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 이승휴 선생의 삼교합일과 인욕 바라밀 (村居自誡文)
2020년 4월 30일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오신 뜻을 배워야지요.
몇 년 전에 고려시기 이승휴 선생(1224-1300)께서 29살에 강화도에 와서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30살부터 삼척으로 돌아가서 은거하실 때 지은 자경문을 보고 선생의 뜻을 깊이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유불도 삼교에 따라 수양공부를 하고 종교에서는 단군에 귀의하였습니다. 더구나 동네 사람들에게 널리 보시하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번역하여 올립니다.
이승휴 선생은 삼교합일(三敎合一)을 일생의 지침으로 삼으셨습니다.
삼교합일은 불교의 마음수양, 도교의 양생술, 유학의 경세 세 가지 학술의 역할을 병행한다는 것입니다. 경세는 현대의 사회과학에 해당하며 마음수양과 양생술은 인문학과 보건의학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삼교합일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병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려시기와 중국 송원시기의 삼교합일 뜻은 명나라시기 왕양명의 삼교합일과는 다릅니다.
이승휴 선생은 날마다 불경을 읽고 배우고 특히 불교 여섯 가지 바라밀 가운데 인욕(忍欲) 바라밀을 실천하시려고 애썼습니다.
주목할 것은 인욕 바라밀에 따라 국가의 안위와 조정의 정치 득실에 관심을 기울였고 시골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관직, 학식, 돈 세 가지 자원(political, social, economic sources)을 이용하여 토지를 사서 모아 대토지를 소유하고 노비와 소작인을 거느린 호족(豪族)이 되지 않았습니다. 국가경영의 학식과 도덕덕 행실을 바탕으로 관직을 얻어 생활하는 선비(지식인과 관원)가 되는 삶 방식을 만들어 살았습니다. 사실상 조선시기 사대부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호족은 대토지와 노비를 사유하고 일부 토지를 소작인에게 경작시켜 임대료를 받았습니다. 결국에 노비와 소작인이 생산한 농업 수확물을 모두 호족이라는 개인 가족이 사유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호족의 대토지 소유제는 노비 또는 소작인들의 개인적, 자발적, 의욕적, 창의적 생산활동을 막았기 때문에 생산효율이 더 이상 증대시키지 못하는 제도이었습니다. 사실상 호족의 대토지 사유는 국민 개인들의 사유제 발전을 억압하였던 토지 사유제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도 소작인이 자기 소유의 토지도 아니니까 자기 돈으로 거름을 사서 빌려서 경작하는 토지를 기름지게 하지 않고 또한 큰돈을 모아 관개시설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토지 수확물이 증가하지 않습니다.
이승휴 선생이 토지를 매집하지 않고 또한 토지를 비옥하고 관개하지 않았던 것은 혹시 소극적이고 은거하는 생활태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승휴 선생이 호족생활을 포기한 경제적 태도는 사유제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청빈(淸貧)입니다. 인욕 바라밀이 결코 개인의 기본생활까지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승휴 선생이 강조하였던 청빈(淸貧)은 가정의 부부가 농사를 짓고 양잠을 하는 경제활동을 하여 가족을 양육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며, 결코 가장이 경제생활을 하지 않아 가족을 굶기고 끼니를 잇지 못하는 곤궁한 삶이 아닙니다. 다만 호족처럼 사치하거나 과시 소비를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요즘 사람들도 욕심을 넘어 탐욕 때문에 남들의 경제적 자유와 공정한 소유를 왜곡시키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규모가 커진 뒤부터는 사회복지제도가 많이 발전하였지만, 경제적 능력이 큰 개인들이 이승휴 선생처럼 인욕 바라밀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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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귀향하며 지은 자경문」:
관원을 지냈던 사람이지만 시골 오막살이에 살고 있으며,
나는 이상적인 꿈만 갖고 있고 현실적인 위력은 없다.
