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클래식을 만나다 - 8. 봄을 재촉하는 목신의 악기, 플루트](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age.bugsm.co.kr%2FuniContent%2Fbanner%2FBQ3H860KQOU8ZM1OD6LF%2Ftitle2.jpg)
어디선가 목신이 부는 피리 소리가 들립니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대지의 봄을 재촉하는 소리입니다. 봄에 잘 어울리는 악기들 중에 플루트가 으뜸입니다.
조금 있으면 나른한 춘곤증의 시절이 올 겁니다. 몽환적인 점묘화 같은 봄. 플루트의 음색과 닮았습니다.
봄을 연상시키는 플루트곡 하면 가장 먼저 드뷔시(Claude Debussy)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떠오릅니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대지의 봄을 재촉하는 소리입니다. 봄에 잘 어울리는 악기들 중에 플루트가 으뜸입니다.
조금 있으면 나른한 춘곤증의 시절이 올 겁니다. 몽환적인 점묘화 같은 봄. 플루트의 음색과 닮았습니다.
봄을 연상시키는 플루트곡 하면 가장 먼저 드뷔시(Claude Debussy)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떠오릅니다.
곡이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플루트 악구들은 처음에는 독주로 연주된 다음 반복되고, 이어 오케스트라의 현악기들이 반주되죠.
연속적 흐름으로 흐르는 느슨한 리듬이나 악센트를 약하게 만들거나 생략하는데요.
드뷔시는 인상파 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꿈처럼 흐르는 성격을 보여줍니다.
말라르메 시에 기초한 작품에 나오는 목신은 피리를 불며 양떼를 몹니다. 목신이 부는 피리는 플루트로 표현되죠.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보스턴 심포니 체임버 앙상블(Boston Symphony Chamber Players)의 연주로 들어보시죠.
플루트는 60~70센티미터인 곧은 관으로 된 가로 피리입니다, 재료는 나무부터 순은, 양은, 금, 백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플루트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고대 그리스에서 러시아, 독일, 스페인 등으로 퍼졌고, 13세기에는 음유시인인 트루바두르 등과 함께 유행했습니다.
플루트는 모든 음역에서 고른 특성을 갖습니다. 기본 음색은 특유의 진동 때문에 연기가 움직이듯 가벼운 느낌을 줍니다.
불어넣는 호흡의 양과 진동의 강도를 연주자가 입술로 직접 조절하기 때문에 연주자에 따라 소리의 활동이나 특성이 큰 폭으로 달라집니다.
부는 모습이 쉬워 보이지만 사실 플루트는 주입되는 바람의 양이 튜바보다도 몇 배나 더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가냘프지만 속으로는 강한 힘이 흐르는 외유내강의 악기죠.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수시로 음정이 오르내려 플루트 연주자에겐 정확한 귀가 요구됩니다.
플루트는 초창기에 주로 회양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습기를 잘 타는 결점 때문에 상아로 만들기도 했는데 회양목 플루트가 음색이 더 좋았다고 하죠.
유럽에 진출한 이후 플루트는 점점 더 널리 보급됐고, 18세기가 전환점이 됩니다.
파리의 저명한 연주자가 영국에서 그 연주를 공개하기도 하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스승인 크반츠가 드레스덴의 유명한 연주자 피에르 뷔파르단에게 배웠을 때도 이 무렵입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뷔파르단을 위 쓴 곡이 해 플루트를 위한 파르티타 A단조 BWV1013입니다.
19세기 이후 본격적인 플루트의 시대가 열립니다. 악기의 성능과 기능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뮌헨의 연주자이자 제작자 테오발트 뵘인데요.
그는 원추형의 몸체를 원통형으로 하고, 구멍의 크기를 넓혀 음향학적으로 합리적이고 규칙적인 반음을 얻을 수 있도록 개량했습니다.
재질을 목재에서 금속제로 바꾼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나무로 플루트와 금속 플루트가 근본적으로 다른 음색을 내지는 않습니다. 금속제 플루트 소리가 약간 더 가볍게 느껴집니다.
강하게 불 때 목제 플루트에 비해 더욱 날카로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악기의 몸인 원통의 벽 두께가 목재보다 더 얇기 때문입니다.
얇게 만들 수 있다는 게 금속제가 갖는 장점입니다.
뵘 이전의 플루트는 표현에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트릴이나 반음을 내는 장치가 부족해서였죠.
