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은 좁게는 등불을 켜는 그릇만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등화구(燈火具) 전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등불을 켜는 그릇으로서의 등잔은 재질에 따라 토기,
도기(陶器), 자기(磁器), 옥석(玉石), 철, 놋쇠(鍮器)등이 있으며,
형태별로는 종지형, 탕기형(湯器形), 호형(壺形) 따위가 있다.
호형 등잔과 탕기형 등잔은 주로 석유수입
(우리나라의 석유 수입은 1876년-고종13년)이후에 만들어져 사용되었는데
석유의 인화성(引火性) 때문에 주로 뚜껑에 심지를 박아 사용한 것이다.
받침과 기둥이 하나의 몸체로 된 백자 서등(書燈)과 유기(鍮器)등잔,
일제시대에 대량 보급된 손잡이가 달린 호형 등잔(호롱)이 모두
석유사용과 함께 나타난 것들이다. 종지형 등잔은 석유를 사용하기 이전에
호마유(胡麻油)나 들기름, 콩기름, 아주까리(피麻子), 동백기름, 면실유(棉實油)등의
식물성 기름과 상어, 고래(鯨油), 정어리 등의 생선기름, 그리고 돼지기름,
굳기름(소고기를 끓여서 위에 뜨는 기름을 굳혀 만든 기름)과 같은
동물성 기름을 연료로 사용한 것이다. 종지형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박아 사용했는데 심지는 솜(綿), 삼실(麻絲), 한지(韓紙)등을 꼬아서 만들었다.
지금까지 출토된 삼국시대의 토기 등잔에서도 종지형 등잔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19세기말 호형 등잔이 만들어질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등잔의
기본 형태로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1971년 백제 무령왕릉 발굴 때 나온 현실 내부의 백자 등잔
(백제 무령왕릉 현실 내부에서 나온 백자등잔은 당시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도
종지형 등잔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궁중에서 사용한 것은 석등잔(石燈盞) 또는 옥등(玉燈)이라 불렀고,
불교사원에서 사용한 것은 선등(禪燈), 그외 무속인 들이 사용한
작은 형태의 인등(引燈)과 대형으로서 일반이 사용한 현등(懸燈)이 현재 남아 있다.
이러한 것들은 고려시대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많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특산품으로서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물품의 하나였다.
등잔은 용도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다. 크게 실내에서 사용하는 것과
실외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