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부흥을 기도하라
(장호익목사의 웨일즈부흥의 자취를 찾아 07)
부흥의 날에는 기도하라
그러나
부흥이 없는 날에는 눈물로 기도하라
모라이어 교회
[왼쪽은 1904년 부흥 당시 있었던 교회당 건물이고, 오른쪽은 그후에 지은 건물입니다. 에반 로버츠는 양쪽에서 모두 설교했다고 합니다. 교회 마당에는 1904년 부흥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머라이어교회는 1735년 하웰 해리스의 부흥의 때에 세워진 교회라고 합니다.]
에반 로버츠가 1904년 부흥의 불을 붙였던 루크호어(Loughor)에 있는 모라이어 교회를 찾았다. 예상과 달리 루크호어(보통 루고르, 혹은 루고어 등으로 읽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지인이 발음하는 것을 들으니 '루욱커'에 가깝게 들렸다. 아마도 루크호어를 빨리 발음하는 것 같다)는 제법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모라이어 교회에 도착하니 04년 부흥 기념탑이 있었고, 그 탑에는 에반 로버츠의 젊은 시절 모습의 흉상이 새겨져 있었다. 제법 큰 교회당이었다. 교회 앞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교회 서기 되는 여성도 한 분이 나왔다. 자기의 이름을 베썬(Bethan)이라고 소개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부인 이름이 베썬인 줄 아느냐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그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69년 모라이어 교회에 로 목사님이 오신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그때 자기는 어렸을 때인데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해라서 잘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부흥기념탑입니다. 영어가 없이 웨일즈어로만 되어 있어 읽을 수 없었습니다. 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하웰 해리스나 다니엘 로울랜드도 웨일즈 사람이고 그 기록이 웨일즈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알려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썬은 먼저 에반 로버츠의 부흥 기념탑에 새겨진 웨일즈 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안내를 시작한다. 그리고 두 개의 교회 건물 사잇길로 인도한다. 에반 로버츠의 무덤이 있는 교회 묘지로 가는 길이다. 에반 로버츠의 무덤은 가족묘로 조성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독신의 누나,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과 결혼한 절친한 친구 시드니 에반스, 남동생 단과 부인이 함께 있었다. 시드니는 후에 인도 선교사로 가서 사역을 하며 신학교를 세웠는데 인도 사람들이 자주 찾아 온다고 한다. 에반의 동생 단은 아메리카 선교사였다고 한다. 에반은 끝내 독신이었다.
[에반 로버츠의 묘입니다. 가족묘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오른쪽 앞이 에반이고 왼쪽이 누나 사라입니다. 부모님이 왼쪽 옆으로 여동생과 시드니가 뒷쪽이고, 남동생 단과 그 부인은 오는쪽 옆에 있습니다.]
에반은 13세부터 탄광의 노동자로 일했다. 당시 웨일즈의 주 산업은 탄광이었다. 지금은 가동 중인 탄광이 없다. 채산성이 떨어져 대처 여사가 수상일 때 탄광을 폐쇄한다. 탄광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격렬하게 저항한다. 탄광 일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이들은 탄광을 사랑했다. 지금은 최대의 탄광이었던 Bjg Pit에 탄광 체험 관광코스가 있다. 지하 1000m까지 내려 가 채굴한 석탄을 트램에 담아 소년들과 여자들까지 동원하여 지상으로 날랐고, 지상 가까이에서는 당나귀가 큰 트램을 끌었다. 에반도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탄광에서 일을 했다. 그는 성경을 사랑했다. 갱속에서 일을 하다가도 쉬는 시간에는 성경을 읽었다. 한 번은 갱도가 무너져 목숨을 건졌는데, 성경이 석탄더미에 깔렸다. 나중에 찾고보니 책장이 찢어지고 석탄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때 그 성경은 지금 뉴캐슬엠린에 있는 신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소년광부의 모습입니다. 에반은 13세부터 탄광에서 12년을 광부로 일합니다. 그림 앞에 있는 석탄차는 소년들이 끌던 실제 크기로 웨일즈 최대의 탄광이었던 빅핏에 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에반은 탄광 일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25세가 되었을 때 복음전도자의 소명을 받고 뉴캐슬엠린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의 신학교육은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 04년부흥이 다가오고 있었다. 존 퓨의 전진운동에 가담하여 사역하던 셋 조슈아는 웨일즈 남서부에서 조셉 젠킨스와 협력하여 청년 집회를 개최한다. 연초부터 계속되던 집회는 04년 9월 뉴캐슬엠린에서도 개최되었다. 에반의 절친한 친구 시드니 에반스는 이 때 큰 은혜를 받는다. 그는 후에 에반의 누이와 결혼하였고 인도 선교사로 헌신한다. 셋 조슈아는 뉴캐슬엠린 집회를 마치고 블라이내너로 간다. 에반은 조슈아를 따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의 불덩이가 된다. 에반은 처음에는 웨일즈 전역에 복음을 들고 나갈 청년전도대를 조직하려 한다. 그러나 가족과 고향 마을 청년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기를 열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모라이어교회는 성령의 불길로 불타오르고, 그 불길은 웨일즈를 온통 성령의 불로 불태운다.
[에반이 머라이어교회에 와서 청년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기도했던 곳입니다. 처음에는 청년들이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지만 계속되는 에반의 뜨거운 기도에 모두 깊은 감명을 받고 점차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웨일즈를 불태우는 부흥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부흥은 참으로 놀라웠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교회로 밀려들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에반의 사역의 결과 10만 명이 회심했다고 한다. 술집은 텅텅 비었고, 경찰서 유치장도 텅 비었다. 심지어 광부들은 자신들이 부리던 당나귀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형제여" 라고 부르며 학대를 그쳤다고 한다.
[부흥의 결과 01. 웨일즈에서는 술집 주인이 실직을 했군요.]
[부흥의 결과02. 재판장이 실직 직전이군요.]
[부흥의 결과 03. 탄광 내에서 수시로 기도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에반은 신학교로 돌아 가지 않는다. 그는 부흥의 때 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하루 18시간을 기도했다고는 하지만. 어쩌다 집회에 초청을 받아도 강단에서 기도만 하다 내려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 한다. 로 목사님은 그것이 바로 부흥이 사람의 재능이나 계획에 달려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에반이 부흥이 지나간 후 신학교로 돌아 가지 않은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부흥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흥 이전과 부흥 이후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흥 이전에 우리는 부흥을 기다리며 기도하는,부흥의 때에 쓰임 받을 신실한 일꾼을 양육해야 한다. 그리고 부흥이 지나간 후라면 더욱 부흥의 시기에 거둔 열매를 지속적으로 돌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며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웨일즈의 영적 상황을 보면 이 사실이 더욱 절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