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있는 세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줄 알고 있다면 스스로 모든 해답은 알게 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요구 받는 것이 믿음이다. 그만큼 신앙심이 가지는 의미는 가장큰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신앙심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조건으로 합당함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공동체가 가지는 지혜를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특별한 지혜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인문학은 자연학을 바탕으로 삶의 질서를 유지 시키는 것으로 발전하였고 여기에서부터 종교의 가치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종교의 탈을쓴 허구적인 조직들이 사회 전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는 신앙심이라는 특정한 에너지 결집에 비밀이 있다. 신앙심에는 믿음에 대한 요구가 충족 되면 나타나는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기에 다양함에서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가 엮어져 간다. 하지만 신앙심과 착함을 향한 진리와는 별개라는 사실이다. 신앙심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어떤 조건이 없이 오직 집중력에 따라 증험으로 확신하는 것이기에 신앙심이 참진리를 중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집중을 요하는 신앙심을 이용한 종교 세력화로 사회를 장악해 가는 수단으로 삼아왔고 앞으로도 이부분은 지속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종교들 가운데 과연 진실한 종교는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 또는 사회집단속 이야기들 그런 가운데 사후세계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떠돌고있다. 과연 사후세계는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결론 짓는다면 생사가 본래없음으로 사후세계라는 말은 언어적 오류를 가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직 변화만이 있는데 급격한 변화와 점차적인 변화가 낳은 오해의 언어라는 것을 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사후세계라는 보편적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이 꿈을 꾸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다만 의식계가 다른 단계로 바뀔때 그 변화의 과정보다 지역적 의미가 가져온 탓으로 그리고 상호 연합체로 변화를 선택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점 또는 관심분야가 달라짐으로 우리는 특정화된 기억들을 가지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집중된 에너지를 이끌수 있는 순수한 힘을 지켜낼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의 여정은 상승된 위치에서 행동할 것이다. 사후세계는 지금 당신의 행위 몸과 마음의 역량이 나타나 보이는 내생의 이야기이자 현재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현생과 내생의 변화된 언어가 사후세계인 것이다. 생각따라 보여지는 세밀한 세상을 맞이하는 과정이 보여질 때 기억 되는 것을 가지고 사후세계라고 특정화해서는 않된다. 기억되는 사후세계와 신앙심은 매우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라는 믿음이 형상화 되는 시기를 잘 못 인지 됨으로 사후세계라는 함정 오류의 언어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변화 됨과 이를 인지하는 관찰자가 있을 뿐이다. 돌맹이 하나도 성스럽고 귀하게 여겨지면 그 신앙력은 증폭 되어지고 여기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도가 더해지면 이것이 종교화 되는 오류가 생겨나고 또다시 집단화하여 세력을 과시하면서 시간속에서 지배력 행사를 통해 공간확보에 적극적 행위로 이루어진다. 진정한 종교와 믿음은 진리에 합당하고 착함으로 화합하여 전쟁과 질병으로 벗어난 상태에 이르는 것이며 사후세계 역시 그속에서 연출 되는 다양한 의식계의 모습에 기인된 기억들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집중하는 능력의 도구로 신앙심을 지켜가며 착하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길들여 가면 사후세계 미래세계는 지금의 이 순간이 변화되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 된다. 결론지으면 가장 밝고 맑은 세상을 지켜가는 것이 그 어느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진정한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