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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조창나루터 원문보기 글쓴이: 태금 이미숙
그리고, 양금보에 주로 쓰이던 삼조장단은
<현금보전>·<학포금보>·<역양아운>·<羲遺>등의 거문고 악보에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거문고 악보에 사용된 삼조장단은 많은 변화를 보여,
|·|· 의 부호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부호는 일본의 三味線 악보와 유사하여
楊在平의 中國沂 譜와도 흡사하다.
이러한 삼조장단을 통하여 고악보의 시가 해석에 실마리를 풀수 있음은 무척 다행한 일이고,
이들 부호의 보다 정확한 해석을 위하여 더욱 정밀한 연구 작업이 있어야겠다.
(6) 長短譜
雅樂·唐樂·梵唄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토음악은
일정한 장단의 틀(Rhythmic Pattern)에 의하여 음악이 연주된다.
따라서 장잔을 악보에 표기할 경우, 대개의 時價를 해석할 수 있다.
장고 장단을 적고 있는 고악보 중에서
정간보나 대망보와 같이 구체적인 시가 기보 수단을 갖지 않은 것은
<學圃琴譜中與民樂>·<峨琴古譜>·<響弄律譜>·<園客遺韻>·<協律大 成>·
<東國大學校所藏伽倻琴譜> 등이다.
대부분의 악보가 곡의 시작 부분에만 장단을 적어 놓은 것과는 달리
<峨琴古譜>·<響弄律譜>·<동국대학교소장가야금보> 등은
매 장단마다 해당하는 각 음에 장단 부호를 표기하여
비교적 정확한 시가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와같이 고악보에 장단이 기보된 경우를 長短譜라 가칭하며,
장단보의 기보 방법은 주법 기보법 항에서 논의 될 것이다.
(7) 文字譜
고악보에서 時價를 나타내기 위하여 문자를 사용한 경우도 있는 바,
<玄琴東文類記>의 이세준보에는
卽擧·聲長·急·綬·速·速速' 등의 문자로 작음의 상대적인 길이를 나타내었으며,
<백운암금보>의 簫譜에서는 郞·長吹·爰吹(원취)'등으로 시가를 표기하였다.
이와같이 문자를 이용하여 음의 시가를 지시하는 것을 문자보라 가정하여 보았다.
지금까지 고악보에서 시가를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법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시가 표기방법들은 상대적인 시가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유예지> 생황보의 흑권·단권·쌍권은
인간의 호흡을 기준으로 절대적인 시가를 나타내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밖에도 절대시가와 관계된 것으로 <학포금보>의 量息尺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맥전과 호흡을 기준으로 삼아 가곡의 빠르기를 설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로서
고악보의 시가 및 빠르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3. 奏法 記譜法
奏法 記譜法이란 음고나 시가를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의 주법이나 성악의 창법을 표기하여 그것을 재현 가능하도록 기보한 것을 말한다.
(1) 合字譜
고악보에 사용된 奏法 記譜法으로 가장 널리 사용된것 이 합자보이다.
합자보란 주법과 관련된 제반 요소를 약자 또는 부호화하여 이를 모아 놓은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러한 기보법을 厡字譜라 부른다.
전통적으로 합자보를 사용하여 기보된 음악은 거문고 음악이 대표적이며,
비파. 가야금의 합자보가 한 두 종류 전하고 있다.
거문고의 합자보는
거문고의 각 현을 나타내는 부호로 鉉名의 일부를 따서 사용하는 바,
遊絃은 '方'로 大鉉은 '大'로 적는다.
그리고 왼손의 손가락은 母指를 '衁'로 食指는 '人'으로, 長指는 '遁'으로,
名指는 '夕'으로, 小指는 '小'로 적는다.
또한 왼손으로 줄을 짚는 위치는 嚤의 순서로 표기되는 바,
一·二· 三 등의 수자를 사용하며, 오른손의 탄법은 점이나 종선으로 표기된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모두 모아서 이루어지는 합자의 예를 <그림24>에 보인다.
합자보가 고악보에 사용된 것은
<합자보>가 처음이고 그 이후의 많은 거문고 악보들이 이 체제를 따르고 있으나
<현금동문류기>에 수집된 옛 금보를 보면
거문고 합자보의 성립 과정을 한 눈에 살필수 있다.
