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출근하기
눈을 떠보니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이다.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다시 눈을 감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한 시간 일찍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한 후에 웃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아침 식사가 문제가 되었지만 하루쯤 굶는다고 삶에 근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집을 빠져 나와 시계를 보니 6시 45분이었다. 휘파람을 불며 아파트 광장을 벗어났고 시원한 바람이 전신에 불어와 상큼한 하루를 열어주었다. 사실 가끔 아니 일년에 두 세 번 정도는 걸어서 출근을 한다. 겨울이나 한 여름은 어렵고 봄이나 가을에 걷지는 것을 택하는데 기분이 정말 좋다. 직장까지 5Km가 조금 넘는다. 정상적인 걸음으로 걸으면 한 시간이면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내 손에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가 들려있다. 그것은 길을 가다가 만나는 친구(?)들을 담기 위함이다.
큰 도로를 따라서 걷지 않고 외곽도로를 가로질러 마을길을 지나가기로 했다. 혼잡한 도로를 벗어나 마을로 접어들으니 절로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고향의 모습이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먼저 만난 것은 나팔꽃이었다. 나팔꽃은 한해살이풀로서 전체에 거친 털이 있고, 왼편으로 감아 올라간다. 아침 일찍 피었다가 낮에는 오므라드는데 열대아시아 원산이고 관상용으로 전세계에서 재배하며 씨는 약용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사실 지난번 중국을 여행라면서도 나팔꽃을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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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논과 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을 보면서 어머니생각이 났다. 칠순 노모를 생각하면 늘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형님이 모시고 있는데 우리 집에 오시면 그 때부터 고향에 가실 것을 생각하신다. 내가 잘 못해드려서 라도 생각되지만 형님의 농사일 때문에 늘 어머니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인 것 같이 생각이 될 때도 있다.
마을을 흐르는 도랑 옆에 자리잡은 한 집의 돼지 집 지붕에 가을이 매달려 있었다. 둥그런 누런 호박이 아침햇살을 받아 튼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길을 따라서 걷다가 박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요즈음은 농촌에서도 보기 쉬운 모습은 아니었기에 한참동안 덩그렇게 달려있는 박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길 바로 옆에 동부가 자라고 있었다. 길게 내민 꼬투리와 자줏빛 꽃을 만났고 노란색 꽃을 피우고 열매를 몇 개 맺고 있는 수세미를 만났다. 사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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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의 밭에는 배추와 열무가 자라고 있었다. 어렸을 때 참외덩굴을 걷어낸 다음에 배추를 심었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왔다. 호미로 김을 매는 할아버지께 목례를 하고 지나다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논을 만났다. 올해는 수해를 입지 않고 병충해도 많이 발생하지 않아 평년작을 웃돌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언덕을 올라서 무한천 변의 도로 위로 올라갔다. 그 곳은 달맞이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물론 꽃잎을 닫은 것도 있었고 막 닫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활짝 핀 것도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길옆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이 피어있었는데 야생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늘 구 부분에 걸려서고 만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름을 배우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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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걸어서 예산대교에 닿았다. 다리의 인도에 올라 걸어가면서 하천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낯선 장면을 보았다. 하천 바로 옆에 탱크로리 (tank lorry) 한 대가 주차되어있었는데 운전자가 위로 올라가 무슨 작업을 하려고 했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을 의식했는지 운전사는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탱크로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했지만 출근 시간에 늦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수산물을 실은 것같이 생각이 되지 않았고 기름을 채운 차도 아니었다. 걱정이 되는 것은 그 안에 폐기물이나 분뇨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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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큰길로 들어섰다. 4차선 도로엔 많은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한참 가다가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도로변에 심은 칸나와 코스모스의 부적절한 공생에 관한 것이었다. 지방자치 단체에서 공공근로자들을 동원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칸나 옆의 코스모스를 베어 내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문제는 칸나 옆에 심은 코스모스를 베어내는 과정에서 짧게 잘라낸 것이 아니고 비스듬하게 혹은 불규칙적으로 잘라내서 보기에 영 좋지 않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베어진 코스모스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가 지나가던 자동차가 비상라이트를 켜고 길가에 멈춰선 것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속해 있는 모임의 한 회원이었고 그는 막 출근을 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도로 옆에 멈춰 선 것이었다. 나는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고 그는 자신을 출근을 위하여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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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한참동안 걸은 후에 오가 오거리에 닿았다. 그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같이 걸어가자는 손짓을 했으나 녀석은 웃기만 한다. 사실 걷는다는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이 분 동안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이십 분 삼십 분을 기다린다. 나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도로를 걸으면서 몸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즐거운 땀이었다. 온몸을 적시는 정도는 아니었다.