그러다보니 플루트를 위한 음악이 단조로워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플루트를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당시에 개량되지 않은 악기의 한계와 연주를 못하는 연주자들을 싫어했던 거겠죠.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하면서 “모차르트는 음악을 일부러 쉽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일 겁니다.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4곡의 플루트 4중주, 플루트 협주곡 1번, 2번 등은 모두 명곡입니다.
귀에 익은 곡이죠?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1번입니다.
테오발트 뵘의 개량 악기가 선보인 이래 플루트의 연주기술은 19세기 후반 급격히 발전합니다.
19세기의 신기술을 20세기에 전해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프랑스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는 영향력 있는 수많은 연주자들을 배출하며 '플루트의 나라'로 통합니다.
파리 음악원 교수를 지냈던 마르셀 모이즈(Marcel Moyse)가 그 대부입니다.
그에게 배운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은 플루트를 진정한 독주악기로 만든 현대 플루트의 아버지입니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랑팔은 음악원 졸업 후 오페라 극장의 플루트 주자로 취직합니다. 그러나 모이즈의 권유로 독주자의 길을 선택했죠.
세련된 음의 세공, 탁월한 음량 조절. 전대에 비해 진일보한 랑팔의 기교는 단번에 그에게 유망한 독주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랑팔은 수많은 연주여행을 통해 엄청난 양의 플루트 곡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바로크의 진지함에서부터 고전의 단아함, 낭만주의의 화려함 등 랑팔의 솜씨로 힘을 얻은 곡은 이루 나열하기 힘들 정돕니다.
랑팔은 20세기 현대 작곡가들의 시선을 끈 으뜸가는 플루트 주자이기도 했습니다.
1950년 앙드레 졸리베를 시작으로 세르주 니그, 장 프랑세의 협주곡을 차례로 헌정받아 초연합니다.
랑팔의 연주에 반한 구 소련의 작곡가 하차투리안은 그에게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플루트로 연주해보길 권했고 그 편곡을 랑팔이 직접 맡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더 익숙할 곡인데요.
하차투리안의 플루트 협주곡중 3악장, 장 피에르 랑팔의 연주입니다.
랑팔과 라이벌을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은 아일랜드 출신의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1939년생인 골웨이는 랑팔보다 17세 연하죠.
수업 과정을 보면 골웨이는 랑팔과 밀접합니다.
영국에서 플루트를 익힌 뒤 프랑스로 건너가 모이즈에게 개인교습을 받았고 파리 음악원에 등록하여 랑팔에게 직접 악기를 배우기도 했죠.
모든 수업을 마친 골웨이는 보다 안정된 직장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간간이 독주회를 열기도 했지만 주업은 언제나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는 것이었죠.
골웨이는 새들러스 웰즈 오페라 오케스트라, 코벤트 가든 오페라, BBC심포니, 런던 심포니, 로열 필, 베를린 필 등 굵직한 악단의 플루트 수석을 역임합니다.
카라얀 밑에서 6년 동안 봉직한 골웨이는 1975년 자리를 박차고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독주자 생활은 랑팔만큼 폭넓었지만 두 사람의 색깔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골웨이는 하워드 쇼어가 담당한 '반지의 제왕' OST에도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플루트 협주곡의 명곡으로 꼽히는 메르카단테 협주곡 중 3악장입니다. 제임스 골웨이의 플루트 연주입니다.
랑팔과 골웨이의 구도 속에서 이탈리아의 플루티스트 세베리노 가첼로니가 조용히 이름을 키워 나갑니다.
마을 밴드에서 처음 플루트를 배운 가첼로니는 로마 음악원을 나온 뒤 RAI 방송교향악단에서 연주하다가 정식 솔리스트로 데뷔했죠.
가첼로니는 이 무지치와의 비발디 녹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콘서트홀에서의 주 영역은 마데르나, 불레즈, 베리오, 노노 등 현대음악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가첼로니는 그와는 상극으로 여겨지는 비틀스(The Beatles)의 노래 등 팝송을 자주 연주했고 로셀리니, 펠리니 등 쟁쟁한 이탈리아 영화거장이 만든 영화를 플루트 소리로 치장해 주어 대중들의 인기를 끕니다.
경력과 음악성 면에서 골웨이랑 닮은 데가 있습니다.
세베리노 가첼로니가 연주한 비발디 플루트 협주곡 4번 RV435의 1악장입니다.