이러한 거문고의 합자보는 경우에 따라 단순화 되어 약자로 표기되는 수도 있으니
<園客遺韻>과 <橑陽雅韻>의 兩淸도드리 (글게도드리) 악보가 좋은 예 이다.
가야금의 합자보는 <拙翁伽倻琴譜>에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가야금 12현을 저음부터 순서대로 수자로 표기하며,
오른손의 손가락은 거문고와 같은 약자로, 탄법은 부호로 표기하며,
소리를 흔들거나(弄鉉), 끌어 올리고(推聲), 끌어 내리는(退聲) 奏法을
부호와 약자로하여 모아 놓은 악보이다.
비파의 합자보는
<금합자보>에 수록된 만대엽 악보가 유일하다.
이는 鄕琵琶가 아닌 4鉉의 당비파를 위한 악보이다.
이 합자보는 비파 4현의 현명을 遊絃→子·大絃→大·中絃→中·武鉉→止로 적고,
柱의 순서를 숫자로 표기하며, 왼손의 손가락은 거문고와 같은 약자로,
탄법은 부호로 적었다.(<그림 6>참조)
합자보는 악기의 연주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거의 빠짐없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이 악보만으로도 스승없이 독학이 가능하다고 할만큼 많은 장점을 지닌 기보방법이다.
(2) 數字譜
數字譜란 숫자를 이용하여 음악을 기보하는 것으로
하모니커 악보와 같이 숫자가 음계상의 음 높이를 직접 나타내는 경우는
음고 기보법의 하나로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고악보에 나타나는 숫자는 오음약보를 제외하면
모두 현악기의 줄이나 嚤·柱 또는 管樂器의 指孔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차적으로는 주법과 관계되고 이차적으로 음고를 암시하는 것이다.
즉, 伽倻琴의 고악보에서 三이나 五라고 기록된 음은
음계상의 제3음이나 제5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가야금의 제3현, 제5현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보법은 奏法記譜法이 될 수 있다
數字를 이용하는 기보법은
거문고 합자보에서 과의 순서,
가야금 합자보에서 현의 순서,
비파 합자보에서 주의 순서,
생황보에서 관의 순서,
簫譜에서 지공의 순서,
칠현금 악보에서 현의 순서와 徽의 순서 등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특히 생황·소·칠현금의 기보 사용된 숫자 기보법은
그 중요성으로 미루어 수자보로 보아 무방하리라 여겨진다.
생황의 숫자보는 <遊藝志>에. 簫의 숫자보는 <백운암금보>에
칠현금의 숫자보다는<徽琴歌曲譜>와 <七絃琴譜>에 전한다.
(3) 肉譜
音高 記譜法에서 가야금·양금의 육보에 관하여는 언급되었다.
여기서는 奏法 記譜法으로서의 육보에 관하여 살펴보겠다.
거문고 肉譜는
당·동·징·덩·동·등·뜰·살갱·슬기등·흥·청 등으로 표기되며,
악보에 따라서 한자식 또는 借字式으로 표기 되기도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당·동·징‥‥등의 구음은 음높이를 구체적으로 표기하는 것이 아니고
거문고의 줄과 왼손의 손가락 순서, 오른손 술대의 탄법에 따라 변화되며,
술대를 사용하지 않고 왼손만으로 소리들 내는 自出聲의 경우는
라·로·루 등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음은 거문고 음악에 다소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전하는 거문고 고악보 중에는 육보가 많다.
漢字로 口音을 기록한 것으로는
<금합자보>·<타취금보>·<아금고보>·<원객유운>·<청음고보>·<금학입문>·<초입문금보>·
<김동욱소장금보> 등이 있으며,
한글 육보는 <양금신보>·<백운암금보>·<유예지>등 대부분의 거문고 악보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연세대학교소장영산회상>·<역양아운>·<해산유음>등은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여 구음을 적고 있다.
또한 <현금동문류기>에 수록된 朴槿의 악보는
한자 육보를 珏(瑟)·杊(澄)·尙(堂) 등으로 줄여서 기보하고 있다.
短簫 肉譜에 관하여는 <학포금보>에 설명과 더불어 細還入의 初章만 기보되어 있다.
