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침술을 공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접했던 것이 동양의학이었고 동양의학을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대체의학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구미(欧美)의 어떤 사람들은 동양의학, 즉 대체의학이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의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과 자연과학자들은 동양의학이라는 대체의학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양의학의 이론들이 과학적 사실들과 거리가 멀어서 막연하고 모호한 내용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동양의학의 어떤 이론들은 막연하고 모호함을 넘어서 미신적인 신앙이나 신념으로 신비화시킨 부분도 상당히 존재한다.
이와 같은 신비한 내용의 동양의학적 이론들은 많은 서양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냉철한 통찰력을 가진 과학자들에게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동양의학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훨씬 이전인 고대에 형성되었고 게다가 동양의학을 이루고 있는 이론적 개념들은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사실성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의학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비판 받아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인들의 선견지명이 드러나 보이는 지혜로운 측면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기(氣)에 관한 이론들이 그렇다.
동양의학의 이론을 이루는 기본은 기(氣)이다. 이 기(氣)라는 말을 빼놓고 동양의학을 설명하게 되면 어불성설이 될 정도이다. 기(氣)라는 하나의 글자에 의해 동양의학의 함축적인 이론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의학의 핵심을 이루는 이론은 음양과 오행이다. 음과 양, 그리고 오행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물질이 기(氣)이기 때문에 기(氣)라는 말을 빼놓고는 도저히 동양의학을 논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기(氣)라는 용어는 원래 동양의학의 고유 용어가 아니다. 중국의 고대인들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자연을 관찰하고 사고할 때 적절하게 생각해 낸 용어가 기(氣)인 것이다. 중국의 고대인들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을 기(氣)로 여겼고, 기의 운동변화에 의해 자연계의 모든 사물들이 생성소멸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 고대인들의 자연관이나 우주관은 기(氣)라는 물질에 바탕을 두었고 기를 바탕으로 하는 사유체계는 철학적인 주제로까지 발전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氣)라는 물질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관 내지 우주관이 작은 자연계를 이루는 인체의 신비를 관찰하거나 사고할 때도 적용되었다. 그 결과로 기(氣)라는 글자가 포함된 수많은 합성어에 의해 인체의 생명활동과 생리적인 현상, 그리고 병리적인 현상까지도 설명하려는 것이 동양의학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선조들은 인체 안에서 생명활동을 주재하는 물질을 기(氣)라는 아주 적절한 용어를 사용했으며 기라는 용어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까지 내려 놓았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인체에 작용하는 기를 너무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나를 만났던 어느 한의과대학의 교수조차 기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지를 못했다. 인체 안에서 작용하는 어떤 에너지가 아니겠느냐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이 전부이다. 기를 어떤 형태를 갖추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학은 기라는 말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는데 기를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인체를 보는 안목이 고대인들보다 오히려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이른바 대체의학을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인체 안에서의 생명활동이나 생리적인 현상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못하고 겉만 도는 애매모호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인들은 인체 안에서 생명이라는 현상을 만드는 데 기(氣)라는 물질이 작용하며 기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의해 놓았다.
"기는 인체 내에서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는 매우 강한 활력을 가지고 있는 정미로운 물질이며, 인체를 구성하고 신체 활동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다."이와 같은 정의를 좀 더 쉽게 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인체 안에서 생명할동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강한 활동성을 가진 정미(精微)로운 물질이다."
나로부터 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기가 '물질'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상당한 당혹감들을 나타냈다. 기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존재로 막연하게 생각하고들 있기 때문이었다.
기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기를 '물질'이라고 한 것은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 기는 어떠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실체의 물질이다. 그런데 실체를 이루는 물질의 크기가 너무 미세하여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기는 현미경학적인 크기를 이루고 있는 아주 미세한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고대인들이 '정미로운 물질'이라고 표현한 것이며 정미(精微)라는 말은 '아주 작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인체 안에는 생명활동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질들이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고대인들은 기(氣)라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인체 안에서 생명활동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질들을 생명과학에서는 '분자'라고 한다. 생명활동은 세포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며 이 사건으로 생명이라는 현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포 안에서의 생명활동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 움직일 수 없다.
세포 안에서의 생명활동이라는 생명현상은 무수한 분자들의 운동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세포 안에서의 가장 중요한 생명활동은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인체는 거의 단백질로 이루져 있으며,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효소, 항체 등과 같은 기능성 물질들도 모두 단백질이고 이런 단백질들은 소모품이다. 따라서 세포 안에서 조직의 여기저기서 필요로 하는 각기 다른 적정한 단백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만 한다. 단백질들을 만들기 위한 장치,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DNA), 만들어진 단백질을 포장하고 운반하는 장치, 만들어진 과정에서 불량이 난 단백질을 수리하거나 파괴하는 장치 등이 모두 분자 수준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분자물질로 이루어진 장치들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장치 또한 분자 수준의 물질들로 이루어졌으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미토콘드리아'라고 한다.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미토콘드리아를 세포 안의 발전소라고 하며 여기서는 포도당과 산소가 결합하여 화학반응을 일으켜 에너지(ATP)를 생산해 낸다.