프랑스의 막상스 라뤼(Maxence Larrieu), 알랭 마리옹(Alain Marion)은 묘한 공통점이 있죠.
둘다 마르세유 출신인데다가 마르세유 음악원에서 장 피에르의 부친 조제프 랑팔에게, 파리 음악원에서는 아들 랑팔에게 플루트를 배웠다는 점이죠.
졸업 후 라뤼가 스위스에 자리를 잡은 반면, 마리옹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점은 다르지만 부드러운 텅잉으로 소리의 세련미를 중시한 프랑스 계통의 연주법은 두 연주자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옹은 1998년 8월 서울에 있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막상스 라뤼의 플루트, 수잔 밀도니안(Susanna Mildonian)의 하프 연주로 비제 '카르멘' 중 간주곡을 감상하시죠.
알랭 마리옹의 플루트, 앙젤르 뒤보의 바이올린 연주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부인과 수잔나 '편지의 2중창'을 들어보시겠습니다.
페터 루카스 그라프(Peter-Lukas Graf)와 오렐 니콜레(Aurele Nicolet)도 닮은꼴입니다.
스위스 태생인 두 사람은 모두 프랑스에 유학와서 마르셀 모이즈에게 배웠습니다.
현대음악을 즐겨 연주했지만 골웨이나 가첼로니 같은 '외도'는 삼가고 바로크와 고전 작품을 통해 명성을 쌓았다는 점은 프랑스 플루트 악파의 잔가지로서 작은 스위스 계파를 형성하기에 충분합니다.
페터 루카스 그라프가 연주하는 마렝 마레의 '스페인의 라 폴리아' 변주곡입니다.
오렐 니콜레가 연주하는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1악장의 플루트 편곡 버전입니다.
파트릭 갈루아(Patrick Gallois), 엠마누엘 파후드(Emmanuel Pahud)는 각각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수석과 독주자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또 각각 DG와 EMI라는 메이저 음반사 계약을 통해 유명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는 프랑스계 플루티스트죠.
이밖에도 비프랑스계 연주자 중에는 빈 필 수석으로 독주활동을 병행한 볼프강 슐츠, 영국인으로 프랑스 스타일을 전한 윌리엄 베네트, 미국의 줄리어스 베이커, 헝가리서 태어나 덴마크로 귀화한 안드라스 아도리앙 등이 지명도 높습니다.
수잔 밀란, 제니퍼 스팅턴 같은 여성 플루티스트들도 돋보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플루트 수석을 역임한 엠마누엘 파후드의 무반주 플루트 판타지아 1번 연주입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과 재즈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플루트곡을 소개해 드립니다.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이 앞서 언급했던 장 피에르 랑팔을 위해 쓴 곡입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은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시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찍이 1965년 음악 개그의 형식을 빌린 레코딩 '재즈 갱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탄생했고 이후 1972년에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가 나옵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한 젊은 피아니스트 장 베르나르 포미에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위해 위촉한 작품이었습니다.
'크로스오버' 장르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됐습니다.
1975년 세계적인 거장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1922~2000)을 위해 쓴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은 랑팔의 명성과 볼링의 세련된 음악성으로 성공을 안겨 주었습니다.
재즈의 경쾌한 리듬, 랑팔의 깨끗한 음색이 만들어 낸 음악세계는 낯설지 않은 전대미문의 음악이었습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폭넓게 사랑받았습니다.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의 성공에 힘입어 볼링은 유명 클래식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을 위한 일련의 작품을 더 썼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 첼리스트 요요 마 등이 볼링의 재즈 피아노를 결합한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볼링의 작품은 재즈적이기는 하지만 과도하게 즉흥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모두 악보에 적었다는 점에서 천성적인 스윙 감각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연주가 가능했습니다. 이 곡은 하나의 고전이 됐습니다.
볼링은 재즈와 클래식의 가교 역할의 역사는 자신보다 유구하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이미 과거에 선구자 조지 거슈윈이 있었고, 모던 재즈 쿼텟(MJQ)의 존 루이스가 존재했습니다. 데이브 브루벡이나 스윙글 싱어즈도 있었죠. 제가 이들 모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방법으로 나의 음악을 합니다. 그 뿐입니다.”라고요.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에 피어난 꽃 같은 작품. 플루티스트 최나경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죠.
피아니스트 휴성, 베이시스트 샘 미네이, 드럼에 나다니엘 스미스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