시골에 살면서 조심할 것도 많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국가의 안위와 조정의 정치 득실뿐이다.
점치는 도참이나 갖가지 잡설들은 절대로 입에 올리지 말고,
내 행실은 옳고 그름에 따르고 마음가짐도 착하고 나쁨에 따라야한다.
동네 사람들이 부탁하더라도 가급적 간여하지 않고 일을 크게 만들지 않겠다.
청빈을 즐거움으로 알고 살겠다.
작은 초가집 1칸이면 만족하고, 나물밥이면 배부르다고 여기겠다.
농사짓고 틈틈이 누에를 쳐서 실을 짜고 방직하여 생활하며,
내가 글공부하였다는 것을 숨기련다.
퇴직 관원의 위세를 내세워서 백성들을 힘들게 부리지도 않으련다.
관청 문턱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련다.
설사 어쩔 수 없이 손님을 만나더라도 귀담아듣지 않고,
개인적으로 친하게 이야기할 경우에는 나와 다른 견해도 받아들이겠다.
남들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나는 마음속에서 자꾸자꾸 반성할 것이다.
시골의 유지 또는 호족을 만나면 예의를 다하고, 존경하되 아첨하지 않겠고,
내 마음에 없는 말을 하여 내 마음속에서 조금도 미움을 싹트지 않게 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삼독(三毒)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겠다.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경작하고 수확하는 데 힘쓰겠다.
그렇지만 농사일를 많이 늘리지 않고, 수확물이 쓰고 남으면 남는 만큼 농사를 줄이겠다.
농사를 줄여서 논밭이 황폐하더라도 물을 대서 기름진 땅으로 만들지 않겠다.
날씨가 가물고 뜨겁더라도 물도랑을 만들지 않겠다.
주(周)나라 사람들은 땅의 경계를 서로 양보하고 싸우지 않았다던데,
훌륭한 임금의 덕을 입은 평화는 하늘이 내려준 복이다.
전쟁이 일어나서 병력과 곡식을 징발하더라도,
내가 내야할 것을 백성에게 전가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에게 위탁하여 은폐시키지 않겠다.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걱정하고, 일이 잘 되더라도 원망하겠지.
그래서 한가한 시간에는 바둑을 둘 것이고,
술이 걱정을 잊게 해주니 가끔 술상을 차리련다.
직업이 유학(儒學)을 공부한 사람이니, 틈틈이 풍월을 읊는 문학작품을 짓고 싶다.
어떻게 살더라도 이런 뜻을 완전히 잊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짓지 않으련다.
시국을 논의할 일이야 많겠지만 나 같은 보통 지식인이 떠들 것은 없다.
집안이 좁고 가난하더라도 남들에게 아첨하며 구걸하지 않겠다.
지도자로서의 지식인은 가난하여 꽉 막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며,
초보 지식인도 행실을 반듯하게 하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원칙을 위배하지 않을 것이고, 화가 나더라도 돌봐주어 잘 되길 바랄 것이다.
남들에게는 너그럽게 하면서 절대로 소송을 걸지 않으련다.
마음속 깊이 타고난 참된 마음을 기를 것이고 세상에서는 시속을 잘 따르련다.
유학자로서 못난 자신을 억제하고 겸손하며 항상 낮은 마음을 가지련다.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몸을 깨끗이 씻고,
불경을 날마다 읽고 배우며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련다.
때때로 정좌하여 도가의 내관(內觀) 수련방법을 익히려는데,
죽고 사는 일이 큰일이지만 무상하고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불도 삼교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어렵다고 게을러질 수도 있겠지.
내가 어떤 경지에 이르더라도 남들이 모른다고 무시하지 않으련다.
사람들이 쉽게 알지 못하면 나는 부처님처럼 자비심을 갖고 온갖 방법을 다하여 알려주련다.
백성들을 상대할 경우에는 절대로 나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으련다.
