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열제라는 문구로 고구려가 황제를 칭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문제는 그 기록이 잘못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자 아래를 보지요.
『수서』「고려전」에 "위궁의 현손의 아들이 소열제다. 모용씨에 의해 공파되었다. 모용씨가 환도에 들어가 그 궁실을 불태우고 크게 약탈한 후 돌아왔다. 소열제는 뒤에 백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는 기록이 보인다. 위 기록에서 소열제는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을 의미한다. 고국원왕이 소열제라고 불렸을까? 이것은 고구려에서 칭제를 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위서』「고구려전」에는 이와 다른 기록이 있다. "위궁의 현손이 을불리다. 리의 아들이 쇠(釗)다. 열제때에 모용씨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였다. 건국 4년에 모용원진이 무리를 이끌고 쇠를 공벌하였다. … 쇠는 뒤에 백제에 의해 살해되었다."
두기록을 비교해보면, 『위서』가 원본이고, 『수서』는 그것을 다시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열제"는 북위의 건국자인 탁발규가 도무제라는 이름으로 칭제를 하면서 자신의 조상인 예괴를 추존하여 부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문장을 잘못 끊어 읽으면서 소열제라는 이름이 나온 것으로 『수서』의 편찬자가 잘못 기록한 것이다.
고구려에 관한 다른 기록(환단고기 등을 제외)에도 제를 칭했다는 기록은 없다. 수서의 기록만을 갖고 고구려가 칭제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고구려는 태왕이라는 우리식 칭호를 내세웠다. 고구려가 칭제를 하지 않았다고 제국이 아닌 것이 아니다. 고구려는 중원의 나라와 다른 의미의 태왕국이었던 것이다. 제와 태왕은 어느 것이 상위의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출처: 역사문(http://cafe.daum.net/alhc)
영락태왕, 영락대왕, 영락제는 틀린 표현이다!
영락제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옳은 표현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광개토태왕을 호태왕으로 줄여 말하거나, 연호인 영락을 따서 영락왕 등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좋은 의미로 볼 수 없습니다.
광개토라는 분명한 업적을 나타내어 왕을 기리는 고구려의 왕칭호를 사용해야지, 이를 빼고서 미칭(아름답게 부르는)인 호태왕이란 것은 이 왕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문자호태왕도 있는데, 문자를 빼고 호태왕으로도 불러야 합니까? 그건 안됩니다.
또 영락이라는 연호를 붙여서 왕을 칭하는 것을 연호법의 왕칭호는 14세기 명나라 이후에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명나라 3대 영락제가 그런 경우입니다.
고구려는 장지명+업적+미칭+대왕 이렇게 왕을 표시했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왕은 장지명법으로 불렸으며, 묘호나 릉호나 시호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묘호는 사당에 들어가는 이름, 릉호는 릉의 이름, 시호는 업적을 기리는 이름입니다. 고려 숙종은 묘호가 숙종이고, 시호는 명효, 릉호는 유릉입니다. 이 가운데 묘호가 일반적으로 불려져서 고려, 조선의 왕들은 묘호를 주로 사용한 것이며, 연호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동성왕과 신라 지증왕이 각각 최초의 시호 사용자이지만, 고구려는 시호를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장지명법을 사용했습니다.
해석을 해보면 : 대주류왕께서 나라의 기틀을 이어 받으신 뒤, 십칠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열 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연호를 영락이라 했다. 태왕의 은택은 하늘에 두루 미쳤으며, 위무는 온 세상에 떨쳤도다.
자 여기서 종종 “영락태왕을 이어서, 열 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영락태왕이라 했다.”고 번역하면 어떠냐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왕에 이미 국강상광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정식 호칭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다른 호칭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호(号)는 연호의 준말로는 볼 수 있어도, 왕칭호의 준말로 볼 수는 없습니다. 뒤 문장을 보아도 永樂五年 과 같이 영락이 연호임에 분명하며, 太王恩赦先, 太王恩慈 稱其忠誠 등과 같이 태왕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준말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란 말은 영락 10년조에 다시 한번 나오며, 모두루묘지명이나, 신라 호우총의 호우 등에서도 이와 같은 정식 호칭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영락태왕으로 끊어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차 언급했지만, 연호+왕 으로 부르는 연호호는 명나라 이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영락태왕이라는 말은 이치에 합당한 호칭이 아닙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왕 중의 왕을 나타내는 칭호인 태왕
중원인들은 천자라는 개념을 사용하였고, 황제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황제란 말은 진시황이 처음 만든 것으로, 인간 영웅들인 3황 5제에서 각기 글자를 따온 것이다. 황제란 말은 흔히 우리가 나폴레옹 황제, 로마 황제란 표현을 쓰듯이 왕중왕의 의미, 즉 제후국이 아닌, 제국의 최고 통치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제국이란 것이 어찌 중원을 통치한 자만이겠는가. 북방 유목제국에서는 선우, 가한 등의 최고 통치자가 있었고, 이들의 위상은 황제와 같은 왕중왕임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좌현왕, 우현왕의 보좌를 받는 흉노 선우의 위상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흉노를 비롯한 유목제국들은 그들의 최고 지도자에 대해서 신의 아들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것은 곧 중원인들이 말하는 천자와 같은 것이다.