동보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의 단소는 현재와 달리 앞면에 6개의 지공이 있고,
뒷면에 1개의 지공이 있었던 바, 앞의 제1공의 소리가 당, 제2공의 소리가 敭, 제3공이 등,
후공은 童이되며, 모든 지공을 막고 急吹(力吹 ?)하면 證, 洆吹(低吹 ?)하면 興,
급원문취(평취 ?)하면 높은 興(淸興)이라 하였으나 실제 기보에서는 한글 육보로 적혀 있다.
고악보에 전하는 단소 육보는
<학포금보>의 것이 유일하나, 장사훈님에 의하여 1920년경으로 추정된
<단육보>도 육보로 되어있으며
1980년에 펴낸 김무규 님의 <단소보>도 한글 육보로 기보되었다.
그리고 1955년에 필사된 김동은(현당)의 <단소 보>도 육보로 적혀있는바,
모두 현낙기의 구음인 덩·둥·당‥‥으로 기보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민간 풍류의 단소악보가 육보로 기보되고 있으며
관악기의 구음이 아닌 현악기의 구음을 빌어 쓰고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로 여겨지며,
이점에 관한 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생황의 구음은 <유예지>·<방산한씨금보>등에 상세한 설명이 있으나,
구음으로 기보된 생황 육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한 <악학궤범>에 의하면 당비파·향비파에도 주법에 따른 구음이 있었으나,
악보로 기보된 육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타악기로서는 그 사용 빈도가 가장 많은 장고의 구음이 고악보에 기보된 경우가 있다.
<아양금보>에는 영산회상·가락더리·도드리·타령·시조의 장단을 덩·덕·쿵·다락 등 으로 적었으며
<금보정선>에서는 장고 장단을 나타내는 그림 옆에 加둁(덩)·加(더)·加鱁(덜)·加衁(덕)·宮(쿵)의
차자식 구음을 표기하였다.(<그림15참조>)
그리고 <속악원보지편>에는
장고 기보에 국이라는 표기가 보이는 바, 이는 '쿡' 또는 '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점도 구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하버드대학교 소장금보>의 장고 장단에 보이는 '궁'과 '털'도 구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역양아운>에는 장단을 나타내는 그림 아래에 '다드락'이라는 구음이 적혀있고
동보의 神歌에는 걁덩·덕·걁궁 등의 장고 육보가 전한다.
(4) 文字譜
우리나라의 고악보 대부분이 문자보이나,
여기서 문자보라고 하는 것은 음고를 나타내는 문자와는
달리 주법과 관련된 사항을 서술하듯이 기록한 것을 말한다.
<현금동문류기> 朴壽老譜에는
'遊五食동打 遊四名스레딩 발인타…'등으로 거문고의 주법 구음을 적었으며,
동보의 許 宗譜는 '식유사박즉수지 식봉상현박 식대오비인괴삼쌍우비'와 같이 적었다.
이는 합자보 항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문자보에서 합자보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고악보에는 농. 요. 구인. 흡박. 장청. 취청 등의 주법을 가리키는 문자가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식종실록악보>의 정대업 악보에는 대금·소금 등의 문자가 기록되어
대금(징)과 소금(괭가리)을 치는 위치를 가리키며,
많은 고악보에서 '박'자로 박을 치는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문자로 기보된 주법보의 예는 장고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鼓·搖·鞭·雙'이란 글자를 악보에 적어 장고의 주법을 표시한다.
즉, 고는 장구의 북편(왼편)을, 搖는 채 굴림을, 鞭은 채편(오른편)을,
쌍은 좌우편을 동시에 치는 합창단을 가리킨다.
이밖에도 주법과 관련된 文字 표기는 고악보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5) 圖譜
圖譜란 그림으로 주법을 표기하는 것을 말하며,
대표적인 경우가 <금합자보>의 장고보·고보에 사용된 것이다.
<그림30>에서 보는 바와같이 <금합자보)에서는 북의 그림을 정간속에 그려넣어
북을 치는 위치를 나타내며,
장구의 모양을 실물에 가깝게 그리고 왼편에 '○', 오른편에 '1'을 필요에 따라 표기하여
장구주법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더러러'하고 채를 굴리는 것은 오른편에 '⌇'를 적었다.
