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강의 / 공광규 - 1탄
● 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예술입니다. 공자는 역대의 시를 모은 <시경>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중국의 옛 사람 원매는 시를 읽으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 겁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꼭 맞는 대답은 없습니다.
시는 뭐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를 쓰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시인이 시를 써오며 공감하고 동의해온 몇 가지 공통점과 시인 개인이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작업방식: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림/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씀/ ‘보봐리 부인’을 쓴 프로베르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3일 동안 방바닥에서 골머리를 앓음/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18년 걸려 완성/ 조르쥬 상드는 줄담배를 피워가며 나흘 만에 장편 ‘악마의 늪’ 탈고// 생활방식: 아리스토텔레스는 요란한 복장으로 학교를 배회하거나 변덕스럽고 사치를 즐기는 최초의 정신 나간 스승/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하루아침에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 윤리성을 설파하고 다니는 기이한 성인/마르셀 푸루스트는 거의 침대에만 누워 지냄/ 프랑스 추리소설의 대가 조르쥬 심농은 영감을 얻기 위해 1만여 명의 여성과 성교(미하엘 코르트,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을유문화사, 2009)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는 단 하루를 쓰는데 8년이 걸림.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집필을 위한 자료수집 20년 걸림. 정약용은 <매씨서평(梅氏書評)>을 51년에 마치고, 신작은 <시차고(詩次故)>를 완성하는데 27년이나 걸렸다고 함
그래서 제 시집 <<소주병>>(실천문학사, 2004)과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를 내면서 정리된 제 개인의 시 창작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 둘째,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러나 시는 실제 경험을 옮기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실제 경험으로만 시를 쓴다면 일생동안 몇 편뿐이 쓰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백일장이나 청탁을 받고 막상 시를 쓰려면 더 이상 시를 쓸게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많은 시인들이 시를 다 써버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상상력을 발전시켜 이야기를 꾸며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은 단순히 운문의 창조자가 아니라 이야기나 구성을 창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인의 기능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술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온갖 경험을 섞고 흔들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경험의 횟수와는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연애 시를 많이 썼다고 연애를 많이 한 시인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의 경험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다양하거나 일관되거나 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험만으로 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시를 평생 몇 편 쓰고 말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시 역시 다른 문예 양식과 마찬가지로 허구적 진실입니다. 시는 실제 경험한 사건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발아시킨 상상력으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서양 사람의 말인데, 상상력은 신이 붙여놓은 것을 띄어놓고 신이 띄어 놓은 것을 붙여놓는 힘이라고 합니다. 상상력이 있는 인간만이 신과 맞장을 뜰 수 있을 것입니다.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자, 도시, 법률, 교육 등 모든 제도는 상상력이 만든 것입니다.
저의 「별국」은 몇 개의 어머니와 함께 했던 경험과 기억을 상상력으로 바느질하여 한 편의 시로 조직한 것입니다.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는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 「별국」 전문
위 시는 2006년 수능 모의고사 지문으로 출제된 이후 참고서에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에는 몇 개의 심상이 나타납니다. 제 시의 기법적 계보는 정지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24살에 들어간 대학 1학년 문학개론 시간에 정지용의 시 「유리창」을 배우는 순간, 이렇게 시를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시를 쓰고 낭송회를 여러 번 해보았지만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정지용의 시를 만나면서 시의 원리를 깨우친 것입니다. 그래서 제 시는 지금까지도 심상 중심입니다. ‘별국’ ‘별빛 사리’는 심상을 통해 창조한 어휘입니다. 충청도의 사투리인 ‘멀덕국’은 시어로 제도권에 진입시킨 사례입니다.
