휘 뿌연 안개 속으로 달음질칠 때 다급해진 그의 아버지가 한 마디 겨우 내뱉는다.

“총알을 피해 댕겨라!”

안타까움은 혓바닥을 구르다가 맨땅으로 덜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대대로 소작인 집안에서 성장한 양 경종은 일제의 태평양전쟁 징집자원으로 차출되어 그와 처지가 같은 많은 조선인 틈에 끼여 북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추위에 한껏 움츠리고 있다.

남의 나라, 아니 자신의 나라를 침략해 온 그 나라의 전쟁터에 끌려가는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놈팽이 형 대신에 집안의 일꾼인 자신을 밀어낸 그의 아버지에 대해 섭섭함과 원망 어린 심정에 몇 며칠 고단한 행로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쩌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라치면 운명의 여신은 여지없이 나타나서 실컷 조롱하고 사라지면 한참이나 시달린 후 잠에서 깨어나 이 암울한 현실을 몸소 받아들여만 했다.

끌려가는 비참한 현실을 더 눌러주는 현상이 조선인 선도반장, 이 유성과 권 무려의 행태였다.

대부분 징집병력은 양 경종과 같은 조선인 중에서도 소작농 집안이나 면 소재지의 장사치, 또는 막노동자와 같은 사회적인 약자나, 오갈 데 없는 걸인과 같은 그런 부류였다. 그러나 열차의 화물칸이 아닌 일본군 헌병들이 탑승하고 있는 객차에는 조선인도 몇이나 있었는데, 주로 일본 본토에서 유학생 중에 자원해서 징집에 합류한 이들이었다. 이들의 역할은 병력수송 중에 징집 열차가 만주에 있는 군관학교의 신병교육대로 이동하는 동안에 일본 헌병의 지시에 따라 조선인들을 통제하는 일이다.

친일파,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개신교 인사들이나 윤동주, 이광수, 모윤숙 등 여러 이름난 친일 문인들이 조선 청년들의 전쟁 참전 독려를 하는 가운데 유학생과 같은 지식인층에서는 학도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적 지원자도 있었다.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보람있게 죽자."

문인들의 일갈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를 통해서 조선의 학도들을 몰아쳤다.

"에 ~ 우리는 당신들과 다른 점이 있다. 당신들은 헌병들에 의해 끌려왔지만 우리는 학문을 탐구하던 학도들로서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나선 학도 의용군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식깡과 식기를 들고 화물칸을 오른 이 유성 반장과 권 무려 반장은 식사 배급 전에 일장 훈시를 한다. 일본군의 일본인 흉내를 내는 것이다. 같은 조선인이고 전쟁터로 향하는 처지야 함께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알량한 신분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나머지 대중 앞에 확실히 해 두자는 것이다. 헌병들도 무작위로 강제로 차출한 무지렁이 조선인과 학도병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했다. 양 경종은 그들과 오랫동안 지겨운 악연이 이어졌다. 밤이 되면 수시로 운명의 여신의 서늘한 미소가 꿈에 나타나고는 하였다.

1939년 여름, 몽골과 만주국의 국경지대인 할하강 유역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노몬한 전투라고 불리는 이 사태는 일본의 관동군이 몽골과의 국경분쟁이 일자, 먼저 공격을 시작했고 몽골군은 소련군과 연합하여 반격했다. 소련군은 500여 대에 달하는 신형무기인 탱크의 공격으로 주도권을 잡아 나갔고 일본군은 패색이 날로 짙어갔다.

양 경종은 자신의 위치가 지구상에 어디쯤인지조차 모르는 채, 희뿌연 새벽안개가 자욱한 참호 속에서 머리를 박은 상태로 점점 가까워지는 탱크의 쇠바퀴 소리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있는 순간에도 이렇게도 배가 곺을수 있을까? 난, 살아야 해! 소련군인들 일본군인들, 모두 내하고는 상관이 없어….)

전투가 시작되고 잠시 며칠 동안은 일본군이 우세한 듯 보였다. 양 경종, 역시 괜히 사기가 진작되고는 하였으나 몽골군과 소련군이 연합하여 공격하면서 일본군은 거듭 후퇴만 반복해 왔다. 특히나 소련군이 동원한 철갑 뭉치로 된 그놈의 탱크 앞에는 어떤 무기도 대적이 되지 않았다. 지원부대도 퇴각하였는지, 소멸하였는지 하루 두 끼로 줄어든 식량 배급이 한 끼로 줄어들고 그마저 그저께부터는 생으로 굶고 있다. 실탄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였고 눈에 띄게 병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징집된 조선인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일등국만이라고 자신만만하던 일본인 군인도 사라지고 안 보였다. 그런 중에도 조선인으로 이등 국민이라는 자격지심이 가졌던 학도호국단 출신, 이 유성이는 일인보다도 더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는 천황의 국민이 되고 싶어 했다.

“천황폐하 만세!, 일본제국 만세!”

참호 속에서 소련 탱크를 노려보고 있던 소대장 다까기 마사오는 그것들이 참호에 가까워지자 벌떡 일어나서 허리에 찬 일본도를 빼서 할복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양 경종은 미리 벗어 준비한 내의를 총대에 묶었다. 백기이다.