도보를 사용하는 악기로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장구인데
<휘음가곡보>에서는 ◐·○●으로.
<동국대학교소장가야금보>에서는 ◐·○·●으로 장구 주법을 표기하며.
(협율대성)에서는 ○(·). <학포금보>의 거양두고법에서는 ●· ?· ?등이 쓰인다.
이와같이 그림으로 장구의 주법을 표기하는 법은 현재의 악보에서도 등이 사용되고 있다.
한편 <백운암금보>의 소보에는 ○·●을 매음에 기록하였는데,
이는 관악기의 지공을 열고 ·닫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밖에 가곡과 같은 성악곡의 창법을 기보하는 연음표가 있다.
<가곡원유> <여창가요록)·<합율대성>등에 사용된 연음표는
가곡의 노랫말인 시조시의 글자 옆에 특별한 창법과 관련된 부호를 붙여 적는다.
연음표는 그것만으로 음악을 정확하게 기록 할 수 없으나
전문적인 가객들 사이에서 창법의 기억을 위한 일종의 비망록과 같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4. 旋律 記譜法
지금까지 고찰한 음고·시가·주법 기보법 외에도
고악보에는 특이한 기보법이 쓰이고 있는바,
그 하나는 선률선보이다.
<학포금보>에서 가곡의 노래 선율을 기보하는데 쓰인 이러한 기보법은
노래의 선율을 물결 무늬 모양의 선으로 그려 놓고,
해당하는 부분에 노랫말을 풀어서 적은 것이다.
현재에도 시조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이러한 기보법이 사용된 고악보는
<학포금보>가 유일한데,
安廓에 의하면 吳熹常의 琴譜에도 이러한 기증법이 쓰인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
안곽이 언급한 오희상의 금보는 <학포금보>와 선율선보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두가지의 악보가 이본인지 또는 같은 악보인지는 미상이다.
旋律線譜 이외에도
음악의 선율을 다른 음악의 동일한 부분과의 동일여부를 적어 기록하는 방법이
梵唄에서 사용되고 있다.
梵唄僧들이 기록해 놓은 동음집에는
어떤 곡의 일부분과 동일한 선율형을 지닌 다른 노래의 가사를 적어
두곡이 서로 다른 곡이고, 가사를 달리하고 있더라도
그 선율형은 동일 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기보법만으로 그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고 노래의 선율형을 알아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문적인 범패승들은 이 기록만으로 곡의 異同을 알수 있어서
기보법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同音集은 <板本同音集>·<張碧應所藏同音集>·<玉泉遺敎同音集>·
<金耘空所藏同音集> 등이 있다.
■ 古樂譜 硏究 現況
고악보의 기보법에 관한 단편적인 글은 1920년대 말경 안곽에 의하여 쓰여졌으나,
종합적인 논저로는 1943년에 발표된 송석하님의 "현존 조상 악보"가 처음이다.
이 글은 당시에 알려진 고악보 15종의 내용과 간행연대 등을 서지학적인 측면에서 해제한 것이고,
1948년 이혜구님은 "한국의 舊記譜法"에서 고악보에 사용된 기보법을
율자보·공척보·오음략보·향보·합자보·연음표·정간보등 7가지로 분유하였다.
1965년 성경린님은 "한국 악보 해제"에서
송석하님의 글에서 언급된 15종을 포함하는 28종의 고악보를 해제하였고,
1966년 장사훈님은 위의 글들에서 다루어진 악보와 일부 중복되는 것을 포함하여
23종의 고악보를 해제 하였다.
그러나 송석하·성경린·장사훈님의 글에서 해제된 악보 중에서
<宋氏二水三山薺本琴譜>·<洪基厚譜>·<金氏槐庭本中琴譜及方響譜)·<崔氏一覽閣本琴譜> 등이
혼란기를 겪으며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밖에도 <玄琴新證假令>은 원본이 분실되고
현재는 청사진 복사본만 국립국악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能雨琴譜>도 원본은 분실되고 송방송님이 필사한 사본만 현전한다.
