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낚시터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사람은 고기를 잡으면 고기가 20센지보다 큰 고기는 놓아 주고 20센지보다 작은 고기만 잡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낚시군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작은 고기만 잡고 큰 고기는 놓아 줍니까?> 그랬더니 났시군은 대수롭지 않게 우리집에 20센지보다 큰 프라이팬이 없다는 것입니다.
큰 프라이팬이 없으면 큰 프라아팬을 사면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큰 고기를 절반으로 나누면 됩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교사 세미나에서 교육이란 먼저 생각의 변화를 가져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정적인 생각으로 변화를 가져 올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도전적인 일을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스마일스는
<생각이 씨 뿌려지면 행동의 열매를 거두고, 행동이 씨 뿌려지면 습관의 열매를 거두고
습관이 씨 뿌려지면 인격의 열매를 거두고, 인격을 씨뿌리면 우리의 미래, 장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일찍이 말합니다.
우리가 할수 없다고 하나님이 할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새해를 들어와서 들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지 압시니까?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도로 운명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을 사랑하면 지혜를 주시고 부와 영광도 주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병고침을 받고 기쁨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감동된 사람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40년 동안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서 먹고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매일 만나만 먹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종살이 하던 애급이었지만 그 곳에서 먹던 음식이 그리웠습니다. 부추, 마늘, 파, 오이, 참외 그리고 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으로 돌아 가고 싶어 하였습니다.
애급에서 살던 때가 재미있었다고 회상하며 그리워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육십만명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23)
모세는 당시 최고 지도였습니다.
모세는 당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사람입니다. 신명기 34장 10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 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입니다. 구약에 하나님이 쓰신 믿음의 사람 가운데 16명을 뽑아 넣은 것이 믿음장입니다. 이들은 나무로 말하면 거목입니다. 별로 말하면 거성입니다. 돌로 말하면 거석입니다. 사람들로 말하면 거인들입니다. 40절에 16명을 넣었습니다. 한 사람당 두 절씩 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만 7절을 할예하였습니다.
모세는 확실히 믿음의 거성이었습니다.
그런 모세도 크신 하나님은 작게 여길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출애급 인구는 약 200만명, 장정만 60만명이었습니다. 보통 두 명이 한 근을 먹는다고 계산하면 한 달 먹을 소가 3000만 마리가 됩니다. 모세는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광야에서, 소 한 마리 기를 수 없는 광야에서 그 많은 고기를 하나님이 먹일 수 없다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였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작게 보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성격의 사람입니까?
1. 과거를 말하지 말고 미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실패자는 과거를 말하고, 성공자는 미래를 말합니다. 안 되는 사람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잘 되는 사람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애급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과거 고기 먹던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부추, 마늘, 파, 수박을 먹으며 노예생활하던 그 시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것을 모두 재미있고 즐겁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고통스럽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언어는 늘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다시 오리라.><천국이 가까웠다.><온 천하에 다니라.><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우리는 미래 이야기만 하여야 합니다.
지난 부흥성회때 받은 은혜가
사실대로 말하기보다는 믿음의 말을 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거짓말로 말하거나 확대해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으로 크게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잘 되는 믿음의 사람은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개척하여 나가며 지금은 비록 광야같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어도 내일을 힘차게 개척하여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볼려면
지금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지금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면 됩니다.
지금 자신의 형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면 된다는 믿음의 말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면 됩니다.
올해 한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결심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결심해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믿음의 말을 선포하는 훈련을 합시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잘되는 것을 보게 해 주세요. 믿음으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과거를 말하지 말고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시편을 읽으면서 은혜받은 말씀이 시편 46편 10절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2. 크게 말하지 않고 더 크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크게 말하는 차원을 넘어 더 크게 말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크게 말하고 있습니까?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21-22)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23)
양 떼와 소 떼를 잡을 들 족하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 들 족하겠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얼마나 큰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다 잡는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모세외에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불게 하셔서 날라가는 메추라기들을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사는 곳에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3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민 11;31-33)
하루길은 백리 40 km를 말하고 있습니다. 두 규빗은 1m 가량됩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1m로 메추라기가 쌓였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만큼 크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크게 보아도 하나님의 생각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나폴레옹이 타던 말이 도망을 쳤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쌘 병사가 도망간 말을 붙잡아 왔습니다.
나폴레옹은 애지중지하던 말을 찾게 되자 너무 감격해 엉겁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다. 대위!”
그 말을 들은 병사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얼른 경례를 붙이면서 “감사합니다. 장군님!”하고는 즉시 사병 막사로 가서 짐을 챙겨 장교 숙소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낡은 군복을 벗어 버리고 대위 군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폴레옹 앞에 나타났습니다.
“장군님 명령대로 즉시 실행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대위 정말 멋있다. 앞으로 더 잘하기 바란다.” 며 대위 계급을 인정했습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물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이야 오죽하겠는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 ; 3)
분명한 믿음으로 예수께 구하는 것은 틀림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축복받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앞에 크게 말하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크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3. 육적인 것을 말하지 않고 영적인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 큰 사람은 육적인 것을 말하지 않고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부추, 마늘, 파, 수박, 참외가 먹고 싶다.><과거가 재미있었다.><애급으로 돌아가고 싶다.> 모두 육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은 항상 영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2차대전 때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젊은 청년 한 명이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군목이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내가 당신 대신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드리지요. 무엇이라고 쓸까요?>
청년이 말했습니다.
<어머니께 제가 기쁘게 죽었다고 써주세요. 조국을 위하여 싸우다가 당당하게 죽었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리고 편지 한 분에게 더 써주세요. 지금 교회학교에서 저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적,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준 분이지요. 그 분께는 제가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고 써주세요.>
이 말을 하고 그 청년은 눈을 감았습니다. 군목은 그 청년이 말하는 대로 편지 두 통을 써서 보냈습니다. 한 통은 어머니에게 그리고 한 통은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으로부터 회답이 왔습니다.
<편지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사실 교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별로 열매가 없고 지겨워서 한 달 전에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편지를 받아보고 내가 한 일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회학교 선생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심코 가르치는 것같아도 씨가 뿌려져 죽을 때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적으로 말하지 말고 영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됩니다. 먼저 하나님의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잘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면 내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4. 상식을 말하지 않고 믿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최고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상식적인 말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21-22)
모세는 지금 땅위에 양과 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있는 물고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엉뚱하게도 하늘에 있는 새들의 고기를 바람으로 몰아 주셨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 하는 곳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포도주가 모자랐을때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앞에 홍해 뒤에 애굽군대가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주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땅과 바다만 보았지만 하나님은 하늘을 보셨습니다.
우리의 기본 상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도 더 크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1. 과거를 말하지 말고 미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2. 크게 말하지 않고 더 크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3. 육적인 것을 말하지 않고 영적인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4. 상식을 말하지 않고 믿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