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에서 남쪽 조망, 인등산 지등산으로 뻗은 산줄기
우리는 정상에, 아니 텅 빈 한없는 공간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계곡 깊숙이 우윳빛 안개가 깔
려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해맑은 평온감과 함께 차라리 열반이라고 해야 할 이 무궁한 조화
의 상태에서 나는 깨어났다.
--- 라인홀트 메스너, 「도전」의 ‘히든 피크’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1월 14일(토), 맑음, 오후에는 바람 약간 붐
▶ 산행인원 : 13명(버들, 화당, 은하수, 드류, 김전무, 대간거사, 산그림애, 이상무, 도자,
해마, 인샬라, 가은, 메아리)
▶ 산행시간 : 9시간 11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6.0㎞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1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25 ~ 08 : 30 -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石川里), 산척초교 석천분교장(폐교), 산행시작
09 : 10 - 578m봉
11 : 00 - 761m봉
11 : 18 - 천등산(天登山, △807.1m)
12 : 27 ~ 13 : 10 - 하늘정원, 다릿재, 중식
13 : 31 - 534m봉
14 : 12 - 565m봉
14 : 42 - 605m봉
14 : 59 - 오청산(五靑山, 656m)
15 : 55 - 암릉, 안부
16 : 04 - △686.7m봉
16 : 36 - 강승갱이재 내리기 전 658m봉
17 : 41 -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道谷里) 풍차마을, 산행종료
18 : 31 - 문막, 목욕, 석식
22 : 00 - 강동 상일동 도착
1. 578m봉 내리면서 북동쪽 조망
▶ 천등산(天登山, △807.1m)
석천리. 원서천(院西川)을 석천교로 건너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싶게 산골짝 굽이굽
이 돌아간다. 산기슭 아래 개활지가 나오고 너른 공터에 천막이 있다. 영진도엽에 표시되어
있는 지금은 폐교된 산척초교 석천분교장 터다. 석천분교는 1947.2.1. 제천의 원월국민학교
석천분교로 개교하여, 한때 석천국민학교로 승격한 적도 있었으나 다시 분교로 격하되어 충
주의 산척국민학교로 편입되고 1997년에 폐교되었는데 그때까지 배출한 졸업생 수는 총 635
명이라고 한다(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서).
상전벽해다. 이 사과밭은 운동장이었을 게다. 사과밭 언 흙을 와작와작 밟으며 산기슭으로 접
근한다. 잡목과 덩굴 숲 성긴 너덜지대 지나 눈 쌓인 사면을 오른다.
수적(獸跡). 곧장 설사면을 숨차게 오르다 옆으로 돌기를 반복한다.
시인 송선영이 본「새로 난 길」이다.
“긴 눈 그친 간밤에
숫눈 위로 길이 생겼네
지돌리 안돌이 거쳐 기스락 집 토방까지
먼 은발(銀髮), 그 등불 찾아 허위허위 음각한 길
(…)”
천등산이 살짝 보이는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 따라 돌다보면 천등산 오르는 주능선에 쉬이 이
를 것 같지만 그래서는 산행 맛이 떨어진다. 사토(沙土) 드러난 절개지를 직등한다. 북사면이
라 낙엽 위에 눈이 덮여있어 꽤 미끄럽다. 578m봉 넘어서자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들지만 이
번에는 가시덤불과 잡목이 거치적거린다.
주능선에 올라서고 오른쪽으로 직각방향 틀어 서진(西進)한다. 사면을 훤하게 벌목하여 건너
편 산릉의 시랑산, 주론산, 구학산이 가깝게 보인다. 울고넘는 박달재는 저 시랑산 아래에 있
다. 외길이다. 줄달음으로 여러 잔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한다. 761m봉 오르는 길은 되게 가
파르다. 눈 녹은 그 왼쪽 사면에서다.
더덕이 밭으로 보여 냉큼 연장 들고 수대로 덤볐는데 땅이 불꽃 튀게 꽁꽁 얼었다. 콘크리트
보다 더 단단하다. 미련하게 헛심만 오지게 쓴다. 몇 번이나 그런다. 대물을 다 놓친다. 더덕
이 사람 잡는다. 하여 761m봉을 힘 쏙 빠져 겔겔 기어오른다. 나무숲 두른 761m봉 정상에는
누군가 일삼아 쌓아놓은 자그마한 돌탑이 있다.
길 좋다. 질고개에서 761m봉 넘어 천등산을 오르는 주등로다. 경사진 등로에 가드레일 식으
로 굵은 밧줄을 달아놓았다. 눈 내린 후로 선답자가 있었다. 선답자의 발자국 계단을 가급적
피한다. 발자국이 말갛게 얼어있어 거기에 내 발을 맞추다가는 여지없이 미끌하고 엎어진다.
긴 오름길이다. 땀난다.