전신주를 지나다가 그 곳에 덫을 놓고 있던 거미를 만났다.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것으로 만들어낸 덫으로 지나가는 곤충을 잡아먹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법칙이라고 생각을 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인간세계에도 존재한 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거미의 덫은 보이지만 인간이 만든 덫은 보이지 않기에 그 그물에 접근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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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다가왔다. 우리 나라의 꽃이지만 개량종이 많다. 나는 우리 나라 고유의 무궁화가 마음에 드는데 가끔 진딧물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울 뿐이다. 무궁화는 3000여 년 전부터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용되었으며 정식 채택된 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란 후렴 구를 사용함으로써 국화로서의 의미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삼부(三府)인 입법·사법·행정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고, 국기 봉도 무궁화 봉오리로 제정되어 무궁화는 명실상부한 나라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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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궁화에 빠져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선다. 낯익은 번호와 색깔이었다. 한 동료의 자동차인데 나에게 자동차에 탈것을 눈짓으로 말했지만 나는 손짓으로 가라는 신호를 했다. 우체국을 지나자 과수원이 다가왔다. 예산은 사과의 고장이지만 지금은 많이 쇠퇴하고 있다. 외국에서 다른 값싼 과일을 수입해 오니 사과가 설 땅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 나라의 사과만큼 맛이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일교차가 크고 많은 일조량이 단 맛을 흠뻑 배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과 과수원을 지나니 향긋한 냄새가 난다. 철조망으로 구분되어진 과수원과 도로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과수원에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하고 심지어는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삭막해진 것이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참외서리나 사과서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주인이 큰기침을 몇 번 하는 것으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사과 하나 따먹다가 걸리면 사과 백 상자 값을 물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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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목적지인 학교에 도착했다. 다른 날 보다 출근 시간이 5분 정도 빨랐다.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마무리하였고 온몸에 몰려드는 약간의 피곤을 커피 한잔 마시면서 마무리했다.
200509061045
첫댓글 짝짝짝-----오늘의 훌륭한 가을날씨에 행복한 시간을~~만끽하셨어요!! 다음해에 오늘은 뛰어서 출근하실 것 같은 예감~~ 신선한 마음 잘보고가요..감사**
사실 저도 뛰고 싶답니다. 물론 그것은 마음뿐이지요. 그래서 풀코스를 달리는 우리 여 회원님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감솨요
사진을 보내 행선지가 선하군요...거미가 참으로 이상적입니다...일상에서 걸을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개인적으로 걷는걸 너무도 싫어하여서요...그래서 배가 나오나 봅니다...
아무튼 별나긴 별나. 아직 젊음이 남아 있어서 가능한 일일겁니다.이 노인네는 부럽기만 합니다.
이생요나에게 다리좀빌려주어봐요.꼭갔다올디가있어서ㅎㅎ
아해님 걷는 것은 참 좋아요. 물론 아해님은 다른 운동을 하지만 저는 숨쉬기 운동과 등산 이런 것 밖에 못해요. 저전거를 탈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도로가 마땅하지 않아서... 지부장님 꼭 증조할아버지 같은 말씀만 하시네요. 우리 언제 걸어서 예산부터 덕산까지 가요.
쓰다가 300자에 걸려서 이어집니다. 야생화님 다리를 언제나 빌려줄 생각은 있는데 그 다리가 갈 곳이 행복한 곳이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곳 이라든가, 여행을 하는 것 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여자(?)를 만나러 가는 곳 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당첨된 로또복권을 찾아서 그 돈을 내가 가지라든가
야생화님 다리 아직 못 나으셨군요? 하루 빨리 완쾌 하시길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