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일- 누가복음 20:27-44
잠언 21:21-26/ 찬송 171장
하나님에게는 살았느니라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에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찾아와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형을 대신해 형수에게 그 동생이 상속자를 세울 의무가 있다’는 모세의 율법(신 25:5)을 근거로 부활 논쟁을 벌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든 사례는 칠 형제가 모두 한 여자를 두고 차례로 혼인했다는 경우로, 현실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보기였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예수님에게 일곱이 모두 한 여자를 아내로 취했으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일곱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부활한 사람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면서, 사두개인들이 잘못된 전제를 갖고 질문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이 세상과 달리 저 세상에서는 시집가거나, 장가드는 일이 없고, 다시 죽지도 않으며, 천사와 같은 존재이고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부활을 불신하는 그들이 아닌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35)입니다.
예수님은 덧붙여 모세의 말(출 3:6)을 인용하십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37).
예수님은 설명하시기를, 일찍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조상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녔기에 여전히 그 이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38).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부활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적대자지만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39)라며 지지한 배경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과 논쟁에서 곤란에 빠졌고, 더 이상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40)었습니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분열되었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적대자들의 질문이 잠잠해진 뒤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41).
사람들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오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시 89:19-29)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메시야를 환영하며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습니다(막 11:10).
그런데 예수님은 시편의 말씀(시 110:1)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은 왜 그의 고백에서 자신의 자손을 가리켜 “주”(42)라고 부르냐며 반문하십니다.
예수님의 물음은 이전 다윗 왕권과 장차 이루어질 메시야 통치의 다른 차원과 그 차이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의도입니다.
이 땅에 다윗 가문으로 오신 메시야는 장차 하나님의 우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대로 “주”(42)로서 통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메시야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지녔다고 자부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잠시 어그러진 듯 보이나, 오히려 부활 신앙으로 거듭난 제자들로 인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십니다(행 2:34-36).
샬롬샬롬
☀ 다시 봄
1) 부활에 대한 입장에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8).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때론 협력하면서, 때론 대립한 이유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신앙의 모순을 드러내 예수님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바리새인들을 모세의 율법에 맞서는 자로 보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 새겨 봄
1) 예수님은 부활을 부정하려는 사두개인의 허무맹랑한 음모를 깨뜨리고, 그들이 믿는 율법에 근거하여 부활 신앙에 대해 분명히 증거하십니다. 부활의 삶은 하나님의 원초적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위대한 언약과 희망입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0-11).
첫댓글 주님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하늘나라 부활의 소망 품으며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며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 되게 하소서.
" 부활 때에 그 여자는 일곱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 "
.. "질문이 있으면 답은 반듯이 있다." 나의 스승인 사회 철학자 이상화 선생님의 말입니다. 당시 지식인이었으며 종교지도자인 그들이 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을까? 생각합니다. 나의 질문들이 이것과 닯아있지 않는가 묻습니다. 주님 내 가 살아가며 좋은 질문들을 갖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둔하고 어리석은 질문에도 우리를 깨워주시는 응답을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