백성들은 아주 어리석더라도 이해력이 빠르고, 마음속에 많이 배운 사람처럼 상대하련다.
백성이 일 때문에 찾아오면 나는 부처님처럼 편안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를 상대하련다.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 성심성의로 상대하련다.
깡패 또는 못난 백성이 엉뚱한 생각들을 꺼내고,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옳지 못한 일을 강요하더라도,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저절로 사그러지기를 바라련다.
『상서、홍범(尚書、洪範)』에서도 삼덕(三德)을 말하지 않았더냐? 성격이 밝고 활달한 사람은 자신을 부드럽게 하여 상대방의 어리석은 고집을 꺾는다고.
불교에서는 참는 것(忍)이 보시하는 데 가장 좋은 처방이라고.
유불도 삼교의 성인 모두 참는 것(忍)을 배우고 늘려서 깨달았다고 하는데,
나도 이 말을 숨 쉬는 코끝에 올려놓고 순간이라도 잊지 않으련다.
내가 이렇게 못한다면 누가 나를 똑똑하다고 말하겠는가?
李承休,「村居自誡文」:
身自簪紳,家于蓬蓽。𨈟(我)有空名,威無顯實。
於此誡多,孰爲第一?家國安危,朝廷得失。
圖讖雜言,莫霑唇舌。杖節是非,分符善惡。
郡人所行,亦莫論說,事輒削繁。
淸貧是樂。
茅屋一間,容身亦足。蔬食一盂,可充口腹。
緣蠶爲經,安兮藏拙。
莫遄官威,勞民以役。莫向官門,輕投汝迹。
設不得已,參見使客,愼勿耳邊。
私談親密,容有異令。人必汝謫,反覆其心。
鄕原強族,對之以禮,敬而勿褻。
小兮生憎,中汝以毒。
命旣關農,業于耕獲。且莫務多,剩則必略。
田汝荒蕪,莫爭衍沃。時當旱暵,莫爭溝洫。
周人讓畔,天眷之福。
官據軍興,點兵徵粟,莫挾齊民,冒陳于黷。
事難可必,成亦興讟。
棋可遣閑,不如不着。酒可忘憂,不如不設。
業已爲儒,嘲吟風月。
縱未全除,毋輕下筆。時諱頗多,庸知不觸。
雖寠且貧,莫從人乞。君子固窮,士不失節。
無以違忤,嗔而眷屬。矧可於人,能嫌對薄。
內養眞源,外順時俗。克己撝謙,卑以自牧。
灑掃一堂,躬勤盥濯。親近佛書,無虛棄日。
時或宴坐,廻光返炤。生死事大,無常迅速。
何可容易?心生放逸。莫以自修,輕他無識。
人不易知,汝當作佛。凡曰黔蒼,外如無骨。
至愚而神,中焉有蓄。如以事來,而康而色。
知與不知,與之敦穆。
無賴細人,意氣橫出,私以托公,不義來逼。
汝能下氣,彼意自歇。
『書』不云乎?高明柔克。忍之一字,吾家妙藥。
三敎聖人,修此而覺。怗在鼻尖,念念無忽。
汝如不爾,誰謂汝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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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 鳩摩羅什譯,『佛遺教經』:
“忍之爲德,持戒苦行所不能及。能行忍者,乃可名爲有力大人。若其不能歡喜忍受惡罵之毒,如飲甘露者,不名入智慧人也。”
* 『羅云忍辱經』:“忍之爲明,愈於日月。龍象之力,可謂盛猛,比之於忍,萬不如一。七寶之耀,凡俗所貴,然其招憂,以致災患;忍之爲寶,終始獲安。布施十方,雖有大福,福不如忍。”
“世無所怙,惟忍可恃。忍爲安宅,災怪不生;忍爲神鎧,眾兵不加;忍爲大舟,可以渡難;忍爲良藥,能濟眾命;忍者之志,何願不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