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힘과 위로 받는 시간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받고 부족함 없고 요동치 않는 완전한 내가
한없이 연약하고 순간순간 요동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부족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리, 창기, 귀신들린자와 사귀었듯이...
온전한 내가 그런 나와 사귀는 것.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마음공부이고 곧 삶임을 배웠어요.
거짓나가 다 나인 것으로 생각해서 좌절하고 무너지는 삶, 회피하고 미워하는 삶이 아니라,
참나는 그런 무너진 나를 끌어안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였어요. 참 사귐은 그런 것이겠다 싶었어요.
예수님께서 그들과 어찌 만나셨는지 말씀보며 더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직은 분리하는 것도 쉽지는 않고, 낯설기도 하지만 즐거운 여정,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일 수 있겠다 싶어요.
누가복음 16장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속에서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선택해도 된다,
이기적이여도 된다는 말씀도 작은 충격이였어요.
그러면 안된다 쉽게 생각하고 이기적인 스스로의 모습이 보일때 괴로워하는 기만적인 모습이 아니라,
즐겁게 이로운 것을 택하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이로운 것이 되는 것...
그럴때 "내 의"가 쌓이지 않는 것.
여성공동체방에서 사니깐 한 예가 떠올랐어요.
살림을 할 때도 맑고 깨끗해진 집을 보는 것이 내가 즐거워서 할때는 함께 사는 이들도 그 유익을
누리며 함께 즐거운데, 그런 마음이 아닌 내가 한다라는 의식을 하면서 하면 피해의식도 생길 수 있고 그 모든 과정도
즐겁지 않게 되고 안하는 이를 판단하면서 내의를 쌓아갈 수 있는 함께 사는 것이 즐겁지 않게 되는 위험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함께살이하며 종종 마주하는 스스로의 모습이기도 하고. 그것이 차차 즐거움으로 더 많이 쌓일때, 은혜로운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이겠지요.
제가 즐겁게 하는 것중에 아주 작은 것이 하나 있는데, 현관문 앞에 있는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정리하는 절 보며, 한 벗이 절 살피며 "언니 그거 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제게 물어봤어요. 그 질문이 낯설게 느껴졌는데...
그것을 할때 흐트러진 제 마음의 결을 순간이지만 고르게 해주는 기분을 느끼고 그 느낌이 좋아서 하는 거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느순간 왜 이걸 나만할까. 이런 마음이 쓱 올라오면, 그때는 그만하는 것이 맞겠지요.
마음을 보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겠고요.
착한 사람들이 대체로 자기의가 강할 수 있다는 부분도 새로운 시각이였어요.
상대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착하다는 의를 세워가면서 자기기만에 빠지며 담을 쌓고
관계의 단절을 내리기 쉬운데, 오히려 다투고 싸우고 물어보고 소통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관계를 더 소중히 하고 상대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어요.
이후에 잘 회복되긴 했지만 관계의 단절도 맛보았고, 끝없이 이야기하자 손내민 벗도 떠오르면서 돌아보며 그때는 힘들었지만 끝없이 "대화하자" 손내밀어준 그 벗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단절을 겪으며 경험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지치고 그만하고 싶을때 저도 조금 힘을 내게 되기도 했어요.
누군가가 제게 해준 끝임없는 손내밈이 곧 사랑이였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어요.
부활은 "절대"가 예수안에서 무너진 사건이라셨어요.
우리안에 무수히 많은 절대. 절대가 무너지는 모든 순간, 하루하루가 부활입니다.
스스로가 세워가고 있는 작은 절대부터 큰 절대까지 그 실체를 알고 의심하는 순간 무너진다셨지요.
어떤 절대가 내 안에 있는지.... 살피고 찾아가보려고해요.
* 질문
1. 건강한 자기성찰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요? 자기학대와 자기성찰. 자기성찰을 하다가 자기학대로 가게 되는 게
종이 한끗차이같기도 하다는 생각들었어요. 온전한 나, 참나의 존재를 잊을 때 그렇게 되는 거 같다 생각이 드네요.
참나가 잘 질문하듯이 분리해서 객관화해서 질문해가는 것이 건강한 자기성찰일까요?
2. 어떤 마음이 올라올 때 거리를 두고 잘 질문하는 것이 마음을 보는 것인데,
세세히 질문해가는 것이 지난한 과정이 되기도 하고, 마음과 기운을 많이 쓰게도 되는 거 같아요.
새롭게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첫댓글 1. 자기성찰은 무엇도 정죄하지 않고 그저 봅니다.(롬 8:1)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율법에 의한 성찰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정죄하지 않고 진실에 눈 뜨게 하여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2. 어떤 마음이 올라올 때, 우선으로는 그것에 질문하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도록 둡니다. 무슨 독이 와도 해를 입지 않음을 알기에 그냥 바람 불면 부는대로 그저 두세요. 괜찮아요. 어떤 마음도 품지 않는 이상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자꾸 품어지거나 너무 오래 힘들어지면 그것에는 질문해 보세요. 차분히 잠잠히 그 마음이 진실인지, 그마음을 품으면 생명과 평화의 기운이 생성되는 마음인지를...
그 마음이 기만이요 지어낸 환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 그것을 버릴 수 있게 돼요.
같이산다는게 참 좋은 마음공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