포로수용소에 입소하고부터는 양 경종을 굶는 것은 면했다. 거기서 만난 이가 학도호국단 출신인 권 무려였다. 벌써 포로의 때가 묻어 있는 것이 그는 진작에 부대를 이탈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이 유성이? 미친겨 어? 지가 일본놈이여 뭐여~어 웬수놈 좇 빨다가 뛰어나가서 뒈지게. 나으는, 소련 탱크부대가 진격한다는 소릴 듣고 말이여, 진작에 내뱉네. 쓰벌! 이봐, 경종이 낼 쯤이면 수용소 사무실에서 부를 것이네. 그러면 무조건 손도장을 찍게. 안 그러면 죽고, 그러면 우리는 이자, 쏘련군이 되는 것이네~ 에. 천황의 국민에서 스탈린의 군인이 되는 것이여!”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소련의 붉은 군대의 병정이 된 양 경종은 모든 게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군복도, 식사도, 언어도 모든 환경이 처음 겪는 현상이다. 문득, 양 경종은 자신이 전쟁터에 끌려온 軍馬의 신세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끼니만 해결되면 눈치껏 싸워주는 말이다. 포로수용소에서 크게 의지하였던 권 무려도 어느 순간부터는 볼 수 없었다. 양 경종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일본군이면서도 조선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군의 일본사람 포로는 다 사살되었을 것이다. 누가 말을 해 주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와 눈치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어쨌든 살아야 한다! 소련군이든, 일본군이던 나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 고향 땅을 밟으리라.)

1941년 6월 독일은 소련을 대대적으로 공격을 했다. 1945년 5월까지 약 4년 동안이나 지속한 이 전쟁은 2차대전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로 최악의 피해를 남긴 전투로 기록된다.

“적군에게 포로가 된 자조차도 배신자로 간주하겠다!”

스탈린은 무시무시한 엄포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흥! 배신자? 나는 소련군에 포로 된 일본군이 아닐세. 오로지 조선인일 뿐인 것을, 가마히 보께는 포로는 적어도 죽이지는 않더라. 지그들은 포로조차도 무신 전리품으로 생각카는 모양이제? 우얏튼 포로가 될 궁리를 할끼다.”

양 경종의 다짐처럼 결국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아니, 소련군 중에 웬 동양인이 있지? 이상한 일이네.”

독일군들은 양 경종을 신기해했다. 독일군에 포로가 된 일본군 출신의 조선인은 세 명이나 더 있었다.

“당신들은 총살을 당할 것인가? 독일군 군복을 입을 것인가?”

독일군 사령부에서는 통역을 통하여 조선인 네 명에게 협박을 가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전선에 있는 어느 해안의 군사시설 공사를 하는 독일군 工兵으로 투입이 된다.

1944년 2차대전의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은 육·해·공군의 합동으로 프랑스 북부해안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사상 최대의 진격함대를 조직하였다.

상륙작전이 성공할 경우 대규모의 연합군이 동쪽으로 진격해, 프랑스를 지나 나치 독일의 심장부까지 들어갈 예정이었다. 영국에서 미국군과 영국군 사령관들이 진격계획을 짜고 있을 때, 롬멜 독일 육군 원수는 예상되는 침공의 방어책임을 맡고, 독일군의 방비 시설을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 해안에 수중 장애물·방공호·지뢰를 설치하고 있었다.

영국의 프랑스 북부 공격은 그 유명한 제2차 세계대전의 'D-데이' 6월 6일에 시작되었다. 함선 1,200척, 항공기 1만 대, 상륙주정(上陸舟艇) 4,126척. 수송선 804척과 수백 대의 수륙양용 특수장갑차로 편성된 대부대가 15만 6,000명의 병력(미군 7만 3,000명, 영국·캐나다 합동군 8만 3,000명)을 노르망디에 상륙시켰는데, 13만 2,500명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넜고 2만 3,500명은 공중수송되었다.

참호에 몸을 숨기고 수많은 적군이 해안선을 침투하는 광경을 노려보던 양 경종의 뒤쪽으로 미군의 낙하산 부대가 한겨울 눈송이 내려앉듯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었다.

양 경종과 함께 조선인 일행은 이제 미군의 포로가 되어 미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미국 땅에서 일본과 독일의 항복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양 경종 일행은 포로 구분에 있어 국적이 소련으로 되어있었다. 소련 국적으로 되어있으면 조선으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르고, 소련군을 배신하고 독일군이 되어버린 자신들이 소련으로 돌아가면 어떤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국적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한다.

말 통하는 이 없는 미국 땅에서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포로수용소에서 혈서를 써서 자신의 할 말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일본도 아닌, 소련도 독일인도 아닌 조선인이다!"

다행히 소련말을 할 줄 아는 미군이 있어서, 소련말을 할 줄 아는 일행 중 한 명이 그들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국제적인 규약을 핑계로 거절되었다.

양 경종 일행은 다시 소련으로 향하게 된다. 그래도 전에 처음 소련군이 되었을 때의 약속을 생각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일본이 망하면 조선으로 보내주겠다고 하는 그들의 약속.

소련에 도착하여 트럭으로 이동 중에 잠시 차가 멈췄다. 수송병은 소련군 포로 일행을 차에서 내려 벌판에서 쉬도록 배려를 하였다. 양 경종은 풀밭에 누워서 막연히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는데 뭉실뭉실 뭉게구름이 뭉쳐져 냅다 소리를 지른다. 스탈린이었다.

“포로는 배신자이다! 배신자!”

양 경종이 흠칫하는 순간에, 온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쳤다.

따 따 따 따 콩 따 콩…….

오, 하느님!

5쪽, 70매.

(현대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