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작은 시집 7. 정진아
정진아
1965년 푸른 대밭에 흰 눈이 내려 쌓이던 날,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돌 전에 서울로 이주하여 성북구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성북구에 살고 있다.
1988년 <아동문학평론> 에 동시 '겨울에 햇빛은'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이후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난 내가 참 좋아》 《엄마보다 이쁜 아이》 《힘내라 참외 싹》 《정진아 동시선집》 등이 있고,
전래동화그림책 《빤짝빤짝 꾀돌이 막둥이》 《어부 아들 납시오》 시에세이집 《맛있는 시》 등을 펴냈다.
현재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EBS FM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방송 대본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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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웃음 / 정진아
"웃으니까 예쁘네."
그 아이 목소리가
고추잠자리처럼
뱅뱅
귓가에서 날아다닌다.
자꾸만
자꾸만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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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처럼 / 정진아
인사 잘하는 그 아이처럼
꾸벅 인사하고
웃으면 초승달눈 되는 그 아이처럼
초승달눈으로 웃고
책 많이 읽는 그 아이처럼
책을 읽는 나
뭐든 그 아이를 따라하며
Ctrl + C
Ctrl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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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아 / 정진아
도서관에서
그 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읽었어.
참 이상하지?
같은 책을 읽는 걸까?
내가 찡그리면
그 아이도 찡그리고
내가 웃으면
그 아이도 웃는 거야.
어!
나를 보네.
앗!
눈이 마주쳤어.
어쩌지,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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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편 / 정진아
날아오는 공을 잡아
그 아이에게 패ㅡ스
조마조마 날아간 공
두 팔 벌려 받는
그 아이
통통 튀는 공을 낚아 채
그 아이에게 패ㅡ스
두근두근 날아간 공을
가슴으로 안는
그 아이
같이 뛰고
같이 피하고
같은 편이라서
더더 신나는 피구 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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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나는 방법 / 정진아
"어머, 안녕?."
"안녕. 너두 여기 사니?"
"아니, 친구네 집에 왔다 가는 거야."
"그래 잘 가. 내일 학교에서 만나."
손 흔들며
돛단배처럼 멀어져가는
그 아이.
그 아이 집 앞에서
뱅뱅 1시간이
하나도 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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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 정진아
엊그제
그 아이랑 마주친 길
'또 만날 것 같아'
부푼 풍선 되어
동동
가 본다.
왔다가 갔다가
갔다가 왔다가
나타나라
나타나라
주문 외워 보는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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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집단무의식, 그리고 어린이
- 정진아 동시를 읽고
강인석
「신데렐라」 는 「콩쥐팥쥐」와 닮은 이야기다. 베트남의 「 떰과 깜 이야기 」는
콩쥐팥쥐와 신기할 정도로 유사하다. 「빨간 모자」를 읽으면 「해님 달님」이 떠오른다.
이런 유사성에 대한 탐구는 칼 융의 '집단적 무의식'에 이르기도 한다.지역, 문화, 시대를
넘어서는 인류의 정서적 동질성, 이 무의식의 가장 큰 조건은 '누구나'이다.
정진아 시인의 10편의 동시는 '누구나'가 전제될 때 편하게 읽힌다.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확실한 키워드는 '사랑'이다. 어린이의 감정을 '사랑'이라 말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정진아 시인은 명확하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누구나'에게 동일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몰래 살짝 보기/ 그냥 잘해 주기/ 슬쩍 옆에 앉기/ 동화책 빌려주기/ 모르는 문제 가르쳐주기/
축구할 때 응원하기/ .........//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기./ 그러다 보니 어느새/ 100일이다//
짝사랑 100일째.
100일 동안 시적 화자가 누군가를 향해 마음 두근거리며 해왔던 것들을 살펴보면,
저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사랑을 해 본 어른들도 저 내용을 보면 낯익은 느낌을 받는다.
어린이들의 사랑도 어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많은 시인들이 동시 속에 어린이들의 사랑을
'좋아하는' 이나 '호기심', '관심' 등에 머무르게 하는 것과는 달리 정진아 시인은 대놓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100일이나 간절히 이어오고 있는 짝사랑이다. 그래서 10편의
동시들은 모두 '사랑', '짝사랑' 시들이다.
어린이들의 사랑도 어른들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누구나' 갖는 보편성을 마치 무의식처럼
공유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는 이는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사랑의 대상을 향해
감각이 줄을 선다. 어린이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대상인 '그 아이'의 모든 것에 화자의
시선이 집중된다.
글 출처 : <아동문예> 2024봄 462호
'사랑이라는 집단무의식, 그리고 어린이- 정진아 동시를 읽고'에 부분 발췌
첫댓글 사랑이라고 쓰고 우정이라고 읽어야 하나요?
아이들의 마음을 알수 있는 동시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