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예민하게 관찰하고 듣는 사람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My Beloved World)>(2013)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2009년 오마바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지명되었다. 1980년대 초 맨해튼 지방검찰청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소토마요르는 윗사람으로부터 검사는 논리만으로 호소할 수 없고 감정으로써 배심원들이 “유죄를 선고할 도덕적 책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이 회고록에서 소토마요르는 국가의 소송은 “하나의 서사, 즉 범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썼다.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는 건 세부사항이다. 나는 증인 신문에서 일반적인 질문을 해서 강렬한 감각연상으로 세부사항을 이끌어내는 법을 배웠다. 색, 소리, 냄새는 마음에 이미지를 심어주어 듣는 사람을 불타는 집에 들여놓는다.”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은 소토마요르 판사가 서사기법을 얼마나 완벽히 익혔는지 보여준다. 정체성과 성장 과정, 남다른 의지와 노력으로 실현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면밀하고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소토마요르 판사는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솔직한 문체로 뉴욕에서 푸에르토리코인 부모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과 교육을 받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를 진지하게 성찰하며 되돌아본다. 1960년대와 70년대, 강도와 중독자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탓에 계단통을 피해야 하고 지혈대와 글라신페이퍼(얇은 반투명의 종이로 식품 포장에 많이쓰인다) 봉지가 인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브롱크스에서 성장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깊이 이해하게 한다.
이 책은 정체성과 성장 과정,남다른 의지와 노력으로 실현한 아메리칸 드림에대해 면밀하고도 설득력 있게 진술한다.
어린 소토마요르를 지탱한 것은 절제력, 인내심, 금욕적 자립심이었다. 이런 자질은 자신의 당뇨병을 관리하는 법을 익히고(부모가 주사를 제대로 놓지 못하는 것 같아 소토마요르는 일곱 살때부터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술을마시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에 대해 화를 내면서 (이는 어머니가 야간 및 주말 근무를 해서 집에 있기를 피하는 형태를 띠었다) 집안에 닥친 일상의 불확실성을 인식하면서 발전했다.
“집안의 혼란에서 벗어날 피난처”를 제공하고 "내 인생에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 건 할머니의 사랑과 보호였다고 소토마요르 판사는 쓰고 있다.
어린 소녀 소니아는 페리 메이슨(미국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얼스탠리 가드너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고서 변호사나 판사가 된다는 생각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소니아의 첫번째 꿈은 매우 좋아하는 여주인공인 낸시 드루처럼 탐정이되는 것이었다. 자기 생각이 낸시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소니아는 혼잣말을 했다. “나는 예민하게 관찰하고 듣는 사람이었다. 나는 단서를 알아차렸다. 논리로 따지고 수수께끼를 즐겼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서 다른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때에 찾아오는 선명하고 집중된 느낌을 좋아했다.”
자신을 잘 아는 소토마요르 판사는 자기 삶에는 반복되는 양상이 있었다고 쓴다. 프린스턴 대학교든, 예일 법학대학원이든, 맨해튼 지방검찰청이든, 또는 대법관 임명이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이 처음에는 “심한 불안감, 몸을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 반사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시기로 이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맹렬한 보상 노력”이 뒤따르곤 했다. 소토마요르는 어머니한테서 “과도한 노력으로 자신감 부족을 극복할수 있”음을 배웠다고 말한다.
소토마요르는 대학교 첫 중간시험에서 C학점을 받고서 좀더 일관된 주장을 구성하는 방법을 익히고 영어 실력도 향상시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몇 번의 여름 동안 매일 점심시간을, 문법을 연습하고 새로운 단어를 열 개씩 익히면서 어렸을 때 읽지 못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오만과 편견>같은 고전을 읽어 보충하는 데 쏟았다.
뭐든 운에 맡기는 데 대한 두려움(이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이 남겨준 또 다른 유산이다) 때문에, 소토마요르는 수업과 소송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이런 한결같은 노력은 성과가 있었다. 학창 시절 우등생에게 주는 작은 금별을 모으는데 능숙해졌듯, 프린스턴 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검사가 되어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1992년 새 연방법원 판사로 공개 법정에 처음 나서는 날, 소토마요르는 불안해서 말 그대로 무릎이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천직을 찾았음을 깨달았다. 소토마요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물고기가 제 물을 만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