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먼저, 박지성의 경우 미드필드나 공격진에 빈 틈이 어느 정도 보이지만 이영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왼쪽 풀백으로 뛰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가비 에인세는 최근 팬투표에 의해 2004/2005시즌 팀내 MVP로 선정될만큼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퍼거슨 감독도 언론을 통해 몇차례 에인세에 대한 신뢰감을 보인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영표가 에인세와 주전 경쟁을 해야한다면 곤란하다. 게다가 에인세는 이영표보다 한 살 어리다. 이렇다보니 이영표를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하려는 게 맨유의 구상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영표가 오른쪽에서 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을 맨유 입장에서 이러한 고려를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럴 요량이면 오른쪽 전문 풀백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이영표를 택할 이유가 없다. 만의 하나 그렇다한들 이건 이영표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지난 11년간 맨유의 주전 오른쪽 풀백으로 뛴 게리 네빌이 노쇠했다는 둥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네빌은 지난 시즌 전문가들이 뽑은 EPL 베스트11에 들었을만큼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시즌 후반부에 부상으로 몇 경기 뛰지 못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대비해 이영표를 영입하는거라면 미안하지만 '노 땡큐'다. 이영표 나이 벌써 스물 아홉인데 고작 한 살 위인 게리 네빌의 '후일'을 위해 이영표가 벤치에서 대기한다?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네빌은 실력과는 별개로 팀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선수다. 유스팀을 거쳐 93년 성인팀에 합류한 그는 말그대로 팀내의 터줏대감이다. 이런 선수의 '만일'을 대비해 맨유 벤치에 앉아있기에 이영표는 이미 너무 거물이다. 그러니, 만일 맨유로 이적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거나 이적할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PSV에 잔류하는 편이 훨씬 낫다.
다음으로,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박지성과 이영표의 나이 차를 고려해야 한다. 박지성이야 1~2년 정도 교체멤버로 뛴다한들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이영표는 다르다. 우리 나이로 이미 29살인 이영표는 교체멤버가 아닌 주전 출전 가능성이 높은 팀으로 이적해야 한다. 2006년 월드컵이 끝나면 삼십 줄에 접어드는 그가 굳이 벤치 멤버를 각오할 필요는 없다. 덧붙이면, 잉글랜드 팀 중에서는 아스날-첼시-맨유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팀에서 주전 경쟁이 가능한 선수가 바로 이영표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리버풀로 가는 게 적당한 선택이라 보는데...)
여기서는 외신에서 거론된 3개팀(에버튼,뉴캐슬,아스톤빌라)을 중심으로 몇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어차피 루머성 기사를 통해 논하는 것이니 그저 재미로 읽으시길, 바란다.
1) 에버튼 : 지난 시즌, 모두를 놀라게 한 - 심지어 에버튼 팬들조차 믿지 못한! - 성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거머쥔 에버튼. 하지만 올 시즌에도 아직 이렇다할 전력보강은 없다. 우디네제의 장신(195cm) 수비수 페르 크롤드럽, 토튼햄의 미드필더 사이먼 데이비스를 영입한 것이 전부. 눈에 띄는 것은 이탈리아 출신의 왼쪽 풀백 알렉스 피스토니를 방출한 사실이다. 에버튼의 '믿을만한 포백'에서 가장 취약한 포지션으로 꼽혔던 그는 시즌 말미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드필더 네이스미스에게 자리를 내주더니 결국 재계약에 실패한 채 방출됐다. 이영표가 들어간다면 주저없이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상황이다. 4-4-1-1 시스템을 주로 사용했던 지난 시즌의 에버튼은 양쪽 풀백들이 공격 가담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술적으로 수비를 우선했던 모예스 감독의 지시에 따른 것일텐데, 왼쪽 라인의 경우 미드필더로 나선 킬반(Kilbane)이 에버튼의 주 공격루트로 활용된 점을 감안하면 왼쪽 풀백의 경우 오버래핑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야 한다. 이 경우, 네덜란드 리그보다 체력소모가 심한 프리미어리그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영표에게는 보다 용이한 적응지가 될 수 있다. 네덜란드 리그 초기, 로벤의 뒷 공간을 책임질 당시와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덧붙이면, 에버튼은 킬반-카슬리(리티에)-카일-오스만(데이비스) 등이 늘어선 미드필더의 밀도가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는다. 올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다. 이영표가 가세한다면 더더욱 그렇겠다.
