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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꽃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양산박
2019년 4월 14일 일요일 백두대간 29 회차 선달산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29회차 : 도래기재 – 옥돌봉 – 박달령 – 선달산 – 늦은맥이 – 갈곶산
( 다시 늦은목이로 내려와 생달마을로 하산 )
산행거리 : 약 18 km 산행시간 : 약 8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431759
거리 18.6 km
소요 시간 8h 19m 20s
이동 시간 7h 40m 30s
휴식 시간 38m 50s
평균 속도 2.4 km/h
최고점 1,257 m
총 획득고도 814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29 –선달산 (先達山)
양산박
책에 묻혀 보낸 세월 과거급제 하였으나
켜켜이 쌓인 공직 비벼들 자리없네
집에서 허송세월 빈 자리를 기다리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산과 들을 쏘다닌다
이웃집에 김선달 아랫집에 박선달
오랜 세월 공부하여 얻은 지식 만만챦네
에헤라 그럼 무엇하리 쓸데없는 지식일세
우리 모두 동무하여 선달산에나 올라 보세
옥돌봉 오르는 길목에 있는 수령 550년 된 철쭉나무
봄이 왔으나 겨울은 아직 가지 않았다. 주말에 비가 내릴거라는 예보가 있어 우중산행 채비를 갖춰야 하나 낮에는 기온이 많이 올라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지 혼란스럽다. 집 앞 도로에 있는 벚꽃은 만발하고 야생에서 자라는 봄꽃도 대부분 피어 났다.
버스가 강원도 영월을 지날 때 눈을 돌려 창밖을 보니 산세가 빼어나다. 작은 강줄기 뒤로 빼어난 산봉우리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오늘 우리가 가는 산은 나무에 가려 조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이어지는 산세에 잠시 흥분한다. 버스는 그 수려한 산봉우리를 지나쳐 가파른 도로를 힘들게 올라 고개를 하나 더 넘어서 오전 10시 산행 들머리인 도래기재에 도착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후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제까지 대간길을 걸으면서 다른 산악회와 함께 간 적이 몇 번 안되는데 오늘은 우리를 바로 뒤에서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따라붙는다. 나이대가 우리 산악회에 비해 대체로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옥석산 옥돌봉까지 이르는 짧은 구간을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추월한다. 이들은 옥돌봉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또 우리가 박달령으로 가는 도중 점심을 먹을 때 지나친 이후 서로 만나지는 못했다.
도래기재 (해발 780)에서 옥돌봉으로 오르는 2.68 km 의 짧은 구간은 자연 학습장 같다. 주로 참나무 종류가 대세를 이루면서 물박달나무와 물푸레나무도 상당히 많은데 이는 중부지방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임에도 나무에 이름표를 붙여 놓으니 길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황벽나무는 껍질이 굴참나무 비슷한데 누군가 그 속을 보려고 껍질을 벗겨 놓았다. 황벽나무는 속껍질이 노란 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이 도래기재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벌목한 소나무를 옮겨가는데 이용한 교통로였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조선시대 이 지역에서 나는 소나무를 춘양목이라 하여 강원도에서 나는 금강송과 함께 귀하게 여겨졌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인근에 역리가 생겨 춘양면쪽으로 2 km 떨어진 곳에 도역리(도역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추후 좀 더 쉬운 발음으로 도래기마을이 되었는데 이 고개는 도래기마을을 잇는 고개라는 뜻이라 한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까지 2.68 km 완만한 오르막이다.
