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글이였습니다.
묘원님을 통해서 수행이 얼마나 노력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피상적으로 나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묘원님의 글을 여러차례 읽다보니 몇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서 여쭙고자합니다.
바쁘실테니 언제든지 천천히 답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빠싸나(여러가지를 자세히 알아차림)는 사마타(한가지에 집중함) 수행과는 달리 지나치게 집중하면 안 된다. 위빠싸나의 사마디(고요한 마음의 집중)는 깊은 사마디가 아니고 찰나 사마디(khanika samaddhi, 카니까 사마디)여야 된다. 위빠싸나는 항상 깨어서보는 알아차림으로 빠라마타(성품)를 보아 지혜가 나게 된다.
그래서 항상 마음을 새로 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깊게 들어가면 선정의 상태가 되어 고요함과 멈춤만 있다. 이것이 사마타이다. 이것은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경향이 있고 주관적인 성향이다.
그러나 위빠싸나는 항상 알아차림을 놓지 않고 대상과 아는 마음으로 분리해서 살펴보고 객관적인 성향이 있다."
팔정도에 정정이 있던데 이는 지나친 집중과 다른 것인지 알고싶고 항상 마음을 새로 내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선정상태에서도 사띠 사마디가 모두 있는데 왜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사실을 안 뒤에 마하시 사야도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 합장을 하였다.
왜냐하면 또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하시 방법에서 명칭을 붙이는 것은 순수 위빠싸나에서 갖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셨음을 알았다.
닙바나(열반)에 드는 수행과정이 처음에 사마타를 하고 나서 위빠싸나로 넘어오는 방법, 아니면 위빠싸나를 하다 사마타로 들어가는 방법, 또는 순수 위빠싸나라고 하는 처음부터 위빠싸나로 출발해서 위빠싸나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순수 위빠싸나 방법을 하셨기 때문에 초기에 집중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사마타 방법대신 명칭이라는 빤냐띠(모양,명칭,관념)를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수행자가 빠라마타(실재,성품)를 보게 되는 때가 올 때 명칭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야도 몇 분께서 많은 수행자들을 돌아가시며 지도를 하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인 것이다.
나의 경우로 비추어 보아도 명칭으로 재미를 단단히 보았는데 그것을 버려야 할 때를 몰라 오히려 명칭의 폐해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더 확실히 갖게 된 것은 아는 마음을 아는 것을 보고 나서이다."
명칭을 붙이는 것이 순수위빠사나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이라 하셨는데 순수위빠사나의 약점은 대략 무엇이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순수 위빠싸나 방법을 하셨기 때문에 초기에 집중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사마타 방법대신 명칭이라는 빤냐띠(모양,명칭,관념)를 사용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사마타입니까 위빠사나입니까? 혼동이 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경우 명상시에 대상을 보다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경우 그냥 안 붙이고 보는데 크게 지장이 없던데 이게 버려야 할때가 있고 가지고 있어야 할때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아직 수행이 얕아서 그런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