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한 자루의 생
-최삼경 소설/(주)달아실 2023년판
예술인의 신산(辛酸)스러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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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이름난 화가 ‘최북’의 일생을 작품제작의 연대기 순으로 엮어 놓은 소설이다. 화가가 생전에 그린 그림들이 이야기 중간 중간에 그 모습을 나타내며 그림 작품 및 소설의 이해도를 더 한층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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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조선 말기에 중인의 신분으로 태어난 최북은 집안 환경이 여의치 않아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다. 성년이 되어서 스스로의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짓고는 ‘평생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며 그림에 대한 애착과 애증을 동시에 지닌 채, 술(酒)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한 나머지 이름난 예술가들 중에서 종종 엿볼 수 있는 광기(狂氣)와 기인(奇人)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일생을 그림 그리기에만 바치다 말년에 쓸쓸히 길거리에서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며 굴곡진 생을 마감한다.
화가로서 자부심과 자존심이 당대 그 누구보다 강했던 최북은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당시에 당당하다 못해 거칠 것이 없었던 터라 기득권 세력이기도 했던 양반 계층과 잦은 마찰을 일으키고 갈등을 유발시킨다. 그의 초상화에 그려진대로 잘 알려진 자해 소동으로 말미암아 잃게 된 한 쪽 눈은 그 자존심의 극단인데 이야기의 전말은 책에 소상히 적혀 있다.
계급에 대한 마찰이 이러했다면 예술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그의 작품을 팔기 위해 시중에서 값을 흥정하는 여러 장면에서 또한 여실히 포착되는데, 작품성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에서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그 자리에서 작품을 찢어발길거나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허나 그 모든 뛰어난 작품도, 그 지난한 작품 활동도 그의 술에 대한 지나친 기호로 말미암아 퇴색되기도 했다. 당시 사회는 그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치광이로 몰아세우며 손가락질을 했고, 그와 그의 재능을 잘 아는 일부 지인과 계층을 제외하고는 예인(藝人)으로서도 올바른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호(號)로 종종 애용되었던 ‘칠칠(七七)’이는 그의 이름 북(北)을 풀어서 쓴 것인데, 자조적인 면도 강했던 ‘최북’은 당시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이런 식으로 조롱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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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섭렵해야 하는데, 책의 말미를 보니 작가가 ‘최북’의 일대기를 소설로 엮기 위해 오랜 시간, 여러 분야를 섭렵했던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소설이라는 ‘허구’적 양식을 통하다 보니, 야사에 가깝거나 작가의 순수한 상상의 산물인 여러 에피소드나 지어낸 이야기가 제법 등장하는데, 그의 다정다감하고 소담스러운 문체로 말미암아 이야기의 풀어짐에 있어서 하등의 무리나 껄끄러움 없이 부드럽게 때로는 감칠맛까지 더해지며 줄창 흘러나갔다.
조선이 낳은 위대하고 걸출했던 화가 ‘최북’과 그의 작품세계를 소설을 통해 현대의 많은 대중에게 알리는 기회임과 동시에 여러 해 동안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불철주야 애지중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작가의 노력에 감사(感謝)와 경하(敬賀)를 드린다.
(202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