역(驛)이 있는 마을 도역리(道驛里)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도래기재
황벽나무 - 누군가 칼로 껍질을 파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쭉나무 앞에서
옥석산(玉石山) 옥돌봉 ( 1,242 m )
도래기재에서 옥돌봉까지의 구간에는 아직도 큰 소나무가 더러 자라고 있어 옛날의 찬란했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옥돌봉 조금 못미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 되었다는 수령 550년의 철쭉나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옥석산 옥돌봉 - 높이 1,242 m로 전설에 의하면 단군인 환인께서 천지순회를 하다가 이른 곳은 옥이 안 난 곳이 없고 선경(仙景)이 아닌 곳이 없었다 하는데 환인이 순회한 곳이라 하여 이름을 옥돌봉이라 하였다 한다. 또 이 산 정상에는 흰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빛이 예천까지 빛났다 하여 예천바위로 전해오고, 이 곳은 6.25전쟁때의 치열한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옥돌봉에서 박달령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도 군인들이 파 놓은 진지가 폐물처럼 남아 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조금씩 눈에 띄던 잔설(殘雪)이 옥돌봉에 이르자 음지에는 신발 발등이 묻힐 만큼 많이 쌓였다. 특히 옥돌봉에서 박달령으로 향하는 능선의 오른쪽 북쪽 사면은 지금이 봄인가 의심이 들게 한다. 능선에도 아직 눈이 남아 있는 모습이 한겨울에는 어떠했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잔설이 성성한 산길을 걸어
옥석산 옥돌봉(1,242 m)에 오른다. 옥돌봉은 태백산쪽으로 가까와 지면서 단군신화를 담고 있다.
우리와 조우한 타 산악회 회원들은 옥돌봉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박달령 ( 박달령 1009 m )
그렇게 겨울은 쉬이 물러가지 않으려 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데 이미 봄은 햇볕의 기운을 받아 구석 구석 자리를 잡고 있다. 가는잎그늘사초에도 작은 이삭이 올라와 패었다. 저 밑에서는 이미 져버린 생강나무와 올괴불나무꽃도 이곳에서는 이제 막 피고 있다. 작은 한반도에서도 남북 또는 지대의 고저에 따라 한 두 박자 늦고 빠르기는 하지만 분명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박달령으로 가는 길 널찍한 양지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많은 인원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라면을 끓이고 각자 싸온 밥과 빵 그리고 과일로 진수성찬을 즐긴다. 최근 발생한 고성산불로 인해 버너를 사용하는 것이 조금은 꺼림칙하지만 모두 조심하면 된다는 마음 한가지로 라면의 쫄깃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집안에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별동대장 대신 큰형님과 정대원이 화력을 지원한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이 햇볕을 가려 스산한 기운 속에 모두 서둘러 점심을 마친다.
박달령(박달령 1009 m )까지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꽤 긴 내리막이다. 도래기재를 출발한지 약 3시간만인 오후 1시 10분쯤 박달재에 도착했다. 널찍한 산마루 한켠에 산신각 사당이 세워져 있고 백두대간 돌간판이 서 있다. 앞서 내려왔던 총대장님은 이곳에서 오전약수로 하산하고 우리는 선달산(先達山)으로 향한다.
능선길 잔설(잔설)은 지난 겨울 장엄했던 풍광을 보여주는 잔상이다.
가는잎그늘사초꽃
자연의 회귀 - 격정의 긴 세월을 버텨온 신갈나무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람에 쓰러져 땅위에 눕는다.
12시 조금 넘어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짧은 점심휴식을 갖는다.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꽃 - 이곳에는 아직도 노랗게 피어 있다.
올괴불나무꽃
아름드리 소나무가 산길 내내 눈길을 끈다.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박달재에 도착했다.
박달령 ( 朴達嶺 973 m )
옥돌봉과 선달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라 한다.
