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와 까마귀
꾀꼬리는 노래를 잘 부릅니다. 옥구슬을 구르는 듯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새들은 물론 산짐승들도 귀를 기울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노래를 잘할까?”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몸이 둥둥 뜨는 기분이야.”
“꾀꼬리 노래는 하늘나라 천사가 부르는 것 같아.”
새들은 모두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
까마귀도 노래를 잘 부릅니다. 목쉰 듯 그릇 깨어지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새들은 귀를 막습니다.
“어이구, 듣기 싫어! 시끄러워 못 살겠네.”
“저게 노래야? 악쓰는 거지.”
“까마귀가 가장 노래를 못 부를 거야.”
새들은 모두 흉보느라 입을 삐쭉거렸습니다.
그 흉보는 소리는 까마귀 귀에도 들렸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부르며 혼자 신났습니다.
-까옥! 까까옥! 내 노래가 어떠냐?
까까까까옥! 아이고 신나라-
새들은 어떻게 하면 까마귀 노래를 듣지 않을까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도 걱정을 하다가 좋은 수가 생겨서 까마귀를 찾아갔습니다.
얼마 뒤 까마귀는 꾀꼬리를 찾아갔습니다.
“뭐라고! 나하고 노래 시합을 하잔 말이니?”
귀를 의심하며 꾀꼬리가 다시 물었습니다. 까마귀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귀가 먹은 거 아냐? 한 말을 다시 물어 성가시게 해.”
꾀꼬리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어디 까마귀 따위가 나하고 노래 시합을 하자니 뭘 잘 못 먹었나? 이 도전을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왜 자신 없어? 모두 네가 잘 부른다고 칭찬하던데 그거 말짱 헛것이네.”
까마귀는 꾀꼬리가 답을 안 하고 눈만 꾸무럭거리고 있자 빈정댔습니다.
“좋아! 시합을 하자고. 네가 날짜와 장소를 정해라. 그리고 심사할 새도.”
꾀꼬리는 기분이 나빠서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진다는 생각은 머리털 끝만큼도 안 합니다. 오히려 잘 된 줄도 모르죠. 이번 기회에 더 멋지게 노래를 불러 확실하게 까마귀에게 창피를 줄 계획입니다.
“두 말 안 하기다. 날짜는 사흘 뒤 어버이날에 하고, 장소는 부엉이바위가 좋을 것 같다. 심사위원은 두루미로 하는 게 어때?”
“두루미?”
“두루미가 배운 것이 많아 점잖고, 재판도 잘 해. 지는 새는 쟁골에서 떠나기다.”
“좋아, 약속을 지켜라.”
곧 새들의 귀에 희한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참새야! 너도 들었지? 까마귀가 뭐 어쨌다고?”
“아이고 우스워라. 그게 말이나 돼?” “그러게 말이야. 꾀꼬리에게! 착각을 해도 너무 했다.”
그 약속이 쟁골 골짜기만 아니라 이웃 골짜기로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새들은 벌써부터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꾀꼬리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까마귀가 망신을 당하고 꽁무니를 빼며 도망하는 모습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꾀꼬리는 자신이 있었지만 혹시나 실수하는 일이 있을까 봐 틈틈이 노래연습을 합니다. 까마귀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그날 멋진 노래솜씨를 선보야야 할 테니까요.
까마귀는 노래연습은커녕 자루를 메고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죽자 살자 연습해도 이기기 힘든 시합인데 무슨 꿍꿍이 속일까요.
“히히히, 까마귀가 아예 포기한 모양이야.”
“아니지,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고 배우려고 그러는 줄도 몰라.”
“맞아! 자기 노래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다른 작전을 쓰려나 봐.”
새들은 까마귀의 괴상한 짓거리에 수군거렸습니다.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여러 새들이 구름처럼 쟁골 부엉이바위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심사위원인 두루미가 거만하게 미리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 사회는 비둘기가 맡기로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노래 시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노래를 부를 가수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꾀꼬리!”
관중석에 모인 새들은 모두 일어나 ‘와와’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꾀꼬리는 사뿐사뿐 걸어 나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로 들어갔습니다.
“다음은 까마귀!”
까마귀가 걸어 나오자 ‘우우’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까마귀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번쩍 들며 웃음을 날렸습니다.
“다음은 오늘 심사를 맡아 수고해 주실 두루미 심사위원장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심사위원장님은 심사의 기준도 발표해 주십시오.”
두루미는 점잖게 앞으로 나와 관중들을 둘러본 후 인사를 하였습니다.
“에 또 첫째는 태도, 둘째는 내용 셋째는 박자, 넷째는 음정 그리고 반응은 단지 참고로 하겠습니다.”
두루미의 말이 끝나자 관중석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노래 시합에서 태도를 첫째로 보는 게 어딨어?”
“좀 이상한데, 까마귀를 봐 주려는 것 같아.”
“너무 차이가 나니까 그럴 거야. 반응도 참고로 한다잖아.”
“새로 나온 심사기준인지 모르지.”
관람석에 앉아 있던 새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속에 먼저 꾀꼬리가 노래를 부릅니다.
-꾀꼴 꾀꼴 보리밭에(홍길동) 머리 곱게 빗고 나오라
꾀꼴 꾀꼴 책상 뒤에(홍길동) 머리 곱게 빗고 나오라
꾀꼴 꾀꼴 창문 뒤에(홍길동) 머리 곱게 빗고 나오라
꾀꼴 꾀꼴 계단 뒤에(홍길동) 머리 곱게 빗고 나오라.
고운 목소리가 온 쟁골에 퍼졌습니다. 새들은 좋아서 손뼉 치며 나중에는 합창을 합니다. 쟁골이 떠나갈 듯 소리 높여 부릅니다.
다음 까마귀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새들의 야단법석에도 기죽지 않고 가슴을 떡 벌리고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까악까악 쩝쩝쩝 생선이 맛있어라
까악까악 쩝쩝쩝 홍시가 맛있어라
까악까악 콕콕콕 무어나 쪼아보자
까악까악 가아악 노래도 불러보자.
깨진 솥단지가 울리는 것 같아 모두 귀를 막습니다. 외롭게 까마귀 목소리가 멀리멀리 퍼져나갔습니다. 새들은 벌써 결판이 났다며 심사고 뭐고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급하게 자리를 뜨는 새도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심사를 맡은 두루미가 채점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섰습니다.
“오늘의 노래 왕을 발표하겠습니다. 바로 까마귀입니다.”
비둘기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계획이 뒤틀어지자 머리를 절래줄래 흔들었습니다. 새들은 거니채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딨냐! 뭐 까마귀가 노래 왕이라고?”
“심사위원장은 우리와 보는 눈이 다른 모양이야”
“다르긴 뭐가 달라! 심사위원장이 무슨 냄새가 나.”
“이건 무효다. 당장 다시 해라.”
‘다시 해!’ 소리가 온 골에 쩡쩡 울리자 두루미는 황급히 부엉이바위에서 사라졌습니다. 누구보다도 어이가 없는 새는 꾀꼬리입니다. 얼굴이 활활 달아오릅니다. 머리가 멍멍합니다.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집에 힘없이 돌아온 꾀꼬리는 한없이 슬펐습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새들이 소곤거리던 말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까마귀가 개구리를 잡으러 다닌 까닭이 뻔하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두루미가 무척 개구리를 좋아한다는 것과 또 어떤 관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