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초등학교 때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내가 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크게 보였던 인물이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었고 그때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때도 역시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를 들어가야 할 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서 당시 군산에서 제일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3류 인문계를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선택한 것이 가정 형편까지 고려해서 나 혼자 공고를 선택하여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고를 다니면서 기능공으로 회사에 취직해서 살아가는 산업전사로서 삶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꿈은 내가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있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내 마음대로 회사에 취직해서 살 수 있는 길이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군대도 갈 수 없도록 폐결핵이 걸려서 면제가 되었고 그로 인해서 취직도 못하였고 아예 대학은 꿈도 못 꾸었기 때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 저러한 잡다한 일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면서 방황의 시간을 가지면서 거의 1년 반 이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런 꿈도 없이 어떤 기대로 없이 젊음을 그렇게 우울하게 어둡게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에게 꿈이 있지 않으냐? 네가 가야 할 길이 있지 않느냐?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 난 그때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런 음성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공고를 졸업한지 2년이 거의 될 무렵 대학을 가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신학교를 간 것이 아니라 일반대학을 먼저 하고 신학교를 가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나서 2년 만에 대학교를 들어갔고 8년 만에 신학교를 들어갔고, 11년 만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13년 만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중간에 신학교를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때 꿈이 흔들렸습니다. 내가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불분명했습니다. 사람들도 말렸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까지도 말렸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금식 아닌 굶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가장 은혜가 넘친다는 한얼산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무슨 강한 음성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뜨거운 불이 내게 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가 되는 길로 인도하고 있구나 라는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의심 없이 목사의 길을 가게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의 설교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특히 처음으로 언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어린 사무엘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야기입니다.
1.사무엘이 어릴 때 이스라엘의 영적 기상도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기상도는 잔뜩 구름이 끼어 있어서 햇빛을 볼 수 없는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여호와께서 말씀도 자주 들려주시지 않았고 계시를 보여 주시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이미 눈이 어두워 앞을 잘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어린 시절의 세상은 어두웠습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께서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기분 좋을 때입니까? 사랑할 때입니까?
기분이 좋거나 사랑하거나 관심이 있을 때에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미워하거나 관심이 식을 때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을 사랑해서 애굽에서 구원한 백성에게 왜 말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나에게 잔소리라도 하는 것은 관심이 있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한 3일 정도를 친구네 집과 교회에서 보내느라고 집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안 식구들이 어디에 갔다 왔는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3일 동안이나 나갔다 왔는데 꾸중은 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참 서운했습니다. 무관심처럼 서운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사기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대로 제멋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는 행동이 싫어서 관심을 가지기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제사장인 엘리 마저도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물론 육적인 눈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어두운 것은 영적인 눈이었습니다. 하나님
께서도 잘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엘리도 하나님을 잘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의 영적인 눈이 밝아질 수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밝아지는 길은 하나님을 자주 만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데 눈이 밝을 수는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구름이 잔뜩 낀 상태였고, 안개가 자욱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 수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제사장마저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2.그래도 어린 사무엘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소년 사무엘은 엘리 밑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은 어둡고 영적 기상도는 흐리다고 하지만 사무엘은 자신에 일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을까?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일까? 나의 20대 초반 시절 참 암울했습니다. 그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봉사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찰 집사님이 없는 교회의 허드렛일을 다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기도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난 하나님 앞에 있었으며 예배하는 자로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를 부르셔서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무엘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사무엘은 예배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엘리 제사장이 문제가 있어도 그는 그 앞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충실했는지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한 번에 들었고 곧바로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가 자신을 부르셨습니까? 묻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만이 아니라 음성이 들릴 때마다 달려가 응답을 하였습니다.
한나도 그랬지만 사무엘도 역시 당시 제사장인 엘리를 잘 섬겼습니다. 그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한나도 아들을 여섯이나 낳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나가 엘리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훌륭해서라기보다는 한나의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훌륭한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기보다는 바른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영적으로 어둡고 하나님의 음성도 잘 들리지 않는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동하고 엘리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하고 섬겼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세상은 온통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 어린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아들을 엘리의 성막에 보내놓고 무엇을 했겠습니까?
날마다 시간마다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분명하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저도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예배하는 자리에도 있었지만 날마다 눈물 뿌려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물 뿌려 기도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일 뿐 아니라 눈물의 기도에 대해서는 속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 흘려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친구 목사님들에게 가끔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좋은 차를 타는 것도 생활이 윤택한 것도 교인 수가 많은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면 그것이 부럽습니다. 아직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3.말씀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한번만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아 볼 때까지 부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번 부르시면 끝까지 부르시는 분입니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멈추시는 분이 아니고 대답할 때까지 부르시는 분입니다. 하기 싫다고 도망간다고 멈추시는 분이 아니라 좇아가서 잡아서라도 부르시는 분입니다. 요나를 아시시 않습니까? 그가 도망하였지만 끝까지 좇아가서 그를 불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줄곧 엘리 제사장 앞으로 달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부르십니다. 결국 엘리 제사장의 인도로 사무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압니다.
아무리 엘리 제사장이 눈이 어둡고 영적으로 어둡다고 하여도 그래도 하나님의 제사장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사무엘을 부르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엘리 제사장이었습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준치라는 생선은 삭혀서 먹기도 하는데 썩어도 준치만의 독특한 맛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은 문제가 있어도 그 역할이 있다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한나에게 행한 것과 사무엘에게 행한 것은 보면 엘리는 제사장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주신 말씀은 놀랍게도 엘리 제사장의 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엘 리가 한나에게와 사무엘에게 나름대로 제사장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제 자식이 하나님을 모독하는지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한 죄와 제물이나 예물을 소홀이 다룬 죄에 대해서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사무엘에게 무슨 말씀을 주셨는지 묻게 됩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어떻게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사무엘에게 말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숨김없이 다 털어 놓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무엘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이 어련하시랴!” 참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자신의 잘못도 알고 있고, 자신이 어떻게 될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다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특별히 그가 한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다 사무엘을 하나님이 세운 예언자로 받들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때로부터 하나님은 계속 계속해서 당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날마다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1.사무엘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2.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를 잘 섬겨야 합니다. 가까이 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목사를 찾아서 묻고 물어야 합니다.
3.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져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가정, 내 일터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말도 다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 은혜가 성도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