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고 아주 훗날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각성한 조선인들이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때 공원에 있던 영남 선비 심산 김창숙 일행이 이렇게 기록했다.
선언문 말미에 연서한 33인의 성명을 살펴보았다. 유림단 이름만 빠져 있었다. 선생의 마음
부끄럽고 원통하기 짝이 없었다. 동행했던 김정호가 울음을 터뜨리니 웅기중기 모여 섰던
군중들이 야유와 비난을 쏟아 부었다.
"저놈들이 통곡은 왜 하는가? 나라를 망쳐놓고 모든 죄악은 다 조성해 놓은 놈들이면서
독립운동에는 한 놈의 콧등도 구경할 수 없더니 이제 무슨 낮을 들고 통곡이 무슨 놈의
통곡이냐!"
그 죄악은 네 가지다.
부국과 강병과 공정한 기회 보장과 공정한 분배를 책임지는 국가 지도자로서, 역대 조선
권력집단은 부국을 하지 않았다. 성리학 지식 권력인 사대부와 왕실 유지를 위해 잉여이익을
만들 수 있는 일체 산업을 억압했다.
강병을 하지 않았다. 도덕주의와 관념론에 매몰돼 덕치를 만덕의 근본이자 실천강령으로
삼았다. 일본이라는 오랑캐에게 문을 닫아버리면 무사하리라 믿었다.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지구상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자민족노예제를
영속화했다.
공정한 분배를 책임지지 않았다. 탐관오리의 학정을 방치하고 모든 자원은 권력층이
독점했다.
이 만악의 근원이 '성리학'이다. 10세기 송나라 때 탄생과 동시에 폐기된 윤리학에 현실을
꿰맞췄다. 탈레반과 무엇이 다른가.
- 박종인 저, ‘대한민국 징비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