시인은 어휘의 창조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어휘는 지금 영어를 세계 제일의 공용어로 만드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단어 양은 영문학상 최고이며, 그가 새로 만든 단어는 세는 방법에 따라 2,076개라는 주장도 있고, 6,700개라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 당시에 영어단어가 15만개였고, 그가 사용한 단어가 2만개였으니 그는 자기가 사용한 단어의 10%를 만들어 사용한 것입니다.(폴 존슨, <<창조자들>>, 황금가지, 2009. 100쪽 참조)
다음 시는 실제로 광화문에서 완행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경험한 것을 이야기로 만든 사례입니다. 상가의 간판 이름 가운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되게 직접 만든 것입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일산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넓고 빠른 길로
몇 군데 정거장을 거쳐 직행하는 버스를 보내고
완행버스를 탔다
이곳저곳 좁은 길을 거쳐
사람이 자주 타고 내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추어탕집 앞도 지나고
파주옥 앞도 지나고
전주비빔밥집 앞도 지나고
스캔들 양주집 간판과
희망맥주집 앞을 지났다
고등학교 앞에서는 탱글탱글한 학생들이
기분 좋게 담뿍 타는 걸 보고 잠깐 졸았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뉴욕제과를 지나서
파리양잠점 앞에서
천국부동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천국을 빼고는
이미 내가 다 여행 삼아 다녀본 곳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 파주, 전주, 파리, 뉴욕을
다시 한 번 다녀온 것만 같다
고등학교도 다시 다녀보고
스캔들도 다시 일으켜보고
희망을 시원한 맥주처럼 마시고 온 것 같다
직행버스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을
느릿느릿한 완행버스로 다녀왔다.
- 「완행버스로 다녀왔다」 전문
● 셋째, 솔직하게 표현한다.
시는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 종이 위에 옮기는 작업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청소년기의 혼돈을 극복하고, 연애편지를 쓰면서 사랑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시도 다른 글쓰기와 같이 자기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더구나 시는 감정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높이 사는 문장이어서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학양식입니다.
시는 자기 삶을 솔직히 직시하게 합니다. 자기 삶을 솔직히 털어놓아 자기 치유의 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시는 고해성사소입니다. 교회의 권위는 고해성사 제도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논어』의 사무사는 시를 대할 때 정직하라, 솔직하라는 말입니다. 창작자나 독자, 편집자 모두 이러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공자의 문학관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마음을 대리하여 적는 대필자입니다. 사람은 본래 사악하고 착하고 슬프고 기뻐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덧붙이자면, 종교 경전에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사람은 원래 간음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술 먹고 술 취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사람을 미워하고 미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원래 이러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경전에 계율로 정하여 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원래 마음을 시인이 대신 표현하여 주면, 독자들은 시를 읽고 공감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은 자신을 감추고 위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여 솔직히 드러내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가 「폭설」입니다.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가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 자꾸 폭설로 지워 주신다.
- 「폭설」 전문
이 시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가지입니다. 어느 분은 제가 이웃집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놀리기도 합니다. 혹시 이 시가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이웃집 남편이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어느 분은 제가 아내와의 사이가 여전히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안도하기도 합니다. 자기 부부관계가 안 좋은 것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저는 시인이란 존재가 남의 죄를 덮어쓰고 대신 죽은 예수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분은 자신의 속마음을 썼다고 탄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와 시인의 실제 삶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롤랑 바르트라는 사람은 작품에서 작가를 죽여야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가 탄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오로지 글쓰기를 배합하고 조립하는 조작자, 또는 남의 글을 인용하고 베끼는 필사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공자가 말한 “기술할 뿐이지 창조하지 않는다”는 ‘술이부작’입니다.
그러니 작품을 읽을 때는 저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읽어야 진정한 독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작품에서 작가를 몰아내고, 작품속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느껴질 때 감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이 시는 바로 나의 이야기고 감정이야!” 하고 말이죠.
위 시의 내용은 실제 이웃집 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허구헌 날 술집에 있다가 밤늦게 귀가하니 이웃집 여자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주쳐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는 사무실 동료들과 자주 술집에서 노닥거리다 노래방을 들러서 집에 오는 대한민국 보편적 중년 남자의 불량한 삶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웃집 여자는 불량한 욕망과 삶의 태도에 대한 비유일 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의 저녁 문화는 대개 술집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술을 잘 먹고 많이 마시는 놈이 남자답고 쫀쫀하지 않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술 잘 먹는 놈이 출세한다는 신화가 여전합니다. 이건 좋건 나쁘건 어엿한 문화, 관습이어서 혼자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아래 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살아가는 중년의 위선적 행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가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 「거짓말」 전문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