천등산(天登山)! 하늘로 오르는 길이다. 확실히 그렇다. 천등산 오르는 길이 다릿재에서 건 느
릅재에서 건 질고개에서 건 곧추 선 등로로 올라야 하고, 그 정상에 서면 사방 눈 아래 펼쳐진
경관으로 하여 여기가 하늘인 듯 황홀하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히든피크(Hidden Peak, 가셔브
룸 I, 8,068m)에서 보았던 광경 “우리는 정상에, 아니 텅 빈 한없는 공간의 중심에 앉아 있었
다. 계곡 깊숙이 우윳빛 안개가 깔려 있었다.”와 너무 흡사하지 않는가!
소백산 비로봉 국망봉 신선봉이 어느 것인지, 월악산 영봉이 어느 것인지, 충주호 또한 어딘
지 분간할 수 없지만 눈앞의 천산만학에 그저 망연(茫然)할 따름이다. 가까스로 정신 수습하
고 인등산, 지등산이 더 가까이 보일까 정상 옆 팔각정에도 가보고 아예 저 아래 헬기장까지
가본다.
2. 578m봉 내리면서 북동쪽 조망
3. 578m봉 내리면서 북동쪽 조망
4. 방금 넘어온 578m봉, 왼쪽 멀리는 시랑산(?)
5. 이상무 님과 산그림애 님(오른쪽)
6. 천등산 정상에서 조망, 인등산 지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7. 천등산 정상에서 조망, 멀리는 월악산 영봉일까?
8. 해마 님과 은하수 님(오른쪽)
9. 천등산 정상에서 조망
9-1. 천등산 정상에서 조망
10. 화당(花塘) 님
▶ 오청산(五靑山, △656m)
오늘 오지산행에 처음 나온 세 분은 근래 보기 드문 준재다. 이상무 님은 수목과 약초에 대하
여 그 약리작용과 효능까지 꿰고 있는 전문가일뿐더러 산에 다니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한다. 산행 후 소감을 묻자 대뜸 여기 오지산행에 뼈를 묻겠다고 한다. 모처럼 속이 후련한 답
을 들었다. 좌중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화당 님도 수목과 산나물에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조경기능사 본 시험보다 더 어려운 조경
과 모의시험의 수목감별에서 20문제를 모두 맞췄다. 나는 11문제를 맞췄는데. 천등산 오름
길의 수 십 미터 떨어진 눈밭 덤불 속에서 더덕을 분별하여 그 실력을 얼핏 보여주었다. 산으
로는 백두대간, 한강기맥, 영춘기맥 등등을 섭렵하였단다.
은하수 님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 3시간 10분대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오늘 산행에서 시종
선두로 나는 듯 내달았다. 그러다 하산지점인 648m봉에서 제동하지 못하고 강승쟁이재 너머
로까지 빼버렸다. 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그간 내가 수목과 야생화에 대한 어설
픈 알음으로 제법 아는 체 해왔는데 오늘로 퇴출하게 생겼다.
한편 기쁘다. 더 배울 수 있으니.
다릿재를 향한다. 엄청 가파르게 떨어진다. 데크계단과 밧줄구간이 번갈아 나온다. 등로는 북
사면으로 눈이 그대로 있거나 빙판이다. 발바닥이 간지럽도록 미끄럽다. 자세 낮춰 쭉쭉 내린
다. 조그만 돌탑 있는 암봉 밑은 더 가파르다. 커다란 천등산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 공터가 나
오고 대로로 야트막한 산간고개 넘으면 예쁘장하게 꾸민 ‘하늘정원’ 마당이다.
그 옆이 다릿재다. 두메 님이 이미 와 있다. 다릿재 고갯마루에서 점심자리 펴고 버너 불 피운
다. 다릿재(해발 374m)는 다락처럼 높고 다래나무가 많다고 하여 다락재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로는 월현(月峴)으로 표기한다 하니 ‘달재’가 변성(變聲)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든다.
등로는 소위 천등지맥 길이라 뚜렷하다. 만복(滿腹)으로 오른다. 더구나 따스한 양지쪽이니
땀을 찔찔 흘린다. 무덤을 연속해서 지나고 세 가닥 산줄기가 분기하는 534m봉이다. 독도주
의 구간이다. 가운데 능선으로 가야하는데 맨 오른쪽으로 잘못 들었다가 눈길의 발길 끊겨 되
돈다. 김전무 님과 나와 둘이서.
534m봉 내리는 길도 조심스럽다. 설사면을 크게 트래버스 하여 452m봉으로 간다. 다릿재터
널 위 송전철탑 있는 안부를 지나고 진득하니 오르면 565m봉이다. 오청산이 어디일까? 삼봉
산을 오청산으로 서로 잘못 알았었다. 자세히 뜯어보니 삼봉산이다. 저기를 올라야 하는가 잠
시 뜨끔했던 가슴을 안도하며 쓸어내린다.