한편으로 <금합자보>와 <시용향악보> 등이 송석하님의 글에는 보이지 않다가
그 이후에 발견되는 등, 많은 고악보가 새로이 소개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당시 서울대학교 국악과와 동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이동복님에 의하여 각 대학식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그 악보들이 대량으로 학계에 소개되었고, 이들에 대한 해제 작업이 따랐다.
1979년부터 시작된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학 자료 총서」의 고악보 영인 작업과 함께
새로운 고악보 해제 작업이 활발하여
장사훈님의 "고악보 해제"에서 16종의 고악보를 해제 하였으며
이동복님은 "고악보 해제 補遺Ⅰ"에서 장사훈님과 중복되는 것을 포함하여
19종의 고악보를 상세하게 해제하였다.
이동복님은 1984년 "고악보 해제 보유(Ⅱ)"에서
새로운 고악보 11종을 해제하여 학계에 소개 하였다.
이밖에도 이주환님의 "시용무보 해제",
이혜구님의 세종실록악보에 관한 연구서 "양금신보 해제","백운암금보 해제",
한명희님의 "한금신보 해제",
송방송님의 "연대소장금보 해제",
최종민님의 "삼죽금보 해제"를 비롯하여 많은 고악보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이들 해제 외에도 각 고악보에 수록된 악곡을 해제하고
다른 고악보 및 현재의 음악과 비교하여
전통음악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연구한 논문은 매우 많이 있으며,
이들에 관하여는 논문 목록이나 논저 해제집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고악보의 발굴과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의 하나가
이들 고악보를 널리 알리는 간행 사업이라 하겠다.
1950년대에는 1954년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시용향악보>를 영인하여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1959년 통문관에서 <양금신보>를 간행 하였다.
1960년대에는 1960년 동국대학교에서
<협율대성>을 국어국문학 자료총서 제7집으로 발간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학생들의 학술 연구 써클인 국악학연구회에서
<대악후보>를 연차적('61∼'66년)으로 출간하였다.
또한 1969년에는 韓國國樂擧會에서 <유예지>를 영인 간행 하였다.
국악학연구회 학생들의 고악보 재간행 사업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국악학회와 더불어
<속악원보('71∼'74)>·<양합자보('74)>·<현금동문류기('76)>·<양금신보('79)>·<유예지('7)>·
<어은보('78)>·<한금신보('77)>등의 영인 간행으로 계속되었다.
당시 고악보 재간행을 추진하던 학생들은 오늘날 國樂學계의 중견 학자들로서
이 분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한편, 1975년에는 이동복님에 의하여
<구라철사금자보>·<일사금보>·<휘금가곡보>·<증보고금보>·<원객유운>·<흑홍금보> 등이
제록스 복사로 학계에 널리 소개되어 고악보 연구에 큰 공헌을 한바 있다.
이 밖에도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는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에서 1972년에 刊行하였고,
<현학금보>는 문화재관리국에 의하여 1977년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라북도편에
사진본으로 수록되었다.
1950년대 부터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던 고악보의 재간행은
이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힘입어 전통음악의 중심 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는 바,
1979년부터 연차적으로 시행되고 「한국음악학자료총서」의 발간이 그것이다.
1979년 제1집인 <대악후보>의 완간으로 시작된 동 사업은
1985년 제19집 <청음고보 외 6 책>가지 총65종의 고악보를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연차적으로 계속될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학자료총서」간행이 해를 거듭함에 따라
현존하는 고악보 모두를 수록하여 대학 등의 연구기관에 제공됨으로써
한국음악사학 연구에 큰 기여를 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어려웠던 제반 여건에도 불구하고
고악보의 발굴·소개에 헌신적이었던 학자들의 노력이
오늘날 한국음악학의 초석이 되었음도 잊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 맺는말
지금까지 우리나라 고악보의 종류와 기보법, 그리고 그 연구 현황 등에 관하여 개관하여 보았다.
전통음악의 역사적인 변천을 연구하는데 둘도 없는 귀중하 사료인 고악보의 발굴과 보존·연구 등은
잠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일에 관하여 관계 학자들 뿐만 아니라 온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여겨진다.
고악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하여
혹시나 귀중한 고악보가 폐·휴지도 散失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고악보들도 하루 빨리 공개되어 학문 연구에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