선달산 (先達山 1236 m )
박달령 고개가 높아서 선달산의 나무가 잘 보전된 것인지 선달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수령이 수 백년은 됨직한 거목이 늘어서 있다. 소나무는 굵기도 대단하지만 곧게 위로 벋어 올라간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신갈나무도 한 아름이 넘게 자란 것이 많이 보인다. 최근 큰 바람이 지나간 것인지 소나무 가지와 참나무 둥치가 부러저 나뒹구는 것이 여럿 눈에 띈다. 어쩌면 지난 고성 산불 때 전국적으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는데 그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선달산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가 길게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닥에는 눈이 점점 많아지고 오른쪽 북사면에는 겨울철 눈을 방불케 한다. 도래기재에서 시작하여 진행하는 동안 산길은 잘 가꾸어져 있어 걷기에 편안하고 중간 중간 거리목과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 잃을 염려도 없다. 다만, 조밀하게 자란 원시림 같은 나무로 인해 조망이 전혀 트이지 않는 것이 큰 흠이다. 이 산길을 명물로 만들려면 중간에 두 군데쯤 높은 데크탑을 만들어 놓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멀리 선달산 정상능선이 보일 즈음 갑자기 주변이 스산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가 짙어지는데 빗방울인지 싸래기눈가루인지 조금 내리고 정상쪽으로는 하늘이 어두운 것이 금방 비라도 내릴 듯한 조짐이다. 함께 가던 Y는 비옷을 꺼내 입는다. 이렇게 자기가 비옷을 입으면 오던 비도 멈춘다며 너스레를 떤다. 나도 배낭을 뒤져보니 전에 입었던 1회용 비닐 우비가 들어 이으나 그냥 넣어 두고 배낭덮개만 꺼냈다. 대지를 적셔주는 단비이니 내리면 조금 맞아 줄 생각이다.
안개에 휩싸인 능선길은 이제 바닥에 쌓인 눈과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길게 벋은 고목의 가지는 마왕의 팔다리를 연상시킨다. 가끔씩 선 채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끊임없이 걷는다. 산길은 짧은 내리막이 몇 번 있으나 계속 끝없는 오르막이다. 해발 1236 미터 선달산까지 5 km 의 오르막길을 2시간 걸려서 오후 5시 30분 마침내 선달산에 올랐다. 정상에는 한글로 선달산이라 쓴 커다란 대리석 정상석이 서 있을 뿐 주변은 빽빽하게 자란 물푸레나무와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래기재를 출발한지 5시간 30분 오늘 산행의 대표산인 선달산을 오르고 이제는 내리막 길만 남았다.
선달산이라는 이름은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요, 과거에 장원급제하고도 벼슬을 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 떠돌아다니던 풍류시인 김병연(김삿갓)도 김선달이다. 선달(先達)이라는 호칭은 조선시대 후학(後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문.무과 시험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받지 못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 선달산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산에서 이어지는 어래산 아래 영월땅이 김병연이 마지막 생을 보낸 곳으로 ‘김삿갓마을’이니 어쩌면 그런 연유로 생겨난 이름인지도 모를 일이다.
봄은 버드나무 가지끝에 머물러 있다.
아리따운 처녀치마도 올라오고
낙락장송 소나무는 푸르름을 자랑한다.
길가에 아름드리 신갈나무 도열해 있고
짙은 산안개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닥에 쌓인 눈은 제법 두꺼운데
성질 급한 봄꽃은 기다릴 줄 모른다.- 말냉이꽃
낮은 계곡에선 흔해빠진 현호색도 산길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오후 3시 30분 선달산(先達山 1,236 m ) 정상에 닿았다.
늦은목이 ( 720 m )
앞서간 일행은 기미조차 안보이니 뒤에 남은 우리 일행의 마음이 급해졌다. 늦은목이까지 1.8 km 는 거리가 짧지만 경사가 아주 급하다. 1236미터에서 720 미터로 약 500미터를 떨어지는 것이니 그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겠다. 급경사길이 끝나고 다시 좀 완만해진 오솔길이 이어지고 그 길 주변은 커다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널어 서 있다. 앞서 가던 큰형님은 늦은목이 가까이에 잠시 자리를 펴고 앉아 작은 술자리를 펼친다. 이제 산행이 끝나가는 기분이다.
