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는 북한산(=삼각산)을 침 튀겨 예찬하면서 ‘삼도사 불수’, 관악산 등을 다녔다.
그런데 평일 출퇴근 시간에 등산복 입고 나서기도 멋쩍거니와 산행 후 땀 냄새 풍기며 전철 타기도 뭣해,
요즈음은 광역버스 한번이면 닿을 수 있는 외곽 지역 산을 자주 다닌다.
또한 의욕이 넘쳐 바위산을 중심으로 종일 산행을 강행하였지만,
요즈음은 무리하지 않게 흙산을 찾아 반나절 산행을 즐긴다.
어차피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여유시간도 많아졌기에 그리 전투하듯 걸을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은 날에는 걸어 다니는 꽃(?)만 보이더니,
언제부터인가 계절마다 피어나는 화사한 꽃들도 보이기 시작했고,
요즈음은 걷다가 쭈그리고 앉아서는 한참동안 이름 모를 들꽃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2
운길산(雲吉山)은 ‘흘러가던 구름이 잠시 멈추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마치 구름에서 내려다보는 듯 두물머리의 경치가 아름다워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운길산 7부 능선 정도에 수종사(水鐘寺)라는 절이 있다.
일찍이 조선시대의 문장가인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의 절경이다.
한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느낌은 다를 것이다.
양수리 두물머리는 코앞에서 흐르는 강물을 접할 수도 있고,
하남시 검단산 오르는 길에서 바로 내려 꽂이는 듯 볼 수도 있겠지만,
적당한 높이, 적당한 거리를 둔 수종사에서 보이는 경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네 인생살이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가는 게 가장 복(福)된 삶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3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 Bourdieu)는 고대 이집트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국가나 공공자산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는 지도층의 공공의 자산에 대한 존중이 희미해지면서 부정부패가 나타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피지배층에서 현세에 호소할 곳이 없다 보니 개인적인 종교성이 발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국사회는 이런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고 종교가 지나치게 ‘조건’을 내세우고, 종교와 물질이 결합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카엘 블린(M. Breen)은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에 대하여 강조하기 보다는
천국에 가는 길을 사기 위해서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은 영(靈)과 육(肉)이 서로 밀접하게 혼합되어 있는 국가라고 한
외국학자들의 지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칠흑 같이 어두운 새벽 4시에 설악산 신흥사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관통하는데도 꼬박꼬박 입장료 챙기기에
소송사태까지 치달은 지리산 천은사 등과 비교해 볼 때,
앞장서서 무료로 차를 제공하는 수종사는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4
운길산 수종사에는 무료로 차(茶)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입구까지 승용차로도 오를 수도 있기에 몇 번인가는 아는 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
녹차를 즐겨 마신다고 하지만 티백으로 포장된 차를 마시는 수준이라
다기에 물을 부어 이를 헹구고 녹차 잎을 넣어 우려내어 따르고서
두 손으로 부여잡고 마시면서 명상하는 데 익숙하지는 않다.
허나, 가끔씩 이와 같은 격식에 맞춰 반복하여 녹차를 마시다 보면 분명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건 사실이다.
산행을 마친 터라 발 냄새가 날까봐 양말을 갈아 신고 조심스레 앉았다.
몇 잔인가 녹차를 마시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해진 걸 느꼈다.
중생에게 공양을 베푸는데 어찌 보시를 안 할 수 있겠는가?
다실을 나오면서 조용히 茶문화 발전 모금함에 지폐를 넣었다.
그리고는 수령 500년이 넘은 지름 7미터에 이른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돌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해우소(解憂所)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2010. 9)
첫댓글 수종사의 아담한 절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전경의 이쁘게 그려지네요. 검단산도..
산행을 하고 일부러 배를 타고 매운탕을 먹으러도 가고 여름에 쉬고 싶어 갔던 것
같은데 옛 추억이 되었네요.
요즈음 교통이 좋아 가기가 좋은데도 쉽게 가지지가 않네요. 좋은 글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게으름이 도를 넘어 열흘 만에야 답글 다네요. 에고 지송^^
6월에는 지방 산행 재개할 수 있으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