고구려를 비롯한 동방지역에서는 이런 생각이 없었을까. 어찌 없었겠는가. 고구려의 왕실은 천자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황천의 아들 추모왕. 이것이 광개토태왕릉비에 보이지 않는가. 일월지자 하백지외손. 이것은 모두루묘지명에 보이는 것이다. 천손사상도 천자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고구려 천자, 천손 사상에 대해서는 고구려연구재단에서 나온 고구려 개설서를 보면, 김일권 선생의 글이 있다. 참고 요망)
그렇다면 고구려에서는 무엇을 최고 통치자라 불렀는가. 그것은 바로 태왕이다. 사기 봉선서, 회남자 등에 보면 천일, 지일, 태일이란 말이 흔하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세상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로 보았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태일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다. 天一, 地一, 太一 이 가운데 천일은 하늘이다. 하늘의 왕은 곧 천왕이다. 천왕은 곧 신이요, 태일을 낳게 해주는 존재다. 고구려 사람들은 천왕을 바로 해모수라고 생각하였다. 해모수가 곧 천왕랑이다. 그리고 땅은 지왕이 아닌 地神이라고 보았다. 천왕과 지신. 이것이 바로 천왕지신총 벽화무덤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제 천왕의 아들인 인간의 왕은 곧 태왕, 즉 온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는 누구인가. 바로 고구려의 태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원식의 황제라는 짜집기 말이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우주관에서 나온 태일의 왕, 즉 인간 세상에 최고 존귀자라는 태왕이란 말은 쓴 것이다.
광개토태왕릉비에는 태왕이란 말이 보이고, 모두루묘지명 등에는 聖太王, 好太聖王이란 말이 보인다. 태왕 가운데에도 가장 성스러운 왕. 그것이 고구려 사람 모두루 눈에 비춘 광개토태경평안호태성왕이었던 것이다.
우리 스스로 고구려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태왕이란 의미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왜 우리는 황제를 칭하지 않았느냐는 말은 자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바보인 셈이다. 우리 카페에 가끔 글을 남기는 김태식 기자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가 도교신학을 모르기 때문에, 태일이 뭔지 모르니까 자꾸 딴 소리를 하는 것이다. 나는 도교신학이란 말은 아직 쓰지는 않지만, 고대 동아시아 종교사상의 흐름을 한번 둘러보면, 왜 고구려인들이 태왕이란 말을 사용하였는지를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고구려의 발견]에서 광개토대왕이란 말보다는 태왕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나, 서길수 교수님이 계속해서 광개토태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우리식 관점을 제대로 갖추려는 첫 걸음인 것이다. 고구려가 황제국이냐, 제후국이냐는 문제에 집착하는 자들이 거듭 고구려왕을 황제라고 자꾸 주장하고 있고, 또는 열제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 고구려는 중원문명을 잘 알고 있고, 그 영향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문명이 본바탕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고구려 사람들은 고구려 초기, 또는 그 이전부터 축적된 자기 사고방식에 의해서 천자사상, 태왕 개념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말이다.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남긴 금석문에 나오는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부디 아무리 익숙한 말이라도, 중원인들이 짜집기 해놓은 황제란 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태왕이란 말을 더 즐겨사용하기 바란다.
중국식 칭호인 황제는 개념상실한 용어
한단고기와 광개토대제의 여파로 인해,,열제, 대제, 태황이라는 표현을 고구려 왕호로 인식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일단 오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둡니다.
우선,,한단고기의 경우는 위서 논쟁이나 그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그렇다고 한단고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당대의 기록도 아닌 2차 사료, 아니,,3차 사료(?)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 당시의 상황을 눈으로 본 것이 아닌 윗대의 기록을 통해서 쓴 것입니다. 당연히 서술자 자신의 주관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 기록을 전적으로 믿거나 인용한다는 것은 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이 열제라는 왕호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보면 바로 수서에 나옵니다. 이른바 소수림왕을 '소열제'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오해에 의한 것입니다.
