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 시간동안 배우고 일상속에서 경험한 풍성한 것들을 나누려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어요.
지난 과거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나누어주는 벗들을 보며
우리가 성령님의 큰 신뢰안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각자가 가진 어려움와 연약함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존재를 규정짓지 못한다는 것.
그만큼 우리는 완전하고 따스한 손길에 메여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활짝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체들이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이들의 마음 한줌, 걸음 하나가 하나님이 보시기엔 얼마나 그자체로 예쁠까.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지체들 보며 알아갑니다.
지난 월요일에 생일이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축복을 받았어요.
원래 저는 생일을 크게 챙기지 않는데,
봄날에 태어난 저에게 스스로도 축하한다고,
태어난 것이 참 축복이지? 이야기해주는 생일 보낼 수 있었어요.
화요일에 할머니와 아빠 집에 가서 하루 머물고 돌아왔어요.
자상하시다가도 어느순간 불같이 화내는 아빠에게 어린시절 큰 상처받았었는데
그날 아빠와 지내며
‘좋은 것이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이 아빠는 그저 단순하구나’ 싶었어요.
‘할머니도 생각이 복잡하고 많구나, 그런데 가족안에 많은 관계들을 헤아리려는 마음으로 그랬구나,
아빠와 할머니는 참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둘은 많이 부딪힐 수 있겠다’ 싶었지요.
그동안 알았던 조각조각의 아빠가 아닌 더 넓은 시각으로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지체 바라보듯 아빠를 거리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제게 생긴 것이에요.
아빠와 관계 맺는 것도, 끊는 것도 제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아빠의 존재가 어떻듯(예전처럼 불같은 화를 내든 달라지든) 나는 영향을 받지 않아요.
같이 해물탕 먹으러 가서 한 국자 가득 퍼담는 아빠를 보면서
처음으로 어린 딸처럼 “나도 담아줘!” 했어요ㅎㅎㅎ 아빠는 좋아하셨어요.
주시는 용돈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어요.
그동안 왠만한 도움은 안받으려 했었거든요.
내 안에 그들을 인정하고 관계 맺어갈 용기가 없었던 것이에요.
아빠의 연약한 모습이 날 힘들게도 했지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저를 사랑해주시고 키워주신 아빠의 사랑에 참 감사해요.
아빠와 할머니의 사랑이 지금의 저를 키웠지요.
다시 태어나도 전 우리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어요.
노래 중 한 가사가 떠올랐어요. 채진상원 혼인식 때 마을언니들이 불렀던 노래인데요!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추운 겨울은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고작 4년정도가 지났지만
봄날의 저의 생일 처럼, 새벽이 밝아온다는 저의 이름처럼
지난 겨울과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만 같아요.
배움하면서 내 일상이 풍성해지고 있는 것을 느껴요.
정말 재밌어요!! 앞으로도 이 걸음 쭉 걸어가고 싶어요.
첫댓글 아빠도 할머니도 누구도 그냥 사는 거에요.
어리석은 모습, 부족한 모습 그대로.
이게 현실이며 이 현실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들과 하나되어 그들과 사귈 수 있어요.
(사귐 속에서 변화는 시작돼요.)
이런 민중의 삶, 이런 어리석은 무지랭이들의 삶을 껴안고 사랑하신 분이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은 우리같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못난 민중들을 만나시고 같이 먹고 마시며 어울리셨죠.
그러니
첫째, 내 안에 못나고 어리석은 내 모습이 사실은 그리스도가 좋아하는 민중의 모습이니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둘째,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모습도 문제 될 거 없다. 그들도 예수에게 사랑받는 존재들이다.
셌째, 더 깊이 들어가면 그들이 예수다!(지극히 작은 자)
ㅎ
마음공부는 예수가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눈을 통해
우리가 우리 마음을 보는 거에요~
이 걸음 쭉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