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수 목사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
2019년 10월 23일 수요일
작성자: 조해강 목사(새소망교회)
제목: 거듭남이란 무엇일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5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펼치고 있는 박옥수 목사는 구원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파’라고 부른다.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이 무엇인지 이 글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거듭남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나온다. 그것은 다시 태어난다(born again)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했다. 예수께서는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다시 설명하셨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났을까? 삭개오는 다시 태어났을까? 사도 바울은 어떨까? 베드로는 어떨까?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시 태어났을까? 다시 태어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새롭게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과 같이 쓸 수 있을까? 즉, 중생(重生)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도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돌이켜 회개한 사람도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다시 태어난 사람이며, 다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듭남,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 영생을 얻음, 구원 받음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과거와 다른 삶을 살게 된 새로운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들이다. 전에 살던 사람은 죽었고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것 같은 변화를 말한다. 그런 변화는 마치 다시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과 같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이 진리를 통하여 새롭게 깨닫고 변화된 생각과 언행을 하면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을 가리키는 용어들이 바로 거듭남,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됨, 영생을 얻음, 구원 받은 등이다. 같은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다양한 표현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은 거듭나는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았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았다. 그들에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길을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수전노(守錢奴)는 자선가(慈善家)가 되었고, 교회를 박해(迫害)하던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傳道者)가 되었다. 그런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훗날 그는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담대하게 양심을 따라 행동했다(요 7:50~51, 19:39).
이렇게 보면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길을 돌이켜 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결단을 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거의 죽음을 통과하는 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니고데모가 거듭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마침내 결단을 했을까? 그는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할 결심까지 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결단을 했다. 그것이 거듭남의 결과다.
이렇게 보면 사영리나 글 없는 책 또는 즉석에서 영접기도를 함으로 거듭난다고 한다든지, 어떤 성경구절을 깨달으면 거듭난다고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도대체 몇 가지 지식적인 깨우침이 있다고 해서 우리 삶이 그렇게 변하는가?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닐까? 거듭났다느니 구원을 받았다느니 하는 말은 그 용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일 가능성이 많다.
신앙인의 삶이나 한 인간의 삶은 평생 새로운 깨우침을 추구하고 그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삶의 연속이다. 그것은 한두 번의 깨우침으로 완성될 수 없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The 95 Theses)을 시작할 때, 그 첫 번째를 평생 회개하는 삶으로 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When our Lord and Master Jesus Christ said, “Repent”
(Mt 4:17),
he willed the entire life of believers to be one
of repentance.
우리의 주님이시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주님이 뜻하신 바는
신자의 생애 전체가 회개의 삶이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만약에 신자의 삶 전체가 회개의 과정이라면, 신자는 평생을 통해서 거듭남을 경험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구도의 과정이며, 진리를 배우면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구원의 과정이기도 하다.
삭개오의 경우에,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는 회개했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상생하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지만 삭개오가 그 이후에 어떤 회개를 해야 했을까? 삭개오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뜻밖에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삭개오는 자기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날선 말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그 때마다 삭개오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삭개오의 평생은 회개의 과정이며, 구원의 과정이며, 성숙의 과정이며, 그런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그의 삶에는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삭개오에게 누군가 와서 이렇게 물어본다 하자:
“삭개오씨,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당신은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삭개오가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이렇게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네, 저는 구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받아야 할 구원이 더 많이 있더라고요!
제가 거듭났냐고요?
물론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사실, 저는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아닐까요?
제가 죄 사함을 받았냐고요?
예수님은 저의 죄를 묻지도 않던걸요?
제가 하나님을 향해 사느라 바쁜데
다시 죄를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사실, 죄를 생각하던 옛 사람 삭개오는 이미 죽고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죄 사함과 거듭남, 그리고 구원에 집착하는 이유는 구원을 죽어서 천당 가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볼 때, 구원이란 사실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원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라면, 누가 누구를 거듭나게 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따라 진실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족하다. 복음을 영접하라고 이웃을 재촉하지 말고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사람답게 사는 것을 보여주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삶이 아닐까? 구원의 의미를 바르게 정리하고 나면 삶의 여러 부분이 명확해질 것이다.
언제 구원 받았는가가 중요한가? 생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념할 때만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하루하루 매 순간이다. 일년 내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생일선물로 꼭 받고 싶은 것이 있는 어린 아이 정도일 것이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아름다운 미래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구원파에 속한 형제들이 이 글에 대하여 답을 해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도 자신의 현명한 생각을 나누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가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끝>.
박옥수 목사의 1분 말씀을 듣고-거듭남이란 무엇일까.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