뿐만 아니라 세포가 생명활동의 일환으로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미노산과 같은 원료가 끊임없이 공급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연료인 포도당, 산소 그리고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아미노산 등의 모든 것들이 분자 수준의 크기로 이루어진 물질들이다. 결국 분자 수준으로 이루어진 무수한 물질들의 움직임들에 의해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 안에서 생명활동이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포 안에서 움직이는 마이크로미터 내지 나노미터 크기의 무수한 물질들을 '분자'라고 하며 이러한 분자 수준의 물질들을 고대인들은 기가 막히게도 기(氣)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자연과학적인 정보나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수천 년 전의 고대인들이 인체 안에서의 생명현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크기의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그 자체가 대단히 놀라운 발상일 수밖에 없다. 순전히 상상이나 짐작에 의해 그런 일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추측했고, 그런 추측들이 오늘날에 와서 과학에 의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을 '분자생물학'이라고 하는데 분자생물학은 기(氣)를 설명하는 방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기는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아주 적절한 용어인 것이다.
앞에서 기를 인체 안에서 작용하는 에너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는데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는 에너지 뿐만 아니라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으며 고대인들은 인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포 수준의 생명활동들을 기라고 했고, 거기에는 음의 기, 양의 기, 장부의 기, 경락의 기, 정기(正氣), 사기(邪氣), 종기, 원기, 영기, 위기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고대인들이 나름대로 인체생리학적인 기능과 병리적인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기에 관한 동양의학적인 이론들이 어떤 면에서는 기막힐 정도로 현대인들을 놀랍게 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인체 안에서 음기와 양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건강한 상태이며 이 균형이 깨지면 질병의 상태라고 여겼다. 여기서의 음기와 양기를 어느 특정한 부위를 나타내는 것은 물론 아니며 포괄적인 현상을 일컫는다. 이 중에서 음양의 불균형에 관한 하나의 대표적인 예를 생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들 수 있다.
자율신경계는 장기를 지배하는 신경으로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서로 상반되는 기능을 한다. 교감신경은 낮 동안에 몸을 활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시켜 주고, 부교감신경은 반대로 밤 동안의 휴식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교감신경은 양의 기운에 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음의 기운에 해당하는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계가 균형을 이뤄야만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자율신경계의 실조증'이라고 하여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며 고대인들은 이런 상황을 음양의 균형이 깨졌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신경계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간에 신경섬유를 통해서 정보를 소통시켜 인체를 제어하는 기능을 가진다. 신경계의 이 같은 기능은 매우 복잡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흥분성과 억제성을 이용하여 몸 전체를 정교하고 미묘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당연하게도 신경계의 흥분성 기능은 양이며 억제성의 기능은 음이다. 그리고 신경섬유를 타고 흐르는 활동전위라는 전기적 신호에 의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고대인들은 신경섬유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활동전위를 기의 흐름이라고 감지를 했으며 이러한 기는 경락을 따라 흐른다고까지 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동양의학에는 정기(正氣)와 사기(邪氣)라는 말이 있는데, 고대인들의 질병의 발생 원인은 사기가 몸 안으로 침범했기 때문으로 여겼다. 사기가 몸 안으로 침범했을 때 정기가 맞서 싸워 물리치면 질병이 발생하지 않고, 정기가 힘이 떨어져 사기에게 밀리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아주 정확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정기라는 실체는 각종 병원체와 맞서 싸우는 면역세포, 즉 백혈구들을 말함이며, 사기는 병원체, 즉 박테리아, 바이러스, 진균, 기생충과 같은 병원성 미생물을 일컫는 것이기 때문에 면역학적 측면에서 정기와 사기를 생각하면 고대인들의 선견지명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동양의학의 기본 이론을 이루는 기에 관한 개념들을 통해 고대인들의 뛰어난 지혜에 감탄하는 부분도 있으나, 그렇지만 동양의학 이론의 대부분은 생명과학적 사실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 또한 직시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의학 이론은 어디까지나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 옛사람들의 소박한 생각으로 여기고 참고하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사실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 동양의학에서 설명하는 장부론이나 경락론, 정(精), 기(氣), 신(神), 혈(血), 진액(津液)에 관한 설명들은 많은 부분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이론들인데도, 이런 이론들을 오늘날의 한의학자나 대체의학자들이 교조주의(敎條主義)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들에 의한 동양의학의 교육은 자연과학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인체 생리학에 관한 정보나 지식이 매우 정확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에 굳이 동양의학 이론을 통해서 인체의 신비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과학이나 인체생리학은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물론 의사, 한의사들에게 필수의 기본 학문이며, 특히 의사나 한의사들은 두세 권의 인체생리학 교과서를 완전히 암기해야 할 정도로 정복해야만 한다. 인체생리학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서는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도나 대체의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인체생리학을 현대의학의 한 분야로 착각하여 관심밖의 학문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인체생리학은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든 대체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든 꾸준히 공부해야 할 바이블과 같은 학문으로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가 되고 만다.
※이 글과 연계하여 앞의 글 <세포 안에서 생명이라는 현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함께 읽으면 기(氣)에 대한 막연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