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산다는 게 뭔가. 일종의 자기 연소 같은 것, 한 사람 인생 역사를 쓰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것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라는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빼닮았다. 하나는 사람의 이치이고 하나는 자연의 이치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니 이젠 정말 가을인가 싶다. 밤낮의 기온이 달라졌다. 가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질 것이고 종내에는 모든 사물에 무언가를 남기고 가게 한다. 결실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 가을날 노을 나그네인 나는 내 나무에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까. 마음 같아선 겨울이 오기 전 맑은 가을하늘 아래에서 잘 익은 감을 따듯 똑똑 따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너 나 할 것 없이 내 나이쯤 된 사람이면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런데 거둘 게 아무것도 없다면 살기는 살았어도 헛살았다. 그런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누구보다 외롭고 쓸쓸하다. 그게 인생 역사다.
다행히 나에겐 그렇게 열매 맺을 나무가 있다. 무슨 나무인가 하면 나는 수필가이니 나의 분신이자 아끼고 사랑하는 수필나무다. 내 나이도 이제는 깊어져가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내 나무에서 잘 익은 열매를 따서 소쿠리에 담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있기는 해도 흠집이 너무 많아 자랑스럽게 거둘 만한 열매가 없을 것 같다. 그런 것을 사람들과 나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먹기도 싫다. 왜냐하면 내 이야기를 쓰다 보니 나는 수필가로 살아가며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가로 늦게 그때는 왜 그랬냐 싶어 속에서 천불이 난다. 만약 내 나무가 감나무라면 흠집 많은 감을 골라내어 햇볕과 바람에 말리고 말려 하연 분이 피어난 곶감으로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내 잘못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아니라 감이 그렇게 변신을 하고 나면 또 다른 감이 된다. 기왕 저지른 잘못이라면 수필가인 나는 포기하질 않고 이렇게라도 해서 사람들과 나누어먹고 싶다.
노을 나그네
만날 때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한다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詩句)처럼 혼자 있을 때 눈감고 가만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만날 때부터 떠날 것을 염려한 일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얼마 안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떠날 때를 염려하게 되었다. 이날 것 살아보니 사람 한평생 정말 별것 아니었다. 내 딴에는 산다고 살았어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였다. 내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었을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구절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어찌하다 보니 나도 어느덧 노을 나그네가 되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세상 만물 모두 다 떠나는 것, 그래서 미리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염려스러운 것은 지금이다. 항암으로 손이 망가져 버려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돌아오질 않는다. 뜬금없이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전에는 글씨가 반듯했다고 한다. 이젠 글을 못 쓴다. 억지로 쓰다 보면 삐뚤빼뚤 제 마음대로다. 컴퓨터 자판이야 독수리 타법으로 두드리는 거라 불편하지는 않지만 제일 불편한 게 뭔가를 보낼 때 주소 쓰기다. 하는 수 없이 컴퓨터에 쓴 것을 복사기로 출력해 일일이 가위로 오려 풀로 붙인다. 출간한 책을 보내거나 양이 많을 때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손에 감각도 예민하질 못해 너무 힘이 든다. 내가 왜 뜬금없이 노을 나그네를 이야기하다가 옆길로 새는가 하면 우리 모두 노을 나그네가 되어보면 포기하고 체념해야 하는 게 한둘 아니기 때문이다. 내 손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노을빛이 붉고 아름다워지려면 모든 걸 내려놓고, 버리고, 훌훌 벗어버릴 때다.
혼자가 되어보니
추석 연휴를 맞아 아내가 친정 식구들과 일박이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아내는 나 없이도 혼자 잘 챙겨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보니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밥 차려 먹는 것도 그렇고 먹고 난 뒤 설거지 하는 것도 아내 마음에 들게 하려니 예삿일이 아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들으면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몸도 불편하고 사지가 부드럽게 말을 안 들어 사소한 동작 하나도 힘이 든다. 혼자 두고 가려니 걱정된다며 아침 여행 가방을 들고 나가는 아내에게 내 걱정 조금도 하지 말고 잘 갔다 오라며 큰소리 떵떵 쳐놓고 막상 아내가 없으니 그야말로 사방이 적막강산이다. 생각하기에는 아내 없는 시간 혼자 글 쓰다 보면 이틀쯤은 금방 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시간이 안가도 그렇게 안 갈 수가 없었다.
신기한 것은 이전에는 그렇게 잘 써지던 글이 아내가 없으니, 한 문장도 제대로 못 쓰겠다.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책은 귀신도 모르는 걸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책에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책에 물어볼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나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묻고 자시고 할 것 없었다. 금방 답이 나왔다. 곁에 아내가 있을 때는 아내의 등에 나를 기대고 오로지 한곳으로 집중할 수 있었는데 기댈 곳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아내의 빈자리가 이리 큰 줄 몰랐다. 아내가 없으니 정전되어버린 것처럼 모든 게 올 스톱이다. 아침을 챙겨 먹고 책장 앞에 앉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고작 하룻밤을 혼자 있으며 이러는 내가 정말 한심스러웠다. 아까 말처럼 왜 이리 맥없이 구냐고 내가 나에게 물으니 그동안 나는 아내가 내게 해주는 일에 고마움 몰랐던 독불장군이었다. 모든 걸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말하자면 소중한 보석을 곁에 두고 조약돌 취급을 했다. 나는 이틀간 장 보러간 엄마 기다리는 어린아이였다.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배가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