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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기세가 채 꺽이지 않아 무덥던 가을의 문턱... 고3시절, 공부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 결국 재수생활 -ing 중 이던 2009년 9월. 대한민국 성인, 20살 남성이라면 꼭 받는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난 병무청으로 향했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앞으로 있을 신체검사에 대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국방의 의무? 현역? 공익? 아직은 멀고 먼 후의 이야기라 생각하며, 재수학원을 정당하게 하루 빼먹었다는 것에 기뻐하며 이번 주 무한도전은 무슨 내용일까에 대해서만 궁금해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병무청에 도착하여 간단한 신원확인을 하고 들어간 곳은 바로 병무청, 인성검사실! 압도적인 문항수에 대다수의 인원을 질리게 만든 인성검사를 간신히 끝마치고, 숨 돌릴 틈 없이 환복한 뒤, 신체검사장에 들어섰다. 나라 사랑 카드를 만들고 몸무게 측정, 키 측정부터 순서대로 시작된 신체검사에서 내 바로 앞에 앉아서 검사를 받던 사람이 체중으로 4급 판정, 공익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신체검사장에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별다른 기대감(?) 없이 신체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검사를 받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지만 누군가가 내 눈 앞에서 4급 판정을 받으니 왠지 모르게 ‘혹시 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람이 너무 부러워지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신체등급을 신경 쓰게 되었고, 중간중간 가끔씩 나오는 4급 판정을 보게 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신체등급 4급, 5급을 받고 싶다는 검은 욕망의 아우라를 풍기기 시작했다. 사람, 일부러 다리를 저는 사람, 파스냄새 풀~풀 풍기며 허리에 손을 올리는 사람 등 신체검사장은 갑작스런 경쟁(?) 구도에 올라섰다.
그렇게 신체검사가 진행되던 중 안과 검사차례가 왔다. 평소에도 눈이 많이 좋지 않던 나는 내심 안과 질환 4급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4급이 나오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기대하며(!)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안경 벗으시고 시력 잽니다. 0.1, 0.1... 옆 정밀진단 쪽으로 가주세요. ”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안경을 쓴 사람들이 정밀진단을 받기 위해 기계 쪽으로 향했다. 군의관님은 눈의 굴절도를 일일이 체크하셨고, 검사를 받던 사람들 모두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 검사로 넘어가게 되었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내 차례... 나는 기계 앞에 앉아 검사를 받았고, 잠시 후...“이거... 음.. 이 안약 좀 눈에 뿌리고 10분 뒤에 다시 검사 할게요. 말을 듣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상한 안약도 눈에 넣고, 10분 뒤 다시 검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서..설마 4급? 공익? 내가 바로 신의 아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기대하며 기다렸고, 10분 뒤 나에게 날아온 등급은 역시나 4급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쪽으로 욱여넣으며, 안약 때문에 눈은 엄청 부셨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친구들과 가족 등에게 “나 4급 이야.. 공익 떴어!.”라며 군대에 안가도 된다는 안도감과 자랑을 표현하며 내심.. 아니 외심(!) 기뻐 하고 있었다.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그 ‘군생활에 대한 압박감.’이란 놈에게서 자유를 얻었다.
많이 싫어했으며, 놀기 좋아하고 좋게 말해서 자유분방한, 직설적으로 말하면 날라리 기질이 다분하던 형이었다. 군대 가기 전 많은 걱정을 했고, 또한 많은 걱정을 받던 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병위로외박을 나온 형은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키 180. 작지 않은 키긴 했으나 몸무게 95kg의 압박으로 인해 몸의 살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삐져나오던 모습의 형이 몸무게 70kg!의 멋진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또한,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놀기 좋아하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리 공부에 마음을 갖고 그토록 하기 싫어하던 재수를 생각하는 등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형은 “야 임마. 사내새끼가 한번쯤은 군대 다녀와야지. 그런걸 자랑하고 있냐.”라고 답했다. 예상외의 전개였다. 형이 나를 부러워하면 나는 군대 안간다며 자랑하며 놀리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형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군 입대를 추천했으며, 내 입장에서는 같이 철없이 놀던 한 살 위의 형이 왠지 모르게 성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형의 모습을 통해, 나는 군생활 이란 것이 그저 몸 망치고, 시간 낭비 하는 곳이 아닌,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자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되...기 까지는 안했지만, ‘군대란 곳이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닌가 보구나.’ 정도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서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군 권유와 왠지 모르게 당당한 군필자들의 모습에서 보아온 군대에 대한 긍정적 생각이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많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후회하기도 싫었다. 