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시인들
--박관서
시인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하느님은 농부와 같은 사람이라면서
바다가 보이는 시골마을에
빈 집을 구해 고치면서 흙담 아래
민들레를 심고 어내 앞에 평생을 흔들리며
들에 나가 햇살을 모아 고추와
갯잎 농사를 짓는 것
외로운 자들이 시험에 들지 아니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여
갈대보다 먼저 꺾어지는 허리
갯펄보다 먼저 흐느끼는 기도로
외달도의 밤을 낭송하며
나는 이 불외한 시대를
시인으로 간절하게 사는 것일까
주말 열차를 터고 누군가는
지리산 둘레길을 돌며 단풍으로
더 누런 막걸리값으로 원고료를 받고
새로운 함성 새로운 광장
입안 깊이 아리하게 남은 어리굴젓
갯바위에
시인은 제 상처로 달라붙어
싱싱하게 우윳빛 바람으로 사는가
새벽 갈치잡이배가 골목 꿈을 벗어나
가난의 남루에 그물을 놓는
남쪽 소도읍 숭숭 벌구멍이 뚫린
흙담길 호박잎 농사를 지으며
호박잎같은 날들로 시인은 사는 것일까
2022년 11월 8일 새벽
성동리 별관 301호 박남인
*박관서
시인. 목포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집: 철도원 일기. 광주의 푸가.
한국의 산신들은 죽지 않는다.
백두대간 국립공원들이 얼기설기 둘레길을 포승줄처럼 감아놓아도 호랑이껍질로 감탕나무와 겨울을 나는지 일군의 시인들은 동굴속에서 생강과 마른 삼백초로 산신이 되어 살고 있다.
참빗나무 갈매나무와 산다래 덩쿨이 사람사는 세상 길을 숨겨놓은 구산선문 골짜기마다 배고픔 따위야 고욤을 깎아 햇살에 말리며 온갖 비결서를 불쏘시개로 삼아 생각나무가 연락이 올 때까지 소개령이 모감주나무 문설주마다 빗살무늬를 친 빈 집, 한 오년 묵은 오갈피주를 내놓는 칠선계곡 불문산방 노곡주는 노고단 마고선녀처럼 별점을 쳤다.
세상이 먼저 실성을 하고 모든 소도읍의 성당에 민들레 꽃종을 달고 싶어하던 권정생 시인. 서울로 가는 전봉준처럼 한 낮에 촛불을 켜고 광화문에 나타난다는 등신불 시인.
억새풀밭 대피소가 불쑥불쑥 검문을 하는 마삭줄같은 대부벽준 수묵의 길마다 칡꽃이 산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한국의 산 골짜기에는 산수유소식을 잃어버린 시인들이 살고 있다.
실상사에서 천하대장군 벅수 점심 공안에 벽송사 길을 잃은 나그네들이 철 없는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 맹골도 물살 검푸른 돌미역을 파는 여인은 시골장마다 ‘가난이 살려낸 것들’을 찾아다니고 다산 정약용이 지키던 일속산방 서당 하피첩 편지가 지리산을 떠돌고 매천의 절명시가 가을바람에 날을 벼르는 날
순천에서 함양에서 산청으로 칡널쿨처럼 잘도 뻗어다니는 친구는 아무래도 기천문이나 천부경으로 산신노릇을 위해 텃밭고랑 시학을 막걸리로 심고 오늘은 또 어떤 달빛 홍운탁월하고 마른 초묵법 수묵으로 세한도를 거닐고 있을까.
시인들은 살아있다. 경허스님이 달빛에 휘청거리며 단청을 마치고 계룡산을 호랑이처럼 걷고 있는가. 누가 별을 보았다 하는가. 지리산에는 반달곰이 살지 않는다. 가을에서 가을로 시어머니를 내쫓는 진도아리랑이 미역귀 사요 세월호 곱창김이요 남도소리만 떠도는 산하 숨은 마당
산 빛은 문수의 눈이요, 물소리는 관음의 귀로다.
'소 부림이 곧 보현이요, 송서방 방죽골 고서방 박관용류 강송대 남도소리 북소리에 별첨지가 쓴 시가 본래 비로자나로다.
사평역은 어디에 있고 삼인산 고재종 농부 누이는 옥수수를 베도 오지 않고
석인(石人)이 피리 불고, 목마(木馬)가 졸고 있구나.
마천면 주막집은 사립문도 사라지고 행자승이 어떤 시인의 말을 듣고 와서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 이 말을 듣고 본래 면목을 깨닫고 보니, 이름도 공하고, 형상도 공하여 공허한 허적 처에 항상 밝은 빛이여.
그대도 팔만대장경이 일체유심조 정수리 뒤에 신비한 모습은 금강계의 금강신이로다. 법성토가 썩은 거름 무더기며 똥 무더기요, 개미구멍, 모기 눈썹이요, 삼신, 사지 일컬음이 허공 및 망상이니 눈에 띄는 대로 견진면목이로다.
산신이 다시 말한다. 있고 없고 하는 有無와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를 어느 곳에서 찾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