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9. 산에 살면서 수행생활 하기 시작..
지리산.. 저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산에 가기 전에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내가 사회에 대한 집착을 던져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산에 간다는 것은 곧 죽으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수행을 극단적으로 밀어부쳐서 죽거나 깨닫거나 둘 중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산에 가기로 결정을 하자 한편으로 홀가분함을 느꼈습니다.
다음 날.. 일층에 살고 있던 친구 부부에게 산에 가서 수행하다가 죽기로 결정했다고 말하자 산에 가지 말라며 말렸습니다. 여자친구는 눈물까지 보이며 말렸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반드시 육개월 안에 깨달아서 다시 올테니까.." 물론 이런 것은 기간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밀어부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리 말한 것이었는데 그만.. 이런 때로부터 삼십여년이 지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조금만 더 밀어부치면 끝날 것만 같은 예감 아닌 예감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무묘앙 에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깨달음을 얻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식은 어느 누군가의 에고를 해체해 나간다. 여기에 이유는 없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라메쉬 발세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깨달음은 그저 확신의 문제일 뿐이다." 이렇게 속절 없이 세월이 흘러버린 제게 라메쉬 발세카의 말은 한편 제게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좀 있었는데 산에서 만난 대구에서 산다는 김처사라는 친구가 책을 읽겠다고 하면서 좀 갖다 달라는 말을 해서 명상수행 관련서 약 50권정도만 박스에 담아서 청학동으로 일단 부쳤고 나머지 책들은 모두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전제품은 8가지인가였는데 모두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개당 10만원씩 받고 넘겼고.. 오토바이는 오토바이 센터를 하던 친구에게 팔았습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제게서 산 가전제품을 모두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에게 보낸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더군요. 왜냐하면 전에 언젠가 제가 친구부부와 밤새도록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었나 보더군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일층에 사는 친구부부와 반지하에 사는 저를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가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었다고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저를 무엇으로 보든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을 했으니 알았지 말하지 않았다면 집주인 아주머니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닌지 제가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아주머니는 독실한 불교신도라서 아마도 저를 다르게 생각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고 있었나 보더군요.
모든 것을 처분하고 간단하게 베낭 하나에 모든 짐을 넣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친구에게 육개월 안에 깨달아서 돌아오겠다는 말은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산에 가기 전에 수행이라면 해 볼만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저로서는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만 할지 아무 생각도 떠 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번거롭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을 들으면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 등이 제게는 엄청 귀찮은 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암튼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산에 도착해서 책을 베낭에 넣어서 산으로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김처사라는 친구가 수행을 하겠다고 해서 가지고 간 것이었는데 김처사로써는 난생 처음 보는 책들에 입이 귀에 걸리더군요.
일단은 구들을 만들었습니다. 구들을 만들고 그 위에 텐트를 쳤는데 이렇게 하자 텐트 속에서 겨울을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에 가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도 사서 날랐는데 고추장, 식용유, 김, 감자, 밀가루, 이스트, 쌀, 설탕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 어린 날에 꿈 꾸었던 산에서의 수행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며칠 지나자 전주에서 왔다는 박수.. 이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 분은 원래 3.7기도 즉 21일 기도를 목표로 산에 올라온 것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꿈 자리가 뒤숭숭하다며 마을에 내려가서 집에 전화를 하고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마을에 내려가서 집에 전화하게 되면 반드시 집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원래 계획했던 21일 기도를 마치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게 될 겁니다. 그러니 그냥 꿈이려니 하시고 마을에 내려가지 마세요."
보통 산에 기도하러 와서 목표날까지 기도하다가 가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에서 온갖 대상들을 대하며 지내다가 갑자기 산에 오면 사나흘은 편할지 모르나 그 사나흘이 지나고 나면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이 하늘과 산과 계곡.. 나무.. 들풀.. 바람 이런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마음 입장에서는 지옥이 시작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모르는 본인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결국 산에서 내려가게 되고 이런 것들은 다시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마음 깊은 곳에 뿌리 내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그게 무엇이든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아무 약속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것은 마음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의식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인데 의식에서 파생된 마음으로써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 약속을 했다하면 거의 반드시 그 약속을 어기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에 대한 실망감.. 즉 패배의식이 마음 깊이 뿌리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전주에서 온 박수.. 이 양반도 바로 이런 심리상태였는데 제 말을 안 듣고 마을에 가서 집에 전화를 걸고 결국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서 산에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면서 제게 신신부탁을 하더군요. 산에서 내려오게 되면 지난 번에 적어 준 전화번호와 집주소 잊지 말고 꼭 자기집에 들러 달라고요.
가을이 깊어가면서 이렇게 한 사람씩 한사람씩 내려갔습니다. 맨 마지막에 스님이 내려갔습니다. 이 스님은 백일기도 하러 와서 백일을 채우고 내려갔습니다. 제게 몇 가지 거짓말을 했는데 천왕봉까지 제물을 날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고구마 한박스 사 준다고 약속하고는 그냥 갔습니다. 그리고 몰래 책 몇 권을 가지고 갔는데 사실 어차피 모두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쓸 책들이었기에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인식의 한계라는 것이 있어.. 가장 중요한 경전인 "아이 앰 댓"이나 "담백가게의 성자" 등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요가난다나 머 이런 어떤 면에서는 경전 같지도 않은 책들만 골라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다음해 여름 끝무렵에 만나게 되었는데 아마도 제가 그 때까지 산에서 살 줄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보자마자 얼굴이 빨개지더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제게 돈 십만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받지 않으면 자기는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하면서 억지로 주머니에 돈을 넣었습니다.
어느 날 김처사라는 친구가 불평을 했습니다. 산에서 산 3개월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하면서 후회를 했습니다. 이 친구는 원래는 자살하려고 여기저기 자리를 알아보던 친구인데 언젠가 자살 이야기를 하길레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김처사, 자살하려면 꼭 나를 찾아와 내가 절벽에서 확 밀어버려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들어 줄테니까.. 그리고 난 남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죄책감 이런 것도 없어.. 그러니 혹시라도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게 이야기만 해.. 반드시 성공 시켜 줄께.."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김처사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더군요.
그리고 허송세월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김처사가 산에서 살아 보았으니 이제는 사회에 나가더라도 "무슨무슨 산에서 수도하던 김도사 하산하다.." 이런 광고가 모두 새빨간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었잖아? 그러니 남들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것도 직접 경험으로 말야.. 근데 왜 허송세월 보냈다고 생각하나? 인간은 그게 어떤 경험이든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건 참지식이 되는 거라구.. 그러나 참지식을 스스로 비하함으로써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 이건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인생을 충실한 것으로도 혹은 보잘것 없는 것으로도 만들게 되는 거라구.. 그러니 앞으로는 스스로 비하하는 생각 하지 말아.."
이제 날이 쌀쌀해지고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려가기 전에 좀 더 외진 곳..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에 오두막 집을 지었습니다. 목수일을 했었기에 오두막 집을 짓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완전히 혼자 산에 남아서 할 일이라고는 수행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소원성취를 했다고나 할까요? ㅎㅎㅎㅎ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