고3시절과 재수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지 못해서 후회하고 있던 내가 이젠 너무 싫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에도 나란 놈은 극한의 상황에 집어 넣어야지만 변화되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어떻게든 해야 하는 군대라는 상황에 집어넣어 나를 좀 멋지게 발전시키고 싶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아버지의 “80년 인생 이라는 길에 비교했을 때, 군 생활 2년은 단 한 걸음의 발자국에 불과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작은 발자국 하나가 너의 80년 인생의 밑받침이자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아버지가 직접 생각하셨다고 우기시는 명언.’을 계기로 다시금 병무청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왔다는 나의 말에 직원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작년 나에게 4급 판정을 안겨주었던 안과검사실로 안내해 주었다.“꼭! 가고 싶습니다!”라는 뭐 광고의 멘트처럼 외칠 용기는 없었지만, “음.. 애매한데..? 작년보단 규정이 조금 강화됐는데도 좀 그러네? 학생 어떻게 할래?”라는 군의관님의 말씀에 “어떻게... 안 되나요..?”라는 말로 부탁드려 커트라인에 걸쳐있던 나의 눈을 3급. 현역판정을 받고야 말았다. 대한 압박감이 제로였던 자유로운 상황에서 이제는 군대라는 곳에 가야 하는구나 라는 약간의 압박감이 생기자 군대에서 변화될 내 모습에 대한 기대보다도 힘들어질 나의 2년이란 시간이 머릿속에 자꾸 떠올라, 후회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28연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입소대대와 훈련소 때의 일들은 너무 힘들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런저런 사소한 것에서 부터 통제를 받아야 했고, 난생처음 불침번이라는 것을 서봤으며, 어색한 군복과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 전투모, 무거운 전투화를 신고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모르게 사이 서서히 군인이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훈련소 수료식 날! 보며 대견해 하셨고, 나도 다른 사람을 통해 보게 된 내 모습에서 ‘인간 민병훈, 많이 성숙해졌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하늘같은 선임들이 하라는데로, 시키는데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선임들의 눈에 이등병의 행동이 눈에 차겠는가? ‘X새끼, X발’ 욕도 많이 듣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아 씨.. 그냥 공익이나 가버릴껄.. 왜 현역와서 이래야 하지?’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임들과 많이 친해진 내 모습이 보였고, 중대의 막내가 아닌 후임을 가르쳐주고, 관리하는 계급이 되었다. 선임들의 욕과 핀잔은 욕과 핀잔이 아닌 충고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들의 다소 거친 충고가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군생활을 잘 할 수 없었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많은 것도 배웠다. 참을성, 인내심, 절제 등은 기본이요, 밖에서는 거의 해보지 않았던 삽질, 도색, 시멘트 작업 등의 기술도 배웠다. 훈련소 때부터 있었던 여러 훈련들도 있다. 기본적인 제식훈련, 눈물 콧물 다 짜던 화생방, 폐를 압박해 오는 3KM 구보, 각개전투, 야간행군... 모든 근육이 뒤틀리는 것만 같은 유격체조... 빌어먹을 위장막과 지휘소를 치는 RCT, 너무너무 너무, 한번만 더 너무 추운 혹한기..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훈련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훈련들을 마치면서 나를 돌아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몸도 좋아지고, 성격도 점점 밝아지고, 일도 잘 못할 것 같던 놈이 이젠 한 사람의 인력도 충분히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을 때. ‘아, 그 때 세호 형을 바라보던 내가 이제는 세호형처럼 멋지게 변해가는구나’라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강철(鋼鐵)은 연철(連綴)을 수도 없이 불로 달구고 망치질하며 담금질을 해야지 만들어 진다고 한다. 연약하여 부러지기 쉬운 연철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필요없는 불순물들을 태워, 쉬이 부러지지 않고 그 형체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강철로 변하여 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에 와서 이러한 것을 마음 속 깊이 느낀다. 싫은 일에 대한 내색이 심하던 내가 표정 관리, 절제를 배우게 되었고, 낯선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을 매우 꺼려하던 내가, 낯선 이에게 쉽게 부탁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하는 맛을 느끼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 보다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군대라는 담금질을 통하여서 말이다.
전공을 배움은 나의 삶에 있어 더욱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체험과 경험은 80년 인생 중 대부분의 생활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지만, 군 생활이라는 것은 인생에 단 2년. 이 짧은 시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곳, 군대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 의지와 끈기, 사회성, 리더쉽, 절제 등 사회생활에서도 사람을 사귐에 있어도 꼭 필요한 것들을 쉽게 습득할 수 있다. 아깝다..’ 등등의 소리는 그 당시에 만이다. 군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도 많고, 이것들로 인해 많은 발전을 했다. 휴가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인 전역자의 허세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나의 경험으로는 군대라는 곳은 나태함과 게으름에 찌들어 있는 현재 20대 청년들에게 충고어린 채찍질로써 꼭! 한번쯤은 겪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태한 나를 깨울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을 발판삼아 더욱 연마되어 가는 내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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