원문이 되는 위서 고구려전과 비교해보면 수서에 등장하는 소열제는 끊어읽기를 잘못해서 생긴 표현의 오류임이 분명한 것이죠. 즉 고국원왕이 쇠이고, 열제 때에 모용씨와 더불어 서로 공격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열제는 북위의 시조인 탁발규의 조상인 예괴를 추존해서 부른 호칭일 뿐입니다. (김용만 선생님의 카페글 일부 인용...ㅡ,.ㅡ;;;)
아마도 한단고기에서는 이것을 참고로 해서 열제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2차 기록으로도 열제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그래도,,,고구려같은 제국에서 황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리 없다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있다면 중화독에 중독된 결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말이냐면,,황제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표현입니다.(라고 얘기하면 그래봤자 태왕이라는 칭호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라고 하시는 분이 있던데,,,변명이 아닌 사실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왕이라는 글자를 보면 가로줄 3개에 그 셋을 세로줄 하나가 그어져 있습니다. 후한의 학자 동중서라는 사람의 글을 보면 이 가로줄은 각각 하늘, 땅을 의미하고 가운데 줄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지요. 그 셋을 이어주는 존재가 바로 왕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연상되시는지요? 바로 무당을 의미합니다. 최초의 왕은 바로 무당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적어도 동양권의 인식은 이랬습니다.(한자의 모태가 되는 갑골문은 한족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은왕조의 근간을 이루는 동이족은 조선과 연관이 분명히 있었고 혈통이나 문화적으로도 일정 이상의 관련이 있습니다. 의심나시는 분은 고조선 고고학 1인자이신 복기대 박사님의 요서지역 청동기 문화연구 읽어보세요. 하가점 상,하층 문화에 상호 교류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습니다. 비슷한 면도 많구요. 아,,그리고 조선에서도 갑골문의 흔적이 약간씩 남아있습니다. 다만 은왕조에서 빨리 사라지는 것과는 반대로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있지요. 고조선 말기에 한자가 들어왔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진시황 이후 대대적인 문화 변혁을 겪은 중국의 갑골문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더불어 조선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갑골문 형성에 영향을 준 듯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갑골문과는 약간 다른 형태로 전승된 흔적이 있지요. 저도 이 부분은 자세히는 몰라서 일단 넘어갑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 신은 아니지만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로써 왕이 존재했고 이 존재를 바로 사람들은 천자라고 불렀습니다.(원래 천자는 동이에서 온 개념이라고 중국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갑골문의 형성에 조선이 관련있음이 분명한 증거지요. 물론 이 동이가 은왕조를 일컫는 것일 수도 있지만,,은왕조 이전에 갑골문이 있었습니다.)
곧 왕=천자 라는 것이죠. 이것은 고조선, 은주왕조에 공통적으로 작용했습니다.(한단고기에서 단군천제, 천황이라고 한 개념은 후대의 개념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천왕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단군이라는 명칭 자체가 태왕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런 것이 춘추 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 이르고 이른바 개나 소나 왕을 자칭하면서 왕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적어도 중국에서는 가치 하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서 보니,,왕이라는 명칭의 가치가 너무 떨어졌고,,그래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황제이죠. 그 이전에 있었던 삼황과 오제라는 개념에서 황, 제를 떼어내어 황제라는 개념이 생겼는데,,문제는 이 황과 제라는 글자가 원래는 천신을 의미하는 글자라는데 있습니다.
바로,,황제=천신인데,,,이것이 조선쪽에서도 통용이 될 수 있느냐,,? 뭐,,,글쎄요..적어도 조선이 멸망한 이후로 부터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고조선에 대한 당대 기록은 위만 조선 이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좀 신중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섣불리 답을 할 수가 없지요.)
왕이라는 글자 자체가 이미 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천자를 의미하는데 그보다 상위의 개념을 사용할 수는 없겠죠. 삼국지에 보면 귀신을 섬김에 극성이고 하늘에 제사지내는데 극진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도 제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이런 쪽에 있어서는 중국보다 몇배는 더 철저히 지켰을 것으로 생각되는데,,그런 불경한 짓을 할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천자가 천신 그 자체는 아니니까요. 천신의 대리자, 혹은 아들로써 천자가 존재하는 것이지 아무리 인간과 다른 신성한 존재라고 해도 감히 맞먹을 수는 없겠지요. 결국 이것은 중국에서 멋대로 만든 이른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개념 없는 왕호'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중국과는 다른 문명을 구축한 고구려에서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명칭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