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 입구에 핀 장미꽃이 먼저 나그네를 반긴다.
결코 귀한 꽃은 아니지만 산속에서 본다는 것이 희유(稀有)한 일이다. 야생꽃이 아니라 입구 공터에서 일렬로 심어진 것을 보니 살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것이다.
신라 하개 무렵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는 백홍암(白興庵)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암자이다. 구모로 따지자면 여느 산중 암자보다 덩치가 커서 그것들의 어머니 같은 느낌이다. 보화루(寶華樓)만 해도 1백 명은 족히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맞은 편의 극락전(極樂殿)도 몸채도 듬직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어서 다시 찾아온 것이 저녁 무렵이었다. 선방인 심겅당(尋劍堂)이 암자 건물들의 가운데쯤 있으므로 낮에는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얼씬거릴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검당. 얼핏 보아서는 이처럼 살벌한 편액도 없을 것이다. '칼을 찾는 찾는 집'이란 말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서의 칼은 모든 번뇌와 무명(無明 : 어리석음)을 자르고, 마음에 낀 업(業)까지도 잘라버리는 깨달음의 칼인 것이다. 그런 칼을 하나 얻고서야 가보좌를 풀겠다는 심검당의 비구니 스님은 모두 26명이나 된다고 한다.
선방의 스님들이 포행(布行 : 휴식)하는 저녁의 한때지만 그래도 낮시간의 긴장이 극락전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다. 잠시 쉬는 스님들의 걸음걸이는 소리없이 나는 기러기들을 연상시키고, 선한 눈망울에는 보삭 같은 침묵이 가득하다. 이런 공기 속에서도 스스럼없는 식구가 있다면 통통하게 생긴 두 마리의 견공(犬公)뿐이다.
"86년도에 탱화를 도둑맞고 난 후, 밤마다 보초를 서는 것도 모자라 개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이름은 청용이, 호동이라고 그래요. 도둑한테는 염라대왕이지만 우리들한테는 천진불(天眞佛)이지요."
호동이와 청용이는 선방에까지도 겁없이 들락거린단다. 눈총을 주면 물러가 있다가도 부르면 다시 꼬리를 흔든다는 무진(茂震)스님의 말이다. 그러나 개들의 재롱은 잠깐이고, 주지인 육문(六文)스님을 비롯해서 수행해야 할 스님들이 밤마다 방범대원처럼 암자의 보물들을 지키느라고 정말 힘이 들었다고 한다.
비바람에 탈색되어 단청이 이끼처럼 은은한 극락전(보물 제790호)과 법당 안의 아미타삼존상을 받들고 있는 수미단(보물 제486호)을 보호하느라고 길짐승까지 수고하는 현실이고 보면 '보물 속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무진스님의 고백이 절로 이해가 간다.
수미단의 층마다 음각과 양각 또는 투각으로 새겨진 봉황`공작`꿩`용`잉어`개구리`동자`코끼리`사자`사슴`모란 등에게 염치없는 인간을 대신해서 사과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스님들이 선방에서 참선 정진을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영원한 미소 속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無染 정찬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