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동방의 독수리 (이사야 46:9-11)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하였노라. 내가 동방(東方)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謀略)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할렐루야, 동방의 독수리가 언녕 왔으면 좋겠다. 내년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마스크가 벗는 날은 대통령선거가 끝나는 날이것이고 말이다. 그렇다. 코로나는 정치꾼들에게 악이용당하고 있다. 저들은 교회를 페쇄시키고 4명이상 모이기를 페하였다. 모든 통신을 통일시켰고 모든 문화를 하나로 집합하였다. 우리의 지혜는 어디갔는가? 우리의 지혜보다 저들의 지혜가 더 승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패할 것이다. 정녕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5. 옛 언약을 성취할 새 언약의 백성 (출애급기 19:3-6)
3)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내가 애급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모세를 통해서 주신 약속은 옛 언약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당신 손의 못 자국을 보여주시면서 새 약속을 맺자고 하십니다. 옛날 모세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합심하여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큰 감격과 결심을 가지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계명을 영으로, 마음으로부터 지키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가 되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무서운 책망을 받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계십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 마음에 새기고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열심히 읽고 듣고 깨달아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렘 5:1) 한 명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백성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의 세상을 보세요. 얼마나 살벌하고 위험합니까? 그런데 누가 있어서 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고, 이들을 위해 복음을 전합니까? 주님이 우리 민족을 부르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당신을 부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아멘,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백성으로 불려주셨음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진리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6.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 (신명기 4:5-6)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였도다. 말씀의 기갈이 온다. 호세아선지자가 선포하였다. 어떤 지식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책에서 읽은 지식? 티비에서 본 지식? 유트브로 통해 본 지식?...그렇지 않은 것이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다. 안다고 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히11:1절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증거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사도는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하였다. 어떤 지혜인가? 세상의 지혜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지혜이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b-3)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귀한 보물을 찾아내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렇게 가르쳐주었어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지혜와 지식을 찾아 얻으려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렇다. 그리스도의 지식이다. 오늘도 목사님의 설교를 읽으면서 세상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지식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47. 장자권을 받은 민족 (히브리서 12:16b-17)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펴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렇다.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포기하였다. 포기라기 보다 귀함을 몰랐다. 귀중히 여기지도 않았고 귀한지도 몰랐다. 가나안의 여인 두명과 결혼하고, 이스마엘의 여자와 결혼을 하멶서 장자의 명분에 대한 가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의 것을 좆았다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 아니 나는 장자다. 택함을 받았다.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모두는 장자이다. 다 함께 부르심을 받았고 택함을 받았다. 이를 기억하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선택하여야 하는 기로가 있다. 마치 일제 때 신사참배와 같은 것이다. 이 때를 두고 사람들은 융통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우상숭배를 하는데 왜 융통성이 필요한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였으면 하지 말아야지... 앞에서는 신사참배하고 뒤에서는 예배를 드린다??? 이해가 안되는 문제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장자의 명분을 잃은 것이다. 죽 한 그룻과 바꾼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 기독교를 심판대에 올려났다. 사람들의 구설주에 올려났다. 마치 코로나가 기독교인들 때문에 더 많이 퍼진 듯이 방송과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 탓도 있었다. 요새는 모두 얌전하게 정부의 정책에 순응을 잘하니 기독교에 대한 반발이 많이 수그러 둘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꼭 그렇지 않은 가브다. 전광훈목사님도 요새는 조용하시다. 예배는 목숨과 같은 것이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포기하듯이 예배를 포기하는 것은 장자의 명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왜 예배를 숨어서 하는지? 무엇이 두려운가?
우리교회는 단 한 번도 예배가 끊긴 적이 없다. 두겹의 마스크를 쓰고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얘배를 드리기를 노력하여 왔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다. 남들은 교회의 문을 닫을 때 우리는 더 큰 교회로 이전을 하였다. 놀라운 주님의 은혜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교회에 넘치게 부어주셨다. 장자권을 받은 야곱이 축복이 오늘도 계속되기를 기도한다.