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히 성을 지킴.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 묵자가 성을 지키는데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너무 완고하여 변통할 줄 모르거나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준]墨守묵수
[유]守柱待兎수주대토 / 미생지신尾生之信 / 膠柱鼓瑟교주고슬 / 墨城之守묵성지수 / 刻舟求劍각주구검
[출전]『묵자』 공수편 [내용]묵적이란 이가 제나라에 있을 때 초나라가 공수반이 개발한 신무기인 사다리를 사용하여 송나라를 공격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묵자는 곧 초나라로 가 '공수반'을 만나 전쟁을 만류했다.송나라는 좁은 땅에 인구가 많은데, 땅이 넓은 초나라가 굳이 침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통렬히 공수반을 공박하고 초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부강한 나라가 빈곤한 나라를 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있으면서 이웃집의 하나밖에 없는 헌 옷을 훔치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논지로 초왕을 설득한 것이다. 이에 묵자는 모의(模擬)로 성(城)을 만들어 공수반과 일종의 전쟁게임을 했는데, 공수반은 열 가지 책략으로 성을 공격했으나 묵자는 끄떡도 안하고 아홉번이나 물리쳤다. 결국 초왕은 묵자에게 송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원문]公輸盤九設攻城之機變. 子墨子九距之. 公輸盤之攻械盡.子墨子之守 有餘
[참고]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楚(초)의 荊王(형왕)이 公輸般(공수반)이 만든 특수 사다리를 사용하여 宋(송)을 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기계는 전문적으로 城(성)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墨子는 즉시 荊王을 만나 만류했다. 그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열렬한 反戰論者(반전론자)였다.
‘전쟁이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에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비웃음만 사게 되지요. 제가 보기에 楚가 宋을 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荊王은 宋을 치지는 않았지만 墨子의 말은 믿지 않았다. 그러자 墨子가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城을 지킬테니 公輸般으로 하여금 치도록 해 보십시요.’ 과연 公輸般이 아홉번이나 공략했지만 끝내 墨子가 지키는 城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번에는 公輸般이 城을 지키도록 했는데 墨子는 아홉번이나 함락시켰다. 荊王은 그제서야 公輸般의 사다리가 缺點(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墨子가 城을 지킨 고사는 일약 유명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墨子가 城을 굳게 지킨 것을 ‘墨守’라고 했는데 전통이나 我執(아집), 또는 偏見(편견)에 사로잡혀 조금도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도 墨守라고 했다. 일종의 固守(고수), 死守(사수)인 셈이다. --<문화가 흐르는 한자>
[예문] ▷ 새로운 민족 문화의 창조가 단순한 과거의 묵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외래문화의 모방도 아닐 것이다. ▷ 자기 의견만을 묵수하다 ▷ 구습을 묵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