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넘어서게 하는 성령의 은총 아래
에스겔 36:22~28, 시편 104:14~34, 35
사도행전 2:1~21, 요한복음 7:37~44
성령강림주일, 환경주일
여러분, 오늘은 총회가 정한 환경주일이자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되자, 두려움에 싸여서 더 이상 행보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달라져서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스승이 지셨던 십자가를 지기까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의 계기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물론 초대교회 형성은 단순히 성령의 역사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선포하고 교육하고 치유하면서 보여 주신 생생한 현장 이야기와, 돌아가신 다음에 부활을 경험하는 과정과 함께 성령의 체험이 소중했습니다. 성령의 체험은 잘못하면 脫탈역사적 신비주의로 전락하게 됩니다. 세상과 무관한 신비주의를 경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반 기독교적인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역사적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버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손에 잡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양태로 세상에서 걸어 다니셨습니다. 말씀이 세상을 누볐습니다. 추상이 구체화되었습니다. 진리가 사람을 치유하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역사 현장에 들어오셔서 사람들과 씨름하고 사람을 낚아내고 사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런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보는 제자들을 통해서 계승되는데,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 앞에서 무너지고 만 겁니다. 그런 제자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런 脫탈역사적인 신비주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정신이 인격화되어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요, 생명이요, 주체입니다. 그 인격 안에 우리가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가 물러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이 온전히 체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자들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맘대로, 성질나는 대로,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정신이 인격화되어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그것을 넘어섭니다. 성령의 인격이 우리를 주관해가기 시작해서 언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합니다.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달라진 나입니다. 그래서 소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는 방언으로 했는데, 듣는 사람들은 다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습니다. 나라와 국경이 달라도, 인종과 성이 달라도, 나이와 경험이 달라도, 언어와 삶의 방식이 달라도 서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기운이 저들 안에서 주관자가 되어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존재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관계가 회복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즉 세속적인 사람들이 볼 때는 말이 안 됩니다. 미친 겁니다. 욕망을 성취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기적인 욕망을 관철하기 위하여 아귀다툼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을 하고 진리의 뜻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 미친 짓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러나 믿음의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성령의 기운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희망을 이야기 하고, 비전을 내세웁니다. 20절 말씀처럼, 천지가 진동하는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런 정신과 삶과 십자가와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21절에 보면, 뭐라고 했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것은 주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받고 자기 욕망을 극복하며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지면 구원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혈연으로 묶여 있어도 이익의 문제가 발생하면 난리가 납니다. 서로 더 가지려고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워 욕망을 탐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혈연을 극복하는 성령의 거룩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주의 이름으로 서로 하나가 되고 형제가 되고 욕망을 제어하고 극복해 가는 힘을 주십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욕망을 넘어서게 하는 성령의 은총 아래”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그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품을 때 우리가 그 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다음 본문에도 나오겠지만, 그랬더니 44절과 45절에 보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다라 나눠주는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자기 것을 한 푼이라도 손해 보지 않고 더 챙기려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생각할 때 미친 짓입니다. 그런데 보면 교회도 그런 현장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헌금을 냅니다. 물질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헌금하고 헌물 합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예수 정신이 깃든 사람들, 자기 욕망을 넘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의 것을 기대 이상으로 나눠가는 사람들입니다. 공동체는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가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등을 볼 때, 그 자리가 자기 욕망을 넘어 성령의 은총으로 사는 현장인지 아닌지, 자기 스스로 판단하게 합니다. 남이 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지적해야 아는 사람은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 보면 압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욕망의 배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의 상징이 배인데, 그 배에서 욕망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 나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난 또 다른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내 안에서 욕망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역사, 그것을 통해서 혈연주의도 극복되고, 지연주의도 극복되고, 학연주의도 극복되고, 계파주의도 극복되고, 모든 것이 극복되며 대동세상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당신은 하늘의 아들]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 노래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다 함께 부르고 나서, 다시 이어갑니다).
당신은 하늘의 아들, 그래서 대동 세상을 여는 이라고 했습니다. 욕망의 세상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아귀다툼을 하는 사람을 양산하는 세상이 아니라, 성령으로 욕망을 극복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공동체, 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에스겔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혀서 당신이 직접 거룩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맑은 물, 깨끗한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새 영을 부어 주셔서, 새 마음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이 형성됩니다. 새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합니다. 내 생각과 판단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직접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말씀 안에 성령의 역사가 깃듭니다.
그래서 내 존재가 말과 행동이 성령의 주권 하에 달라지는 것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참 신앙인의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환경주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태계는 말 그대로 생태계가 아니라고 죽을 死사태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참 심각한 사태입니다. 4대강의 ‘녹조라떼’를 생각하면, 그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거기에 22조나 집어넣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시 살리려면 또 그만큼 넣어야 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국민을 살리는 일에는 외면하고 압박하고 탄압하던 그 악의 세력들이 생태계는 심각하게 교란시켜 놓았습니다. ‘생태계 교란 종들’을 보면서, 우리부터 다시 한 번 성령의 사람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정신과 삶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의 이 욕망을 넘어서게 하는 성령의 은총 아래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욕망의 강, 욕망의 배에서 생수가 솟아나고 소망이 일어나고 희망을 선포하고 혈연주의, 지역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등이 극복되고, 새로운 세상, 대동 세상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제자들에게 주어진 신앙적 과제입니다.
우리를 살려내는 길, 우리 공동체를 살려내는 길, 우리 사회와 생태계를 살려내는 길,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 안에서 생명의 강이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