2) 뉴캐슬 유나이티드 : 지난 시즌 '다이어 vs 보이어'가 그라운드 위에서 벌인 사상 초유의 '같은 편 구타하기' 사건으로 인해 이른바 '콩가루 집안'으로 불리는 뉴캐슬. 성적 역시 곤두박질쳐서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팀이다. 그래선지 이번 시즌 상당히 많은 전력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미 클루이베르트, 벨라미, 암브로세, 로베르 등의 주전급 선수들을 내보냈고, 첼시에서 스코트 파커를 영입한데 이어 터키의 미드필더 엠레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뉴캐슬 변화의 초점은 역시 왼쪽 라인의 약화다. 지난 시즌 포르투갈에서 임대생활을 한 비아나를 내보낼 궁리를 하고 있으며 '말썽꾼'으로 이름난 프랑스 출신의 왼발잡이 미드필더 로베르는 이미 포츠머스로 이적시켰다. 왼쪽 수비를 보던 베르나르는 지난 겨울 사우스햄튼으로 옮겼고 첼시에서 데려온 바바야로는 어쩐 일인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빌빌대고 있다. 중앙수비 요원들이 왼쪽 수비를 본 적이 많을만큼 이 자리가 구멍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공격과 미드필드진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면서도 수비진은 점차 상승곡선을 그렸던 지난 시즌을 상기하면 뉴캐슬 행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괄괄하기로 이름난 수니스 감독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들어있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참고로, 이영표는 2003/2004 시즌 UEFA컵 8강 2차전을 뉴캐슬의 홈에서 치렀다. 박지성이 PK를 얻어내는 등 한국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였던 이 경기에서 맺은 뉴캐슬과의 인연이 팬들에게 어떤 잔상을 남겼다면 최근의 맹활약과 어우러진 이영표의 이미지는 새로운 무대에서 적응하는데 적잖은 힘이 될 것이다.
3) 아스톤 빌라 : 몇년 전 '리즈 돌풍'을 주도했던 데이빗 오리어리 감독이 이끄는 팀이다. 2003/2004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 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낙마할만큼 선전했지만 지난 시즌에는 10위에 그쳤다. 유독 공격진에 부상자가 많아 어려움을 겪였다. 올시즌에는 99/00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케빈 필립스, 체코의 거물 미드필더 파트릭 버거 등을 영입해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왼쪽 라인의 경우 거론된 세 팀 가운데 가장 튼실한 자원을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트리니다드토바고 태생의 잉글랜드 수비수 J로이드 사무엘이 붙박이 왼쪽 수비수다. 기량 면에서는 이영표가 꺾지 못할 이유가 없는 수준이기는 한데 이 팀의 유소년팀 출신인데다 세 시즌 이상 무리없이 주전 자리를 맡아왔기 때문에 갑작스런 교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뉴캐슬에서 영입한 아론 휴즈, 왕년에 잉글랜드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왼발잡이' 가레스 배리 등도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선수다. 따라서 아스톤 빌라가 적정 이적료를 요구하는 PSV의 액수를 맞춰가며 이영표 영입에 나설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의 유니폼을 입는다면 이영표가 주전 자리를 꿰차기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방인으로 적응기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겠지만 앞쪽에 나설 배리의 수비 가담도 좋기 때문에 이영표 특유의 오버래핑 능력도 발휘할 수 있을테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 축구의 정서상 별다른 이유없이 '터줏대감'을 밀어내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할 리는 만무하니 이영표 입단 가능성을 높게 쳐주기는 어렵다. 특히 사무엘의 경우 이제 고작 스물 다섯살에 불과한 젊은 선수라 굳이 노장급 선수로 갈아치울 이유도 없어보인다.
따라서 거론된 팀들 중에서는 에버튼이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리버풀도 좋겠다. 트라오레로 버티기에 리버풀 팬들의 기대는 너무 높다. 리세를 내려앉히지 않는다면 이영표는 훌륭한 영입 대상이 될 것이다. 재미로 적어내려간 글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영표 역시 EPL로 이적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재미난 시즌이 될 것 같아 흥분된 마음에 콧구멍이 벌름거린다. -,.- 그가 리버풀이나 에버튼의 왼쪽 풀백을 맡아 맨유의 박지성과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터치라인 부근에서 자리다툼을 벌인다든지 맨체스터 시티의 숀 라이트-필립스의 재기발랄함을 잠재운다면, 혹은 무링요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첼시의 오른쪽 풀백 페레이라를 그 현란한(!) 헛다리 드리블로 제껴내거나 베컴 결혼식의 들러리 게리 네빌의 다리 사이로 공을 밀어넣은 채 올드 트래포드의 잔디밭 위를 질주한다면... 그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겠는가 말이다. 오버하지 말라고? 뭐 어떤가. 축구팬의 상상은 자유이고, 이 글은 그래도 외신에서 먼저 뿌린 루머를 바탕으로 한 것이잖나 말이다. 여하간... 요즘 우리 선수들 정말 대단하다. 멋져버린다, 아주 그냥. 그래서 다음 시즌이 더욱 더욱 기대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