오늘 산행 일정은 늦은목이에서 생달리로 하산하면 되지만 지난 회차에서 누락한 갈곶산 – 늦은목이 구간을 원하는 사람에 한해 다녀오기로 하였다. 지난 회차에는 갈곶산에서 부석사로 하산하여 이 짧은 1 Km구간을 생략했었다. 선두에 앞서갔던 회원들은 이미 갈곶산을 다녀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갈림길에 배낭을 벗어두고 홀가분하게 갈곶산을 향해 걸었다. 갈곶산 정상에 도착하니 중간팀 회원 네 명을 만났다. 지난 번에 다녀온 산이니 오래 머물 것도 없이 주변 사진을 찍고는 곧 바로 하산한다.
늦은목이는 선달산과 갈곶산 사이에 있는 낮은 고개다. 해발 720 미터 밖에 안되니 이 고개를 넘는 산길도 아주 완만하다. 고개이름도 고개가 낮아 낮은 고개라는 뜻으로 ‘낮은목’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늦은목이가 되었다고 한다.
늦은목이로 내려가는 길에는 우람한 소나무가 즐비하다
배낭털이 - 늦은목이가 가까와지고 짧은 휴식을 갖는다.
오후 4시 20분 늦은목이에 도착해서 갈곶산으로 향한다.
갈곶산( 996 m )은 지난 회차에 올랐던 봉우리다.
생달마을과 물아저수지
늦은목이에서 주목산장까지 내려오는 1 km 의 짧은 게곡길은 산능선의 겨울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큰개별꽃과 각종 제비꽃 그리고 산괴불주머니 꽃 등 갖가지 봄꽃이 피어 있다. 계곡 산길에서 벗어나자 곧바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오면서 산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길에서 이어지는 곳은 모두 팬션들이다.
생달리라는 마을 이름은 두 개의 계곡이 합쳐지는 곳에 작은 동산이 있는데 그 곳에서 보면 계곡에 비친 달의 모습이 두 개로 보인다고 하여 ‘쌍달마을’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생달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유래는 다르지만 지난 번 대미산 구간 산행할 때 들머리로 삼았던 마을이름과 똑 같다. 이 생달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전약수가 있는데 탄산이 함유된 물맛이 좋아 조선시대에는 전국 제일의 약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한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생달리 아래 물야저수지 근처에 주차된 버스에 도착했다. 미리 내려온 회원들의 산행 뒤풀이가 한창이다. 길어진 날이지만 조금씩 어둑 어둑해지는 시간이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일찍 하산하여 소수서원을 들러보기로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 물야저수지 벚꽃길에 잠시 정차하여 단체 사진을 찍고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이번 구간의 산길은 전형적인 흙산이라 험하지 않았으나 갈곶산 왕복까지 산행거리가 만만치 않아 힘들었던지 버스에 타자 마자 잠이 쏱아진다. 도중에 양평휴게소에서 한 번 정차하고 양재역에 9시 30분 도착했다.
생달리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계곡길이다.
큰개별꽃
잣나무숲
금괭이눈
마을로 내려서면 포장도로를 만난다. 첫번째 집 주목산장
일본갈잎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포장도로
마을을 다 내려와서야 비로소 선달산을 볼 수 있었다.
계곡이 갈라지는 곳에 커다란 동산이 있다.
길가에 핀 산괴불주머니꽃
돌아오는 길에 잠시 물야저수지 주차장에 들러 벚꽃과 눈맞춤을 한다.
물야저수지 위에 핀 벚꽃
첫댓글 이번 산행은 춘몽(春夢)을 꾼 듯합니다....!
사진이 선명한 것이 역시 스마트폰 사진촬영의 달인인듯 싶습니다.
별동대장님 빈자리 챙기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맞아요. 한겨울에도 없던 설경을 봄날에 보았으니 참 복도 많습니다. 대간길 끝날 때까지 멋진 산행을 이어가자구요.ㅎ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4.19 14:1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4.19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