눈길이다. 우리가 첫발자국 낸다. 605m봉 넘고 암릉이 나온다. 길지 않지만 눈이 있어 짜릿한
손맛 본다. 완만한 오름 끝이 오청산 정상이다.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 없다. 새마포산악회와
김문암 씨가 각각 정상 표지판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달아놓았다. 왜 오청산이라고 할까? 오
청산 주변으로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가 다섯 개 있어서가 아닐까?
11. 천등산 정상에서 조망
11-2. 천등산 정상에서 조망, 월악산 영봉일까?
12. 오늘 처음 나오신 세 분, 왼쪽부터 화당 님, 은하수 님, 이상무 님
13. 충주시 신만리 장병산(?)
14. 맨 오른쪽은 버들 님
15. 천등산
16. 오청산
▶ 풍차마을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바람이 오르막에서는 시원하더니만 내리막이나 평지에서는 차다. 오
르내림이 잦다. 내릴 때 가는 걸음으로 쉬고 오를 때는 막 간다. 어디고 낙엽이 수북하다. 발
에 채인 낙엽이 포말처럼 우우 따르다 멀리멀리 날아간다. 암릉 암봉 넘고 △687.5m봉. 첨봉
이다. 왼쪽 산허리로 돌아 넘는 우회로가 있지만 봉봉이 아까워 직등한다.
마른 낙엽이 미끄럽다. 삼각점은 어렵게 판독하여 306 재설, 78.5 건설부. 대간거사 님과 나
만 올랐다. △687.5m봉 내린 안부에서 마지막 휴식. 모두 모여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한 피
치 오르면 648m봉이다. 여기서 양지말 풍차마을로 내리기로 했다. 은하수 님과 해마 님은 닫
는 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강승쟁이재 너머로 갔다. 악써 몇 번 불러주고 내린다.
길은 있는 듯 없는 듯. 관계하랴. 잡목 숲 헤친다. 아닌 게 아니라 대간거사 님 말마따나 더덕
의 위장술이 갈수록 교묘해진다. 칡덩굴로 착각하게 굵은 더덕줄기가 직하한 것으로 확인하
고도 물샐 틈 없이 포위하여 여러 사람 감시 하에 파보았는데 청향(淸香) 감춘 뇌두는 행방이
묘연하다.
황혼의 햇살이 곱다. 사면의 낙엽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능선에는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운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이 가까웠나보다. 간벌한 나뭇가지 헤치고 산기슭 가시
덤불 빠져나오자 빈 밭, 화당천(花塘川) 건너니 양지말 풍차마을이다. 이제 목욕하는 즐거움
이 남았다. 누가 왜 산행하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이때만큼은 목욕하기 위해서라고 서슴없이
대답할 것이다. 문막으로 간다.
17. 등로
18. 대간거사 님
19. 등로
20. 가은 님
21. 가은 님과 도자 님(오른쪽)
첫댓글 우와~~! 명불허전 아름다운 풍광과 햇살에 버물린 오지 산꾼여러분의 모습이 참으로 해맑고 아름다워 그 자체로 자연이고 우주인듯합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처음 오지산행 참여하신 세분의 내공이 그리 쎄시다니...에효,, 안그래도 서열꼴찌 체력인데 더욱 부각되겠구먼요.. 인력풀을 총동원하여 허접한 분들 대거 영입할까합니다. 평균내공이 넘높아서 안되겠어요...ㅎㅎ
우리 산악회는 우찌 이리 다들 글솜씨가 좋대.... ㅎㅎㅎ 짜임새~~~ 화이팅
따뜻하게 맞아주신 오지팀 모든분께 감사드리구요 이참에 독도법도 열심히 배워 보겠습니다^^
요즘들어 새로 오시는 분들이 많군요. 보기 좋습니다.
산그림애형님은 저 갈 때만 안오시는군요. 뵙기 힘드네요.
형님 갈 때 내가 안가는건가? ㅎㅎㅎ
지역 특성상 당일산행은 새벽에 시간 맞추기가 넘 어렵네요~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그러시다면 무박하는 셈치고, 전날 저녁 늦게 동서울로 와서 근처 찜질방에서 주무시다 새벽에 나오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예전에 준치회장님이랑 가난한영혼 님이 애용했드랬습니다.
송주 님 얼굴보기 힘듭니다.ㅋ
형님!! 저희 아파트에다 주차하세요. 잠실 엘스 아파트입니다. 저희 집 동 호수 이야기하고 방문증 받으시고 들어오심 됩니다. 지하철 2호선 신천역입니다. ㅎㅎㅎ
호진씨 감사!! 나중에 쪽지로 정보 주세요. 좀 편리좀 보겠습니다. ㅎㅎ 이번엔 새벽에 넘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어서 시간을 놓쳤네요.
늦게 일어난거나...
일찍 일어나 또 잔거나.... 매한가지 아닌가요?
난 주로 늦게 일어나 못가는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