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27-30 간음하지 말라
오늘 본문은 당시 유대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일곱 번째 계명 즉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내용의 말씀이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남녀가 서로 만나 음행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믿었기 때문에 자기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일이 없는 의로운 자라고 자부하였다. (자신을 ‘거룩한 자’라고 인정함)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행동으로 짓는 것도 ‘죄’이지만,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으로 짓는 죄를 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죄는 오직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죄라고 생각을 한다. 세상은 그렇다.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고 형벌을 주지는 않는다.
행동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만 형벌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 (6계명 살인하지 말라 -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도 형제를 마음에 미워했어도 하나님은 ‘살인을 했다’라고 하심. 요일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27-28절에 보면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음 - 살인죄, 간음죄 지었음) 그렇다. 죄에 대한 세상의 기준은 넓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너무 좁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간음하지 않았다.” 말하며 자기 의로움을 말하지만, 마음으로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살아 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마음으로 지은 죄는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직 행동으로 지은 죄만이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자신들을 의롭게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가식을 책망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심 - 감찰하심) 왕상8:39에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하셨고 시7:9에도 보면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죄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자) 예수님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잘못 해석하고 있음을 교훈하신 것이다. 여전히 마음으로 품은 죄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하나님의 뜻이 어디까지 인지를 분명히 교훈해 주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생각을 함)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바로 마음까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우리 모두는 생명(예수님)을 위해 반드시 마음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요14:6 길, 진리, 생명) 잠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들이 행동으로 아직 짓지는 않았지만, 계속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생명이신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있는 곳에 함께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를 떠나신다.
삼상4:21에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말씀하셨다. (범죄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기고 제사장이었던 흡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됨 - 이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가 출산하고 이가봇이라 지음) 그래서 사59:2에 보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말씀하신 것이다. 생명이신 예수님이 그 은혜와 영광이 떠나게 되면 깊은 어두움과 사망으로 덮이게 되는 것이다. (만사불통)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 말씀처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지만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눅18:11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요8장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말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때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말씀에 양심에 가책을 느껴 여인을 끌고 온 자들은 모두 다 가버렸다. (그들 모두 자신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임) 마7:3-5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하셨다.
29-30절에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영적인 의미로 해석) 눈을 뽑았다고, 오른 손을 찍어 버렸다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교훈의 말씀은 ‘죄를 멀리하라’는 말씀이다. (죄의 심각성과 확장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경고의 말씀임) 예수님은 눈과 손을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눈과 손 없이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낫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꼭 기억하길 바란다. (지옥을 살것이냐, 천국을 살것이냐 그것은 나의 선택임)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죄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따라 마음으로,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기 끝까지 싸우는 성도들이 되길 바라며, 이제부터 하나님 나라의 죄의 개념을 바르게 인식을 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