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확산 | 이탈리아의
통일 |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롬바르디아, 베네치아, 로마교황령, 사르데냐, 시칠리아 등)로 분열되어 있었고, 그 중 북부 이탈리아의 대부분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에 → 마치니는 ‘청년 이탈리아 당(1832)’을 세우고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오스트리아의 간섭으로 실패하였다 → 이후 통일 운동은 사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 프랑스 2월 혁명 이후, 사르데냐의 재상 카보우르는,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을 육성하고, 군대를 개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나폴레옹 3세)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탈리아의 중부와 북부를 통합하였다 → 이후,‘청년 이탈리아 당’의 가리발디가 나중에(1860)‘붉은 셔츠당 ’이라는 의용군을 조직하여,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정복하였다(남부 이탈리아의 통합). 그는 하나의 이탈리아 공화국 건설을 희망하여, 이를 위해 사르데냐 왕에게 헌납함으로써,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고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루어졌다(1861. 로마와 베네치아 제외) → 이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프로이센 편에 가담하여 승리함으로써, 로마와 베네치아까지 점령하여 오늘날의 통일을 완성하였다(1870). ⇒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일종으로,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것’이라는 뜻. 분열되었던 이탈리아의 통일(우리 민족은 하나)에 파스타가 있었다. |
독일의
통일 | 프랑스 동쪽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38개의 작은 주(소국)들이 ‘독일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 독일 연방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관세동맹을 맺었다. 이것이 독일 통일의 첫걸음이다. 독일 연방 내에서는 국가 간의 관세를 없애고,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통일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경제적 통일 달성) →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독일을 이루기 위해, 군비(군사적 준비. 전쟁 수행 준비)를 확장하는 등의 <철혈정책>을 실시하였다. → 철혈정책은 프로이센의 수상(재상) 비스마르크가 제창한 무력에 의한 독일의 통일정책이다. ‘독일의 통일은 연설이 아니라 철(무기)과 피(전투)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군비 증강에 힘쓴 결과, 우세한 무력(군사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 민족의 염원이었던 통일을 달성하였다. → 오스트리아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북독일 연방’이 결성되었고, 그 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자, 독일 남부의 여러 나라가 북독일 연방에 들어옴 → 통일 독일 건설 → 비스마르크의 요청으로,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이 독일의 황제가 됨(빌헬름 1세. ) → 독일 제국 수립(1871) → 하지만 실권은 비스마르크에게 있었고, 통일 후 20년 동안을 독일 제국의 재상으로 지내며,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이 되는데 기여함 → 오늘날 독일 성립의 중심에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